지금 당장 떠나야 하는 혹은 떠나지 않아도 괜찮은 이유
과학과 예술 그 사이 철학 8/
영롱한 빛깔의 칵테일과 해변, 신비로운 역사를 간직한 유적지, 여행이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많은 이들을 설레게 한다. 사람들은 보통 국내 혹은 해외를 가리지 않고 여행하기를 좋아한다. 하다못해 집에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내향형 인간들도 여행 한번 가본 적이 없는 이들은 드물 것이다.
인간이 여행을 즐기는 이유는 역시나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지구의 수많은 생물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인간의 특출난 부분은 바로 지구력이다. (당연히, 높은 지능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날카로운 이빨이나 하늘을 날게 해주는 날개 없이도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사냥감을 지치지 않고 뒤쫓거나 새로운 거주지를 찾아 떠날 수 있게 해 준 지구력 덕분이다. 인간은 이렇게 월등한 지구력을 바탕으로 지구 곳곳으로 뻗어나가 자리를 잡았으며, 이에 그치지 않고 대항해시대를 열어 문명의 교류를 이루어냈다. 그 결과, 현대의 인간사회는 말 그대로 지구촌이라 불리며 촘촘한 네트워크를 가지게 되었다.
물론 인간보다 뛰어난 지구력을 가진 생물은 많다. 그 예로 큰수염고래는 번식을 위해 적도의 해역과 차가운 극지방을 이동하고, 철새 중 하나인 도요새는 매년 수만 킬로미터의 거리인 북극과 남극을 오가며 생존을 이어간다. 다만 인간은 극지방을 포함한 지구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살고 있는 단일종으로, 인간만큼 지구에 널리 퍼져있는 생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렇게 인간은 특출난 지구력을 바탕으로 살아남아, 지구를 평정하고 여행의 역사를 만들게 되었다.
생물학적인 특징뿐만 아니라 끝없이 발전하고 있는 과학은 인간의 여행본능을 충족하는 데에 큰 도움을 주게 되었다. 기차와 선박을 넘어 비행기라는 엄청난 교통수단을 만들어낸 인간은 전 세계를 쉴 새 없이 돌아다니며 서로가 만들어낸 건축과 예술, 식문화를 교류하고 있다. 여행을 생존수단을 넘어 삶의 즐거움으로서 향유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즐겁고 설레는 여행은 과거의 예술가들에게도 특별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항해술이 발달하고 철도의 시대가 개막되었을 때, 예술가들이 여행을 통해 마주하게 된 이국적인 풍경은 그 어떠한 것보다 아름답고 특별했을 것이다. 실제로 수많은 예술가들이 새로운 나라를 탐험하며 그들의 작품세계를 보다 창의적이고 풍부하게 가꾸어낼 수 있었다.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는 프랑스의 다양한 지역을 여행하며 얻은 영감을 통해 꿈결같이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낸 수련 연작을 완성했다. 또한 그는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 전통적인 정원과 연못을 감상했고,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자신만의 독특하고 매력적인 기법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야수파의 대표화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또한 아프리카 여행에서 강렬하고 생기 넘치는 색감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를 자신의 예술로 재해석하여 색채의 화가로 거듭나게 되었다. 모네와 마티스의 여행은 그들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었고, 그렇게 발전된 예술은 후대의 예술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예술에서의 여행은 곧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되었다.
그러나 여행의 방식은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하다. 어떤 이는 인적이 드문 휴양지에서 일정 없이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고, 또 다른 이는 하루에 몇만보씩 걸어 다니며 온 도시를 탐험하기도 한다. 그 어떠한 방식도 옳고 그른 것은 아니다. 각자가 원하는 여행을 즐기면 그뿐이다. 21세기 인간의 여행은 집채만 한 매머드 사냥을 위한 것도 아니고 휘황찬란한 예술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함도 아니기에, 그저 새로운 시간을 진정으로 즐기고 그로 인한 행복을 느끼면 된다.
흔히 여행을 인생에 빗대고는 한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약 82.7세이니, 인생은 30,200박 30,201일 여행인셈이다. 길고 긴 삼만일의 여행에서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탐험할 수 있다. 누군가는 한적한 호캉스를, 다른 누군가는 쉴 틈 없는 배낭여행을 택할 것이다. 그중 어떠한 여행도 실패 혹은 성공했다고 나눌 수 없다.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예상치 못한 폭풍우를 만날 수도, 정겨운 현지인을 만나 파티를 벌일 수도 있다. 이러한 고난과 기쁨은 여행을 풍성하고 다채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어떤 날은 변화무쌍하고 또 다른 날은 지루할 수 있다. 그것 또한 여행의 일부분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모든 여행에는 끝이 있다는 것이다. 삼만일의 여행을 끝마칠 때에, 이 여행이 너무나도 즐거웠다고, 다시 다녀와도 좋을 만큼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