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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llie Young Jul 08. 2021

나는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 1

디자인을 시작한 뒤 지금 회사에 입사하기까지

책을 만들던 사람

나는 텍스트를 사랑하고 책을 만들던 사람이다. 서체나 편집 디자인은 대학 이전부터 꽤 오래 꿈꿔온 일이었다. 그래서 대학을 다닐 때 '상업 디자인'은 나중에 해도 된다며, 하고 싶은 것만 하다가 졸업을 해버렸다.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건 계속해서 새로운, 나만의 디자인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내 색깔을 알리고 싶었고 세상 사람들이 내 디자인을 알아주었으면 했다.


그땐 ‘상업 디자인’에 속하는 브랜드와 프로덕트 디자인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하라면 잘할 수야 있었겠지만 굳이 하고 싶지도 않았다. 공상을 자주 하고, 현실적 문제에 약한 내게는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브랜드는 작가주의 성향이 짙은 작품만을 좋아했다. 그때는 나이키의 새로운 캠페인보다 에밀 루더의 타이포그래피를 분석하는 일이 훨씬 짜릿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완전히 비즈니스 드리븐 디자이너인 친구 C를 보며 생각이 바뀌었다. 어렵게만 보이던 프로덕트 디자인이 내가 가장 좋아하던 편집 디자인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았다. 무대가 종이에서 스크린으로, 관객이 독자에서 사용자로 바뀌었을 뿐(물론 실무로는 이게 엄청난 차이인 것을 알고 있지만).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내가 고안한 이야기 흐름을 따라왔으면 하는지를 고민하고 설계하는 건 똑같았다. 게다가 C가 그 시기에 학교와 회사를 병행하며 잘 일하는 모습이 굉장히 대단하고 재밌어 보이기도 했다.


그럼 뭐하나, 그때 나는 대학 졸업을 앞둔 4학년이었다. 브랜드 디자인은 포트폴리오 몇 가지를 잘 만들어 뒀지만, 프로덕트 디자인 취업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였다. 대부분은 학생일 때라도 직접 개발자와 협업해보는 외부 동아리 활동이라든가 해커톤 활동이 있는 사람을 원했다. 게다가 그마저도 부족해 이미 동종업계의 경력이 있는 사람을 원하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던 2020년 2월, C에게 연락할 일이 생겼다. C는 평소에도 워낙 바쁜 친구라 일부러 연락을 자주 하지 않고 있었다. 얼마 후 C는 내게 아직 프로덕트 디자인에 관심이 있냐며 일자리를 소개해줬다. 그 일자리가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다.


이 회사는 B2B, 건설사를 고객으로 한 IT 스타트업이고 그 수단으로는 무려 드론이 있다! 난 드론을 비행하며 사진을 찍는 iPad 앱과 사진을 업로드해 분석하는 웹 등 비교적 특수한 프로덕트 두 가지를 디자인하고 있다.




나는 첫 사회생활에 실패한 경험이 있다. 사정이 복잡한 회사에서 수습으로 6개월을 일하다 퇴사했었다. 스스로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일이기도 했고 회사 분위기도 나와 맞지 않아서 마음의 상처만 늘어갔다. 외부적인 문제 말고도 내가 일을 참 ‘못’했고, 그 사실을 스스로 느끼며 비참한 기분으로 회사생활을 했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 사회인으로서 일에 뛰어들면 내 무지와 무능함을 들킬 거라는 생각이 들어 굉장히 두려웠고 자꾸 숨거나 도망가고만 싶었다.


그래서 작년 3월, 이 회사에 입사한 것은 정말 큰 결단이었다. 비즈니스 감각이 떨어지는 내가 이렇게 낯선 배경의, 특수한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일할 수 있을까? 게다가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일치하는 기업에서 인턴 제의가 온 상태인데, 이 기회를 포기해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내가 재밌게 일할 수 있을까? 디자이너가 나 혼자라면 어떻게 업무를 배우지? 너무 외롭지는 않을까? 건설사 대상이라면 고객을 만나야 할 때 너무 딱딱하고 마초적인 분위기라서 힘들지 않을까? 드론이라니, 나는 드론을 실제로 본 적도 없는데 앱을 만들어야 한다면 너무 힘들지 않을까?


특수한 업계라는 점이 무겁게 다가와 고통스러웠지만, 오히려 새로운 경험을 앞두고 그런 고민들을 한다는 것이 설레기도 했다. 당시 10명 남짓한 곳이었던 이 회사의 대표님이 어떤 프로그램에서 회사를 소개하는 영상을 봤을 때, 이 회사의 제품은 무조건 성공할 수밖에 없는 비즈니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설 산업이 디지털화 되려면 어떤 방식으로든 이 회사를 거쳐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만큼 굉장히 명확한 비전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내가 기여해서 직접 일구어내는 경험을 얻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그래서 앞서 걱정했던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입사를 결정하게 되었다.




막상 시작해보니 보이는 것들

일단 일을 시작해보니 내가 완전히 동떨어진 곳에 우두커니 서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무인도에 갇혀있거나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느낌. 어느 방향으로 뭘 들고 가야 할지 알려주는 사람도, 글도 없었다.


내가 그래픽 디자이너를 꿈꿀 때는, 비교적 상업적인 방향으로 많이 가지 않아도 되었다. 게다가 내 색을 표현할 수 있는, 흥미 위주의 작업을 많이 할 수 있었다. (물론 학생이었다는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그리고 내가 꿈꾸는 경지가 꽤 고정된 이미지였다. 작가를 겸하는 디자이너가 되거나, 학생들을 가르치며 유의미한 피드백을 주는 교수의 모습을 그려왔다. 세상 돌아가는 속도에 들어맞으려는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덜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고, ‘대기업’처럼 사회에서 요구하는, 말 잘 듣는 사원이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사회에 유의미한 가치를 환기한다거나, 디자인 바닥에 어떤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오래오래, 계속해서 내가 원하는 디자인을 한다면 그럴 자신도 있었다.


그런데 IT회사 입사 후에는 거의 모든 분야를 잘 알아야 했다. 그러다 보니 그 양에 압도당할 때가 꽤 있었다.

비즈니스, 돈의 흐름, 세상이 움직이는 속도, 쏟아지는 새로운 서비스, 디자인 프로그램, 개발 지식, 바뀌는 유저들, 그에 따라 바뀌는 수많은 데이터, 그런 데이터를 분석하며 돈의 흐름을 예측하거나 판매할만한 가치를 찾아내는 것…


이 업계에 들어오면서 지식과 정보를 얻으려 많이 노력해봤지만, 절대 ‘정복’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끊임없이 나를 새롭게 바꾸어야 한다. 나는 이제 내 직업적 목표를 잘 모르겠다. 전처럼 고정된 이미지의 꿈을 꿀 수 없게 되었다.


완전히 다른 곳에, 다른 직무로 오게 되니 내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어떤 디자인’을 하고 싶은 거지? 나는 ‘어떤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거지? 스스로 물어봐도 대답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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