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estar 씨애스타 Nov 02. 2022

자뻑이 필요하지 않은 인생은 없다

eye Magazin 04 심리적 '금수저'

자뻑도 연습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것은 오히려 쉬운 일이다. 부러워하는 일도 너무너무 쉽다. 하지만 나를 칭찬하고 나를 부러워하고 나의 칭찬에 스스로 ‘그럼 그럼’ 납득하고 마음껏 그 칭찬에 당당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연습이 필요하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고 책도 읽어본 사람이 그 내용을 알 수밖에. 뭐든 해본 사람을 이길 수는 없다. 그러니 해보자. 낯 뜨겁고 뒷골이 당기고, 누군가가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가까이 있는 식구와 친구가 비난하며 무엇보다 내 속의 내가 비웃을 것 같지만.


‘흥, 네가?’

‘정말?’

‘그 말에 책임질 수 있어?’

‘남들도 다 그런 것 아니야?’

‘너만 특별해?’

‘그래? 어디까지 하나 보자.’


여러 책에서 내 안의 나를 감시하고 비난하는 또 다른 내가 있음을 확인했다. 어떤 사람은 내 안의 목소리가 하는 대로 살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그 목소리를 침묵시키는 방법을 찾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책들이 나온다. <내 안의 나와 헤어지는 방법> <진짜 나로 사는 법> <내 안의 목소리 잠재우기>...


누구는 명상으로 누구는 훈련 즉, 호흡 또는 암시를 통해 내 안에서 끊임없이 불평을 늘어놓는 비난자, 감시자, 감독관... 내 발목을 잡고 늘 반대하는 가짜 나와 결별하고 내면의 평화를 얻는다. <아티스트 웨이>에서 12주간의 훈련을 통해 내 안의 창조성을 찾는 것도 결국 같은 이치로, 내 안의 감독관에 갇혀있는 내면의 아티스트를 구하는 일이다. 그러니 자뻑은 중요하다. 자뻑은 자신을 믿는 일이고, 자뻑은 확신이다. 작은 믿음의 시작이 확신과 선언이 되고 그것이 차고 넘쳐 외부로 흘러나올 때 다른 사람들은 그것에 감염된다. 처음에는 ‘네가?’ 하다가 계속되면 ‘정말이야?’에서 ‘너 대단하다’로 바뀐다. 의문스럽다면, 직접 해보면 안다.


늘 ‘이쁜 미은이(가명)’라고 자신을 부르는 디자이너가 있었다. 미안하지만, 처음에는 그 말이 웃길 정도로 그 친구의 얼굴은 개성이 강했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는데, 늘 환하게 웃는 ‘이쁜 미은이’지만 같이 일할 때는 같은 디자이너로서 문득문득 화가 날 정도였다.

어느 날 그 친구가 내게 말했다.


“차장님, 저 못 생긴 거 알아요.”

“네에?”

“제가 왜 그리 ‘이쁜 미은이’를 달고 사냐면 제가 못생겼기 때문이에요. 처음에는 거부감 있는 것 알아요. 그래도요. 자꾸 들으면 사람들이 스스로 그래요. ‘이쁜 미은이 복사 좀 해오지.’ 그 이야기 들을 때 저는 정말 기뻐요.”


그 친구의 자뻑은 감염이 아니라 세뇌 수준이었는데 시간이 가면 그 세뇌가 엄연한 사실로 바뀌는 것을 나는 목도했다.


“차장님 저 일 좀 가르쳐주세요.”

“왜요?”

“저 일 더럽게 못 하는 것 알고 있어요. 저는 그래서 회식이 중요해요. 회식 날 필사적으로 사람들을 웃기고 사장님과 블루스 타임을 가져요. 그 시간이 저를 한 달 더 다니게 해요. 웃는 낯에 블루스까지 추고 해고는 못하거든요.”


이 친구의 고백을 더 들어보자.


“저는 남자 친구와 여행을 가도 만만의 준비를 다 하고 가고, 엄마에게 친구 집에 자고 온다고 해도 남자들이 집에 돌려보내요. 그만큼 매력이 없는 거죠. 알아요. 제가 여자로서 치명적으로 못 생겼다는 거. 하지만 꼭 지키거나 돌려보낼 필요는 없잖아요, 비참하게.”

“...”

