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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llie Young May 28. 2022

나는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 2

입사부터 지금까지, 2년을 돌아보며

지난 이야기



처음으로 고객을 만났다

1편(입사) 이후에 몇 개월 정도 쌓인 일을 처리하고 나니 건설 현장에 직접 들어가 볼 기회가 생겼다. 다른 고객사들이 우리 제품 도입을 고려할 때 참고할 수 있는 유즈 케이스가 필요했는데, 한 현장을 인터뷰해서 그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려는 일감이었다. (그때는 마케팅 인력이 전혀 없어서 함께 일하시는 서비스 기획자 W님이 메인으로 영상 기획, 촬영 외주 커뮤니케이션을 도맡아 하셨고 나는 거의 서포트를 했었다.)


촬영 방문은 약 2년 전으로, 당시 지하층과 1층 공사를 하는 도중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방문 전 의견 조율 과정에서 인터뷰이가 갑자기 참여를 취소하거나 고객사 내부에서 결재가 밀리는 등 여러 일이 있기도 했고, 내가 외부에 미팅을 많이 다녀본 경험이 없는 사회초년생이기 때문에 정말 많이 긴장했었다. 하지만 막상 직접 만나보니 굉장히 친절하고 협조적인 분들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대화를 몇 번 주고받아보고 그제야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아침에 도착한 현장은 정말 활기찼다! 수시로 머리 위로 무거운 자재들이 지나다니고, 내 키의 두 배도 넘을 것 같은 크기의 트럭이 쉴 새 없이 지나다녔으며, 1층 공사 쪽에서는 바닥면을 만들기 위해 크레인에 호스를 연결해 시멘트를 쏟고 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9월 말 푸르고 높은 가을 하늘 아래 근로자들이 모든 작업을 일일이 직접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건설 산업의 디지털화가 느린 게 당연했음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당시 내부 사진을 여러 장 찍었지만 해당 건설사/현장의 보안 문제가 있어서 안타깝게도 이 글에 첨부는 못할 것 같다...!


담당자 몇 분의 인터뷰에 더해서 고객들이 우리 제품을 직접 사용하는 장면도 필요해서 크게 두세 가지 연출을 부탁드렸다. 우리 제품 중 드론 비행을 할 수 있는 앱이 있는데 요 녀석을 사용해서 드론을 이륙시키는 장면, 이 드론 비행으로 찍은 이미지를 프로세싱해서 2D 이미지와 3D 모델링으로 만들어 볼 수 있는 SaaS 서비스를 고객들이 현장 회의에 이용하는 장면을 찍었다. (회의하는 척만 해도 괜찮았지만 정말로 회의를 시작해버리셔서 살짝 당황...!) 


어쨌든 홍보에 필요한 장면을 요청해서 보여주신 모습이긴 했지만, 그때 나는 고객들이 우리 제품을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활용하는지 처음 본 것이었기 때문에 내겐 정말 값진 경험이었다. 우리 회사는 대기업 건설사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B2C 서비스나 중소기업/개인사업자를 위한 B2B 서비스에 비해서 유저 리서치를 하기에 굉장히 척박한 환경이긴 하다. 그래서 이런 장면들을 직접 보고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체감해서 정성적인 인사이트로 만들 수 있는 기회들이 아주 아주 소중하다.


영상 촬영 차원에서 방문했던 거라서 제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지 않아 아쉬웠지만, 위에 쓴 이유만으로도 내 시간을 쏟을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돌이켜봐도 그때 가보기를 참 잘했다. 백문이 불여일견. 비록 한 번이었지만 우리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을 만나 그 모습을 보면 내가 상상으로 채웠던 기획의 영역이 굉장히 명확해진다는 걸 깨닫게 되었으니까. 그래서 그 이후로 새로 입사하시는 PO나 PD는 꼭 한 번은 현장에 따라가볼 수 있도록 요청하기도 했다.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이전에는 우리 제품이 속한 산업군과 비즈니스에 대해 더 잘 알아야겠다는 의지를 막연하게 표출했었다면, 그 후로는 좀 더 명확하게 생각하고 제안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러려면 어떤 걸 실천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입사 초기부터 느껴왔던 불편함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소하는 것을 가장 먼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다른 팀원들이 생각하는 나의 역할이 내가 생각하는 내 역할보다 너무 좁다는 것이었는데, 교집합을 점점 크게 만들어서 나중에는 완전히 겹치게 만들어보자는 생각까지 발전했다. 


당시 상황을 기준으로 만들어본 도식. 동료들은 내가 생각했던 역할보다 확실히 좁은 디자인 영역을 기대하고 있었다.


