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약꽃 필 무렵

그 맛에 중독되어 갔다

by 이엔에프제이


"어머, 그걸 어떻게 먹어요?"

"이 맛있는 걸 아직도 안 먹어봤단 말이야?"

"그럼 나무를 먹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에요?"

"일단 한 번 먹어 보고 이야기 하렴."

"알겠어요."

나는 썩 내키지 않은 듯 떨떠름한 대답을 한 후 반신반의한 표정이 들키지 않게 조용히 한 젓가락 집어 왔다.

그러곤 궁금해 미칠 것 같은 입 속에 넣어주었다. 오물오물 씹어보았다.


뭐지?

아무런 맛을 느낄 수 없어 다시 한 젓가락 가져와서 먹었다.

어, 진짜 이런 거 먹어도 되는 건가?

생전 처음으로 먹어본 음식이었다. 씹을수록 묘한 매력이 나를 끌어당겼다.

이것 봐라, 제법인데!

어느새 밥그릇이 비워지고 있었다. 그땐 차마 더 먹고 싶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한동안 하지 않아도 될 후회와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첫 경험의 맛이 우연찮게 나와 함께 동거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그랬다. 오월의 햇살이 답답한 가슴을 열고 들어올 즈음, 몸이 기억하는 맛이 있었다. 분주한 삶의 일부를 할애하여 연중행사처럼 찾아가는 그곳엔 늘 한결같은 맛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어쩌면 오래전부터 중독이 되었는지 몰랐다. 이제 막 채취해 온 죽순을 쌀뜨물에 삶아 깨끗하게 헹군 후 먹기 좋은 크기로 찢어 놓았다.

그러곤 죽순에 기본양념이 배도록 조물조물 무쳐 냄비에 깔고 그 위에 통통하게 살이 오른 병어를 올린 후 매운 고추를 썰어 넣고 가스 불을 켰다. 얼마 후 병어 죽순 조림이 보글보글 익어가는 소리가 코 앞에서 날름거렸다.


아삭하게 씹히는 죽순의 식감이 좋아 골고루 양념이 밴 좋아하던 병어를 양보할 정도였다. 뭔지 모를 특별 전형에 합격이라도 된 것처럼 이맘때가 되면 배부른 기쁨을 만끽하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제부턴가 내 삶에 비상식량의 일부로도 자리매김했다. 하는 일마다 꼬이기만 하고 되는 일이 없던 어느 날엔 새콤달콤하게 무친 죽순을 씹다 보면 거짓말처럼 기분 전환이 되는 거 같았다. 오로지 그 맛에 매료된 까닭에 다른 어떤 것도 틈타지 못했던 것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문제없이 또 하루를 맞이한 셈이랄까. 적어도 내겐 그랬다.


어디 그뿐일까. 찬바람이 옷깃 속으로 파고든 어느 날엔 고소한 들깨가루를 듬뿍 넣어 끓인 쫀득한 맛이 종일 따라다니곤 했다. 서둘러 집으로 가던 날의 발걸음은 유난히 가벼웠다. 누군가에겐 별거 아닐 수 있다지만 오래전 첫눈에 반한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 안에서 곧고 정직하게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보고 싶다는 말 대신 죽순 채취할 시기만 기다리고 계신 그분의 얼굴에 파인 주름은 죽순의 뿌리가 번지는 속도보다도 빨리 생겨나고 있었다. 해마다 작약꽃 필 무렵, 냉동실에 가득 쌓인 죽순을 바라보며 뿌듯해하신 그분의 눈가에 촉촉이 젖어든 그 무엇을 발견하고 나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묵묵히 행동으로 보여주신 그분이 선택한 사랑의 방식이었다는 것을.


하지만 지금 불편하신 그분의 다리가 언제까지 버텨 줄지 예측조차 할 수 없는 위태로운 시간의 범주안에 머물러 있다. 과연 내년 이맘때에도 변함없이 깔끔하고 도도한 식감을 씹어 먹을 순 있을까. 애석하게도 흘러간 시간은 어머니의 현재 건강 상태를 꼬집어 말해주지 않았다. 다시 올 그날을 기다리는 내내 각인된 쫄깃한 맛이 함께 자리를 지켜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