“그래서 나를 지키고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도 남들도 나를 이쁘게 생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하다 늘 ‘이쁜 미은이’를 입에 달고 살았어요. 어릴 때부터 엄마에게도 듣지 못한 이쁘다는 이야기를 내게 마음껏 해주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일은 왜 배우려고?”

“저 일 못 하잖아요. 그런데 뭐 그리 노력해야 하나 싶었어요. 그런데요, 차장님을 만나니 일을 잘한다는 것이 멋지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차장님이 그 일을 하면 든든해요. 응원하고 싶어요. 차장님은 곧 독립하실 거예요. 능력 있으시니까. 그때 제가 차장님 옆에서 돕고 싶어요. 그러려면 일을 잘해야 하잖아요.”


사실, 그 말을 듣고 고민이 없었겠나. 일을 가르치는 것이 내게는 어렵지 않다. 원리를 파악하면 일의 순서가 보이고 뭘 해야 하는지 보인다. 다만 그것을 알 때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자기와의 싸움이다. 누가 알려주는 것은 한계가 있다. 체화되려면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알아보아야 한다. 왜 그것이 그런지 나만 그렇게 느끼는지 남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남과 나의 눈높이가 같아지면 세상이 편해진다. 하지만 어떻게 모든 사람의 눈높이를 맞추겠는가만 원리와 본질에 집중하면 사람들의 눈높이는 맞출 수 있다. 나는 그 친구를 좋아했다. 생각해보니 그 친구는 자기를 이뻐함과 동시에 항상 다른 사람들도 이뻐하고 칭찬했다.


“차장님, 저는 차장님 같은 사람 처음 봐요.”

“차장님 다 이뻐. 어떻게 시안이 다 맘에 들 수가 있지?”

“차장님 대박”

“차장님 천재”

“차장님은 회사에서, 없으면 안 될 존재”


그 말을 내 앞에서만이 아니라 직원들과 사장님 앞에서도 주저 없이 한다. 칭찬만이 아니라 나를 살피고 내가 필요한 것을 가져다주었다.


“차장님 물 한잔하고 하세요.”

“차장님 피곤하시죠? 커피 드릴까요?”

“차장님 프린트 가져왔어요. 제가 자를게요.”


부탁하기엔 민망하고 알아서 해주면 고마운 그 많은 것들을 '이쁜 미은이'는 해줬다. 내게 만이 아니라 모든 직원의 비위를 다 맞추니 사무실이 밝아지고 서로 위하게 되었다. 회식 때는 왔다 갔다 하면서 술을 따르고 고기를 구우며 ‘사장님 너무 맛있는 고기 추가요.’ ‘여기, 이모님... 술술 넘어가는 술 추가요.’ ‘하하 호호’ ‘사장님 수고하셨는데 블루스 한판 떙기시죠? 어머, 블루스 처음인가요?’ 그 친구가 없는 회식 자리는 앙꼬 없는 찐빵이다. 당연 그 친구 주변은 환하게 밝았고 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차장님 제가 한 달 아르바이트로 어떤 회사에 갔는데요. 일도 못 하면서 한 달 한 달 연장해서 삼 년을 다니다 IMF 때문에 나왔다니까요. IMF만 없었다면 저는 지금도 그 회사에서 정년퇴임까지 있었을 거예요.”


그 말에 웃었지만 안다. 그 말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을. 무엇보다 자신이 일을 못하고 이쁘지 않다는 것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할 방법으로 자신을 칭찬하고 남들을 칭찬하기 시작했지만, 그 친구의 말은 어느새 윤활유가 되어 사무실을 매끄럽게 잘 돌아가게 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칭찬에 조금씩 중독되면서 치유되고 있다는 것을. 그러나 나는 그 친구의 제안을 거절했다.


“나 미은 씨 일 안 가르치려고.”

“그러실 줄 알았어요. 제가 배운다고 힘이 되기보단 짐이 되겠지요? 시작하시면 일 잘하는 직원이 필요하시겠죠? 회식을 좋아하시지도 않으니 회식도 필요 없고.”


아니었다. 일을 가르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내가 그런 결정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미은 씨 일 가르치는 것은 어렵지 않아. 하지만 일을 잘한다는 것은 치밀하고 꼼꼼하고 예민해질 수밖에 없어. 당연히 성격이 좋을 수가 없지. 재수 없어져. 나는 미은 씨를 좋아해. 그 성격이 너무 부러워. 사람들이 나를 좋아할까? 미은 씨를 더 좋아할까? 자기의 장점을 버리지 마요. 남들이 가지지 못한 미은 씨의 장점을 일 배운다고 버리게 된다면 내가 너무 괴로울 거야. 서로 힘든 일 하지 말자.”


