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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엔에프제이 Dec 30. 2024

까만 원피스

비를 피하지 못했다


  하우스 지붕 위에서 까만 원피스가 나풀거렸다. 마을 사람이 집으로 들어와 구석구석을 살폈다. 그러곤 엄마의 안부를 물었다. 엄마는 명상 중이었다.

  “연희야, 집안에 별일 없지?”

  “네. 그런데 무슨 일 있나요?”

  “아니다, 혹시 까만 옷을 입은 심부름꾼이 왔나 해서 들러 본 거야. 그럼 누굴 잡으러 간 거지?”

  “네? 그게 무슨 말이세요?”

  “아, 아니다. 밤마다 엄마 잘 살펴드려라.”

  “네. 조심히 가세요.”

  나는 마을 사람과의 대화가 은근히 신경 쓰였다. 엄마는 매주 금요일이면 단발머리에 까만 원피스를 입고 명상했다. 그런 날은 어떤 누구와도 만나지 않으며 하나뿐인 딸과도 말을 섞지 않았다. 나는 엄마의 명상이 끝날 때까지 말을 걸지 않고 기다리는 게 익숙했다. 급한 일이 생겨도 중간에 노크조차도 할 수 없었다. 늘 그렇듯 엄만 명상이 끝나는 대로 조용히 아침 밥상을 차려와 늦잠을 자고 싶은 나를 깨워 얼굴을 보며 밥을 먹자고 했다. 그런데 오늘,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아침이 시작되었는데도 엄마의 인기척이 없었다. 불현듯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내가 먼저 방문을 여는 날엔 종일 공부만 해야 했다. 그게 싫어 절대 방문을 열지 않았다. 단 한 번도 먼저 방문을 열지 않았던 나는, 종일 공부를 하더라도 용기를 내 문 앞으로 다가갔다.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기 전 조심스럽게 엄마를 불렀다.

  “엄마, 아직 명상 중인가요?”

  “……”

  “엄마? 엄마?”

  나는 고요한 적막을 깨부수며 방문을 힘껏 열어젖혔다. 맙소사! 엄마가 쓰러졌다. 엄마가 엎드린 채 잠이 든 줄 알고 흔들어 깨웠다. 순간 돌덩이처럼 굳어진 엄마의 팔이 바닥으로 툭 떨어지자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엄마가 죽었다.   

  

  엄마랑 자주 가던 강에 유골을 뿌리고 올라오던 날, 하늘은 금세 소낙비라도 내릴 것처럼 우중충했다. 습한 장마가 지나간 듯하더니 하우스 사이로 이글거린 땡볕이 수시로 들락거렸다.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명상하던 방에 걸려 있던 까만 원피스를 입어보았다. 엄마랑 키가 비슷하여 어색하진 않았다. 치수가 딱 맞았다. 까만 원피스를 입기만 했는데도 어떤 묵직한 영적인 기운이 나온 듯했다. 나는 왠지 스산한 기운에 빨려드는 것 같아 얼른 벗어버렸다. 그러곤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걸어두었다.

  엄마는 명상이 끝난 후 눈을 감고 있으면 아이들의 미래가 훤히 보인다고 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어느 날, 마을 취준생들에게 사업 아이템과 적성에 맞는 직업을 안내해 주었다고 했다. 뜻밖에도 그 취준생들의 사업이 잘되면서 입소문이 났다. 엄마는 신도 아니고 더군다나 점쟁이도 아니다. 오로지 직감으로 얘기할 뿐이었다. 엄마는 상담이 끝나면 찾아온 사람과 까만 원피스를 입은 채 기념사진을 찍어둔 습관이 있었다. 사진을 정리하던 중 어떤 한 청년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데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연희야, 사진 속 청년이 곧 올 거야. 집으로 찾아온 손님이니까 놀라지 말고 잘 응대해 드려라.”

  “응. 근데 엄만 어떻게 알았어? 엄마 어디야?”

  “……”

  엄마의 목소리가 사라지자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누군가 밖에서 노크했다.

  “저기요, 방 여사님 계십니까?”

  나는 소름이 끼쳤다. 사진 속 그 청년이었다.

  “어떻게 오셨나요?”

  “아 네, 방 여사님 뵈러요.”

  “그렇군요. 일단 들어와 앉으세요.”