당시 내 직함은 'UX/UI 디자이너'였지만, 아무래도 제품팀이 아닌 사업 쪽 동료들은 나를 제품이든 뭐든 일단 뭔가 '예쁘게' 만들어주거나 정리해주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게 불만이 되려던 찰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란 걸 깨달았다. 동료들도 나라는 디자이너와 함께 일해본 적이 처음이고, 내가 그런 니즈를 명확하게 말한 적도 별로 없었다. 그럼 내가 원하는 내 역할을 스스로 명확하게 적어보고 동료들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내가 원하는 내 역할은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모습과 가장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초기 사업팀에서는 디자인 인력이 너무 없기에 디자인이 필요한 모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너무 당연해서 생략)


그전까지는 서핏 같은 플랫폼에 등장하는 다른 디자이너들처럼 정량 데이터 이해 능력이나 인터랙션, 기획 역량이 뛰어나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UX/UI 디자이너'를 유지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것만 잘하기에도 벅찬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나중에 좀 더 역량을 키우고 나서 그때...' 같은 생각으로 계속 미루다가는 시기를 놓쳐버리거나 아예 스스로 프로덕트 디자이너라고 부를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프로덕트 디자이너'란 말을 너무 숭고하게 생각한 나머지 이도 저도 되지 못할 바에야 일단 그 직함을 먼저 달기라도 하고 그 이름에 걸맞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부끄럽지 않도록 회사 안에서의 내 영역을 스스로 확장시켜보자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도착지는 같지만 반대 방향으로 가보는 거다.


이때는 딱히 다른 동료들에게 배경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던 시기여서 일단 직함 변경을 먼저 요청했다. 바뀐 건 이름뿐이었지만 그 전보다 명확한 목표가 생긴 기분이었다. 정말로 내가 원하는 이상향을 이루려면 갈 길이 아주 멀었지만…



독립했다.

원래 나는 기획파트 소속이어서 PO 한 분, 기획자 한 분과 함께 비개발자로 대충 묶여있었는데, 당시 기획자였던 분과 직무가 달라도 역할이 모호하게 겹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점에 대해서 우리 스스로도 고민이 되니 자주 얘기하곤 했고. 그런데 그 기획자 W님이 퇴사를 준비하시면서 새로운 PO 한 분이 입사하셨다. 이건 PO와 PD로 직무가 자연스럽게 분리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기획자 W님(지금은 다른 곳에서 PO로 일하신다.)은 퇴사 전, 내게 "이제 좀 더 독립하셔서 목소리 크게 내셔도 좋을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나도 바라던 바였지만 막상 그러려니 조금 겁이 나긴 했다. 그래도 그래야만 내가 바라는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모습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확신은 있었다.


W님이 퇴사하신 직후 나는 기존 기획자(=미래 PO)들로부터 공식적으로 Product Design 셀로 독립할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제품 기획까지 우리 셀에서 담당하겠다고 선언했다. PO는 PO가 집중해야 하는 문제들이 있을 터. 기존에 하시던 실무 기획까지 끌어 안느라 끙끙대지 마시고, 나한테 다 맡기라며 큰 소리 떵떵 쳤다. 정확히는 당장의 기획자의 부재를 PD셀에서 반, 엔지니어분들이 반 채우면 되지 않겠냐는 거였다. 이건 당시 함께하던 PO분께 먼저 말씀드렸었는데, 그 결정을 반기시면서 본인이 시니어 기획자였던 경험으로 나를 도와주실 수 있다고도 하셨다. 정말 큰 힘이 됐다.


어쨌든 PD셀로 독립하면서는 '왜' 내가 '프로덕트 디자인' 셀로 독립하고자 하는지 다른 동료들에게 충분히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서비스 기획자라는 직군과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모호한 역할 분담을 비롯하여, 내가 생각하는 '디자인'의 좀 더 넓은 의미를 담당하고 싶다고 전사에도 공유하게 되었다. 조직도에도 반영하자 나 혼자 똑 떨어져 나왔다는 게 느껴졌다.


위에 언급했듯이 진짜 무섭기는 했다. 그래도 나는 나를 안다. 나는 자신감이 100% 채워지기까지 기다리면 시작도 못한다! 욕심은 충분했고, 꼭 그렇게 해내고야 말겠다는 나의 의지도 충분했다. 그리고 그 의지를 진짜 실현하려면 이 정도는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넣어야겠다는 의도도 있었다.


PD 독립 이후 처음으로 서비스에서 가장 무거운 부분의 구조를 다시 설계해야 하는 리뉴얼 프로젝트를 메인으로 담당하게 되었다. 이건  다른 아티클로 풀어볼  있겠다. 어쨌든  프로젝트의  단계를 어떻게든 끝내기는 했는데  경험을 통해 나는 정말 많이 성장한  같다.  부족한 점을 많이 발견하기도 했고, 동시에 동료들의 진심 어린 피드백과 격려를 받을  있었다. 게다가  프로젝트를 거치고 나서  내가 생각하는  역할과 동료들이 생각하는  역할의 교집합이    커졌다고 꼈다. 그리고 스스로도 내가 생각하던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모습에   가까워졌다고 낄 수 있었.



마치며

이렇게 글이 길어질 줄은 몰랐는데, 2년이 조금 넘는 시간을 축약하는 게 쉽지 않다. 글을 쓰다 보면 하고픈 말이 너무 많아져서 길어지는 게 내 약점이다. 너무 오래 걸린다!


하여튼 난 아직도 프로덕트 디자이너란 이름을 달고 있기에 충분한 경험과 실력을 갖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예전처럼 계속 이 길을 갈 수 있을지, 다시 예전처럼 브랜드 쪽이나 스튜디오로 빠져야 하는 순간이 오는 건 아닐지... 그런 걱정은 잘 안하게 되었다. 나는 미래 목표를 정확하게 정해두는 편은 아니지만 최소한 다음 회사를 고를 때도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으려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이름을 당당히 쟁취할 수 있도록 일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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