독립하면 외롭고 힘들 텐데 그것을 돕겠다는 제안을 거절한 것의 후회가 들 때면 미은 씨가 생각났는데 미은 씨는 동료 추천으로 K사의 정식 디자이너가 되었다.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의 능력은 일을 잘하는 것만은 아니니, 함께 일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람들을 웃게 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힘은 아무나 가진 것이 아니니까.


“차장님 아니 실장님이시지? 하지만 제게는 언제나 차장님이시니. 제가 차장님 덕분에 K사 정식 디자이너가 됐어요. 소식 들으셨죠? 너무 웃기는 일이에요. 다 차장님이 가르쳐줘서 여기까지 왔어요. 너무너무 감사해요. 그때 일을 더 배웠어야 하는데 큰일 났어요. 여자 사장님이라 회식 때 블루스를 못 쳐요. 곧 실력으로 평가받고 뽀록날 텐데 차장님 짤리면 심부름이라도 하러 갈까요? 그래도 좀 나아졌어요, 그때보단.”


전화를 받으면 언제나 긴장이 풀리고 나는 크게 웃었다. 어쩌면 자기가 짤리는 이야기를 이렇게 유쾌하게 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블루스 한 번으로 한 달을 연장할 수 있고 웃음과 따뜻함 또 칭찬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능력은 다른 사람이 가지지 못한 훌륭한 재능이란 것을 지켜봐서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시작은 남자 친구들이 자꾸 집에 돌려보내서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은 “오빠 믿지?” “ 내가 널 지켜줄게”를 듣지 않으려고 시작된 ‘이쁜 미은이’였다는 것을. 그러니 자뻑은 연습이고 훈련이다. 그 자뻑이 남이 믿는 경지가 되려면 시간이 또 필요하다. 당당하게 자뻑을 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자뻑도 하면 재미있고 당연히 늘면서 나도 다른 사람들도 중독된다.


정혜신 박사의 남편 이명수 작가의 <내 마음이 지옥일 때>란 책에서 인정과 칭찬을 받으면 후천적으로 생기는 ‘심리적 금수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언제나 뭘 해도 칭찬하는 아내 정혜신을 만나 열등감과 콤플렉스는 없어지고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 마음만은 모든 것을 다 가진 '심리적 금수저'가 되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자신이 되었다고.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아는 선생님이 자세한 설명도 없이 ‘너 한문 공부하고 싶다고 했지? 한 십 년 괜찮으면 새로 시작하는 모임에 들어와라.’ 그렇게 멤버가 누군지도 모르고 나가니 건축가,  화가, 교수, 언론사 대표, 작곡가, 전직 대학 총장 등등 우리나라에서 자기 분야에서 최고라 인정받는 분들이 모인 공부 모임이었다. 물론 나 또래의 사람도 넷 있었다. 그들은 비슷한 수준만 있으면 발전도 재미도 없어서 구성한 젊은 멤버였다. 몇 년 시간이 지나서도 그 모임을 내가 거의 빠지지 않고 가는 것은 그분들의 인정과 과한 칭찬 때문이다. 한문이 아니라 한자를 몰라 거의 그리는 수준으로 숙제를 해가도 감탄을 하신다. 참여하는 것만이라도 대단한 용기란다. 꾸준히 하니 앞으로 당신들의 나이가 되면 자신들보다 나을 거란다.  들어주고, 인정하고 칭찬하여 특별하다 하니 정말 내가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 같다. 그러니 못쓰는 글씨도 쓰게 되고 모르는 한자를 그려가더라도 기쁜 마음에 할 수 있어 배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칭찬보다 중요한 것은 칭찬을 잘 받아들이는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이 스스로 자기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니 부디 오늘 자뻑하시라. 그 목소리 약해도 일단 내기 시작하시라. 그 시작이 분명 나를 다르게 만들 테니. 타고나기는 은수저 흙수저라도 심리적인 금수저는 만들어보자. 분명 당신은 금수저다. 다만 그 금은 뭔가에 덮여 있다. 닦고 닦고 또 닦아야 그 본질 금이 나오고 빛나기 시작한다. 그 닦는 일의 시작은 자뻑이니, 오늘 자뻑할 수밖에.

작가의 이전글 엄마를 그리며 알게 된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