  간단하게 마실 차 한 잔을 내오자 묻지도 않았는데 손님이 먼저 말을 건넸다.

  “저는 학창 시절에 공부는 잘하지 못했어도 상상력이 풍부하고 컴퓨터는 곧잘 다뤘거든요. 물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시간 대부분은 주로 게임을 많이 하긴 했지만요. 부모님은 하나뿐인 아들이 의사가 되길 바랐어요. 하지만 전 공부가 싫었고 게임도구를 판매하는 장사를 하고 싶었거든요.”

  “그러셨군요. 근데 방 여사님을 만나야 할 어떤 이유라도 있나요?”

  “아 그게요, 이를테면 생명의 은인인 셈이죠.”

  “네? 은인이요?”

  “맞아요. 사실 저의 부모는 학창 시절 내내 저를 지지해 주기는커녕 무시한 듯한 권위적인 말투로 은근히 사람을 잡았거든요. 그동안 숨이 막힐 지경에도 잘 참았는데 수능이 끝난 후 부모의 기대치에 어긋나면서 더는 견딜 힘이 없더라고요. 그때부터 차라리 ‘죽자, 죽어버리면 다 끝나는 건데’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집 근처 산으로 올라가던 중 뭔가의 끌림에 의해 여기 하우스로 발길을 돌리게 되었지요. 그날 방 여사님을 처음 만났죠.”

  “아, 그러셨군요.”

  “그때 방 여사님은 저를 보자마자 꼬락서니가 딱 죽기 일보 직전이고만. 지금 자살하려고 산에 간 거지? 하시더라고요. 쯧쯧, 젊은 놈이 그깟 일로 죽긴 왜 죽어. 죽을 용기를 가지고 코딩을 배우라고 했어요. 지금 나이도 늦지 않았으니, 육신은 죽었다고 생각하고 정신 바짝 차리고 집중하라고 했지요. 그 후 저는 스타트업 개발자로 성공해서 방 여사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려고 찾아왔어요. 방 여사님은 어디 계시는가요?”

  손님은 재차 나의 눈을 응시하며 물었다.

  “엄마요?”

  나는 목이 잠겨오는 거 같아 고개를 돌렸다. 손님은 엄마가 기쁘게 받아주실 선물을 생각하며 상기된 목소리로 힘차게 말했다.

  “네. 방 여사님께 드릴 선물도 준비했는데요.”

  “……”

  조금 긴 침묵이 흘렀다.

  시선을 멀리 둔 채 나는 떨린 목소리로 전해주었다.

  “방 여사님은 죽었어요.”

  “뭐라고요? 죽다니요, 왜요?”

  “심장마비요.”

  손님은 방 여사님의 죽음이 믿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뵙지 못한 상실감 때문에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굳어진 표정 위에 무거운 눈을 감고 뭔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나에게 한 가지 제안했다.

  “연희 씨, 여기서 혼자 사는 게 걱정되니까 서울로 가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마음은 고맙지만, 사양할게요. 여기에 있는 친구들과 같이 졸업도 해야 하고. 혼자라도 괜찮아요. 가끔 엄마가 도와주거든요.”

  나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런데도 손님은 선물로 가져온 자동차와 키를 놓고 갔다. 나는 절대 받을 수 없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막무가내였다. 돌아가는 손님의 그림자에 가을의 쓸쓸함까지 보태졌다. 안타까움의 꼬리는 주차장의 어느 한쪽에 놓였다.  

  

  항상 시험 기간만 되면 내 주변으로 친구들이 모여들었다. 내가 찍어준 유사한 문제들이 실제로 시험에 많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이번 시험에도 찍어준 예상 문제가 어김없이 백발백중이어야 할 텐데, 나는 조금 긴장되었다. 나를 돕던 엄마의 기가 스르르 빠져나갈까 봐 전전긍긍했다. 나는 통통하고 아담한 체구에 호피 무늬 안경을 즐겨 착용했다. 친구들이 호피 아주머니라고 놀려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마냥 끌어안고 있을 순 없지, 싶었다.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알 턱이 없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입소문을 타고 계속 이어졌다. 주말이면 작은 동네에 손님들의 차들로 주차할 공간마저 없어지고, 자꾸만 동네가 시끄러워지자 마을 사람들은 나를 쫓아낼 계획을 세웠다. 나는 알면서도 모르는 체했다. 당장 이곳을 떠나면 어디 갈 곳도 마땅히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엄마의 따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희야, 어떤 일이 생겨도 딱 2년만 더 살아.”

  “네, 그럴게요.”

  나도 모르게 씩씩하게 대답했다. 확실한 내 편인 것 같아 용기가 생겼다. 엄마의 목소리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어떤 말로도 누구도 절대 반박할 수 없게끔 분별력이 정확하고 단호한 목소리였다. 엄마를 찾아온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오랜만에 다른 주말보다 두 시간 정도 더 늦잠을 잤다. 한참 단잠에 빠졌는데 엄마가 깨웠다.

  “연희야, 지금 잠잘 때가 아니야. 빨리 일어나. 건너편 빈 하우스에 불이 났어.”

  “뭐라고, 우리 집에 불났다고?”

  나는 비몽사몽간에 눈을 비비며 하우스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그 사이 소방차가 출동하여 우리 하우스 직전에서 불길이 잡혔다. 조금만 늦었더라도 하우스와 나는 화마에 휩싸인 채 한 줌 재가 될 뻔했다. 휴, 날이 갈수록 일상이 무섭고 두려웠다. 세상에 홀로 남겨졌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란 걸 알기에 다시 또 힘을 낼 수 있었다.

  마침내 수능 날이었다. 나는 별다른 거 없이 집에 있던 반찬으로 간단한 도시락을 챙겨 집을 나섰다. 내가 수능을 치를 학교는 집과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대중교통을 이동했다. 전날 언어영역을 살펴본다고 해놓고 깜박 잠이 들었던 시간이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문제지를 받기 전 잠시 눈을 감았다. 내 몸 안에서 엄마의 기운이 감지됐다. 나는 비교적 긴 문장도 긴 지문도 막힘없이 읽었고 답을 적었다. 수능의 모든 영역이 끝나는 종이 울리자, 나를 지켜주던 엄마의 혼이 스르르 빠져나갔다. 나도 힘이 빠졌다.

  수능이 끝난 후 손님이 놓고 간 자동차에 먼지가 뿌옇게 쌓인 것을 보았다. 나는 운전면허증을 취득하기로 했다. 가까스로 면허 시험에 통과하여 생애 첫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았다. 그날 밤, 엄마를 태우고 멋지게 드라이브하는 꿈을 꿨다.

  “엄마 타요.”

  “웬 자동차야? 운전면허증은 있니?”

  “당연하죠.”

  “차가 고급스럽게 생겼네.”

  “그렇지.”

  “근데 차는 어디서 났니?”

  “몰라, 선물이래. 자동차가 생기면 엄마랑 바닷가에서 일출 보기로 했잖아요.”

  “그랬구나. 난 까맣게 잊어버린 거 같은데.”

  “엄마 안전띠 잘 맸죠? 자 그럼 출발!”

  바깥 날씨가 조금 추웠지만 운전하는 데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늦은 저녁을 먹고 출발한 탓인지 평일 도로는 한산했다. 초보운전인데 하필이면 야간 운전이라니, 핸들을 꼭 잡은 두 손에 땀이 고였다. 나는 맨 끝 차선을 차지한 후, 한 번도 차선을 변경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쌩쌩 달리는 차들이 무서워서 시도조차도 못 한 꼴이었다. 나의 긴장된 마음을 눈치채지 못한 엄마가 답답한 듯 물었다.

  “연희야, 너무 천천히 주행하는 거 아니니?”

  “초보운전이라 후들후들하거든요. 그렇더라도 조금 더 밟아볼까요?”

  “그래. 차들도 많지 않은데 이럴 때 속도를 내 봐야지.”

  “알겠어요, 이제 말 시키지 마요.”

  나는 조금씩 속도를 높였다. 긴장감도 높아졌다. 터널을 빠져나오자마자 끼익, 커브 길에서 브레이크를 급하게 밟아 차가 휘청거렸다. 어어 하다가 가까스로 속도를 줄였다. 휴, 하마터면 뒤집힐 뻔했다. 다리가 후들거려 차를 세우고 싶은데도 마음대로 멈출 수가 없었다. 휴게소는 아직 멀었고, 갓길 정차는 더더욱 할 수 없으니 답답할 뿐이었다. 놀란 가슴을 최대한 안정시키며 천천히 주행하기로 했다. 마음 놓고 서행하는데 트럭이 경적을 울리며 내 차를 앞지르기하다 덮칠 뻔했다. 나는 두 번째 끼익, 하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두리번거리며 엄마를 찾았다. 아무래도 이번 주말쯤 차를 몰고 엄마한테 다녀올 성싶었다. 집을 막 나서려는데 편안하고 안정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연희야, 어떤 모녀가 집으로 올 거야.”

  “네? 그럼 어떻게 하면 되나요?”

  “대학 입시를 물을 텐데, 네가 잘 얘기해 주렴.”

  “제가요? 어떻게요?”

  “……”

  “엄마? 엄마?”

  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덜컹 겁이 났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을 해봐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 자신이 없었다. 며칠이라도 도망을 가야겠단 생각만 집요했다. 피할 거라면 지금 당장 도피해야 했다. 주섬주섬 옷을 챙기는데 엄마의 까만 원피스가 보였다. 문득 다시 입어 보고 싶었다. 그때의 스산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지고 머리가 맑아졌다. 미래를 예언하는 보이지 않는 어떤 에너지가 몸 안에 전류처럼 퍼진 듯했다. 나는 조금씩 용기가 났다. 그 후 까만 원피스를 입고 사람들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예언하는 말투가 됐다. 거짓말처럼 엄마가 말했던 모녀가 찾아왔다.

  “저기요, 안에 계십니까?”

  나는 차분하게 손님을 맞이했다.

  “어떻게 오셨나요?”

  “방 여사님을 찾아왔는데요.”

  “일단 들어오세요.”

  나는 손님이 마실 차를 준비하여 마주 앉았다. 모녀는 서로 눈치를 보는 듯하다가 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 이번 수능 점수로 어느 대학 갈 수 있을까요?”

  “본인이 가고 싶은 대학과 부모님이 원하는 대학이 같은가요? 아니면 전혀 다른가요?”

  “대학과 전공 분야 모두 달라요.”

  “그럼 본인이 가고 싶은 대학과 관심 있는 학과를 얘기해 주세요.”

  “네. 저는 S 대학, 심리학과요.”

  “아 거긴 정시모집에서 될 거 같아요.”

  옆에서 듣고 있던 엄마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심리학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많은 듯했다. 어머니께 물었다.

  “어머니가 원하는 딸의 진로가 따로 있나요?”

  “그럼요, 당연히 있지요.”

  “얘기해 줄 수 있나요?”

  “실은 외동딸이지만 아빠가 일궈놓은 중견 기업의 사업을 물려주고 싶거든요. 그래서 S 대학 경영학과에 다니면서 사업 경영할 수 있게 배우기를 원했던 거예요. 근데 쉬운 길을 놔두고 굳이 왜 힘들고 어려운 길을 가려는지 이해가 안 돼요.”

  “그러시군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따님은 S 대학 경영학과와는 인연이 없습니다. 따님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삶이 행복해져요.”

  “따님은 사업에 관심이 없네요. 봉사하는 삶에서 희열을 느끼는 성향이거든요.”

  “참 나. 뭐 그따위 성향이 다 있어요.”

  “요즘 청년들은 남의 시선보다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길 원하거든요.”

  모녀의 표정이 엇갈려 나는 부러 시선을 피하는 척하며 말했다. 모녀가 돌아간 후 바로 까만 원피스를 벗었다. 홀가분했다. 뭔가 묵직한 부담에서 벗어난 듯 한없이 자유로웠다. 그다지 입을 만한 옷은 아닌 거 같았다. 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엄마의 유품이기도 하고, 엄마와 소통하는 길이 끊어질까 봐 쉽게 버리지도 못했다. 나는 커피 한 잔을 들고 하우스 주변을 산책했다. 노랗게 피어난 수선화가 반겨주었다. 제법 쌀쌀한 날씨가 발걸음을 재촉했다.   

  

  입춘이 지난 며칠 후 함박눈이 왔다. 나는 빗자루를 들고 하우스 지붕이 무너지지 않게 쌓인 눈을 쓸어내렸다. 그때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연희야, 오늘 긴 생머리에 키가 큰 어떤 탈 가정 청년이 올 거야. 외면하지 말고 하룻밤 재워주렴.”

  “네? 일면식도 없는 전혀 모른 사람을 재우라고요?”

  “그래. 그래도 너를 해치진 않을 거야.”

  “엄마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혹시 엄마 지인이에요?”

  “음, 그게 말이다. 설명하기 좀 복잡하긴 한데.”

  “그래도 얘기해 주세요.”

  “그 청년은 너의 언니란다.”

  “뭐라고요, 언니라뇨?”

  “네가 대학생이 되면 모든 걸 다 얘기하려고 했거든. 더 늦기 전에 이제라도 얘기해 줄게. 비록 몸은 떨어져 있어도 다 이해하리라 믿는다.”

  “잠깐만요, 그냥 하지 마세요. 별로 듣고 싶지 않아요. 전 지금이 딱 좋아요. 혼자라도 외롭지 않거든요.”

  “그래. 예고 없이 날아온 불청객 같은 소식을 접한 너의 당황스러운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난 이 얘기를 해야지만 이승을 떠날 수 있어. 날 도와줄 수 있겠니?”

  “……”

  나는 말을 계속 잇고 싶지 않아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 다시 입을 열었다.

  “얘기하세요, 엄마.”

  “결혼하기 전 데이트할 때부터 조금씩 나타난 아빠의 언어폭력을 견디기 힘들었단다. 몇 번이나 헤어지려고 했는데 그때마다 더 과격해진 언어폭력과 폭행이 무서워 그냥 참았었지. 그때 이미 마음에 병이 들었던 거야. 죽고 싶었고, 죽으려고 했고, 살아야 할 어떤 이유도 찾지 못했어. 살아있다는 자체가 원망스러워도 내 뜻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더라. 그때 속이 메스꺼워 병원에 갔더니 임신이라는 거야. 제기랄, 기쁨보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지. 어쨌든 아이를 가졌다고 하니 아빠의 폭력도 약해진 듯했어. 어쩌면 아이로 인해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를 하게 되더라. 하지만 폭력은 기대만큼 쉽게 고쳐지지 않았어. 이란성쌍둥이를 키우다 보니 삶이 더 팍팍해지고 힘들더라. 이대로 살다 간 다 죽을 것 같으니 얘들을 위해서라도 헤어지자고 했어. 결국 언니는 아빠가 키우기로 하면서 본가로 들어갔고, 난 너를 데리고 아예 본가에서 뚝 떨어진 동네를 찾다 보니 수도권 어느 산 밑까지 왔던 거야. 비록 허름한 하우스이긴 해도 내겐 천국이나 다름없었지. 거의 세상 사람과 단절하다시피 했어도 연희 네가 있어 더없이 행복한 삶을 살다 온 거 같아.”

  “그렇게 고생만 했던 불쌍한 엄마를 너무 빨리 데려간 하늘이 원망스러워. 엄마가 삶을 연장해 달라고 빌어보지, 그랬어.”

  “그러게, 말이다. 아무리 미래를 예측하는 감이 뛰어나도 본인의 운명은 알 수 없는 것 같더라.”

  “맞아요. 그건 그런 거 같아요.”

  “연희야, 너의 쌍둥이 언니 연수를 부탁해.”

  “연수 언니라고요?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어요. 뭐가 뭔지.”

  내가 자신 없는 연약한 목소리로 대답할 때 엄마의 목소리가 바람처럼 사라졌다.

  

  나는 혼란스러운 마음에서 벗어나 하우스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다. 갈피를 잡지 못한 마음이 서성이는데 누군가 인기척이 들렸다.

  “실례합니다, 여기가 연희네 집인가요?”

  “네, 맞습니다. 그런데 누구시죠?”

  “저는 연수라고 합니다.”

  “네? 연수요?”

  아뿔싸,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나는 소름이 돋았다. 엄마가 말해준 그대로였다. 연수 언니는 긴 생머리에 키가 컸다. 나는 키가 별로 크지 않은데 의외였다.

  “일단 들어와요.”

  “네.”

  “여길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얘기해 줄 수 있나요?”

  “저는 아빠랑 할머니랑 살았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아빠의 폭력이 심해서 자주 도망가는 꿈을 꿨어요. 스무 살이 되자 지옥 같은 집에서 더는 희생당하기 싫어 무작정 뛰쳐나왔죠. 아빠와 연을 끊고 가족은 아예 무시한 채 혼자 살기로 작정했지요. 그런데 막상 집을 나와 보니 갈 데가 마땅치 않았지만, 아빠의 폭력을 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했어요. 이젠 성인이 되었으니 어떻게든 살아낼 거 같았거든요. 때론 아르바이트하던 공장 기숙사에서 쪽잠을 자기도 하고, 친구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기도 하면서 지금까지 잘 견뎠죠. 근데 며칠 전 아르바이트하던 사업장으로부터 경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더는 계약할 수 없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무너진 상실감이 커 세상 무엇과도 마주하고 싶지 않아 일찍 잠이 들었어요. 그날 밤, 엄마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던 것 같아요.”

  “그랬군요. 엄마가 뭐라고 하던가요?”

  “수도권 어느 산 밑 하우스에 사는 연희를 찾아가라고 하더라고요.”

  “그랬군요. 제가 연흰데요.”

  “연희가 제 동생이라고 하던데. 쌍둥이 동생. 하지만 저는 동생이 있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아서 확인도 할 겸 찾아온 거예요. 혹시 쌍둥이 언니가 있다는 말 못 들었나요?”

  “……”

  나는 무어라 답을 할까 고민이었다. 여러 가지로 얽히는 게 싫어 차라리 금시초문이라고 말할까도 싶었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것 솔직하게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연수 언니라고 했죠? 나 언니 동생 연희 맞아.”

  “뭐라고? 그럼 꿈에서 말해주던 엄마의 목소리가 거짓이 아니었구나.”

  “사실은 나도 며칠 전에 엄마가 말해주었거든. 쌍둥이 언니가 찾아올 거라면서.”

  “어머 그랬구나. 엄마는 지금 어디 계시니? 보고 싶구나.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엄마 얼굴을 보지 못한 거 같아.”

  “나는 아빠의 얼굴을 몰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럴 수 있지. 근데 난 아빠와 연을 끊었으니 더는 내게 묻지 마. 너한테는 미안하지만, 초점 없는 흐릿한 그 눈빛을 다신 기억하고 싶지 않아. 내가 사는 날 동안 아빠란 인간 절대 보지 않을 거야. 어차피 누구의 도움 없이 탈 가정 청년으로 살아갈 결심 했었으니까 살아보려고 해.”

  “알겠어.”

  “근데 엄마는?”

  “……”

  나는 침묵을 깨고 힘겹게 말했다.  

  “죽었어.”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연수 언니의 온몸이 파르르 떨렸다. 그대로 바닥에 꼬꾸라지더니 한동안 일어나지도 눈을 뜨지도 못했다. 나는 꺼이꺼이 울며 슬픔에 젖어 있던 연수 언니가 충분히 애도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었다.   

  

  며칠 후 연수 언니는 옷가지를 챙겨 하우스로 이사를 했다. 나는 흔쾌히 받아주었다. 쌍둥이 자매들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나는 언니한테 딱 한 가지만 부탁했다.

  “언니, 다른 거는 다 같이 써도 상관없는데 까만 원피스는 절대 손대지 말고 입어보지도 않았으면 좋겠어.”

  “응. 걱정하지 마. 절대 손대지 않을게.”

  나는 언니가 너무 쉽게 대답한 것 같아 오히려 불안했다. 오랜만에 하우스에 웃음꽃이 피어나고 활기가 넘쳤다. 언니가 하우스 주변을 둘러본 후 내게 물었다.

  “연희야, 우리 텃밭을 제대로 가꾸어 볼까?”

  “언니가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자. 나도 찬성이야.”

  “작고 보잘것없는 땅이지만 암흑 같은 흙 속에서 꿈틀거리며 올라온 생명력을 현장에서 경험하고 싶어. 살아있다는 게 아니 살아난다는 게 얼마나 신비로운 것인지 제대로 느껴보고 싶단 말이지.”

  “언니의 바람대로 살기 위해 몸부림치듯 어떤 환경에도 죽지 않은 생명력이, 우리의 삶에도 이어질 수 있다는 걸 기대해도 될 거 같아.”

  “그래. 곧 봄이 올 거야.”

  나는 연수 언니를 엄마가 보내준 선물이라 생각했다. 언니가 집으로 들어온 후 엄마의 목소리가 뜸했다. 나는 대학을 지원했고 언니는 대학을 지원하지 않았다. 나는 외출할 일이 많았다. 꽃샘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외출에서 돌아온 어느 날이었다. 언니가 까만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나는 가방을 바닥에 팽개치고 다짜고짜 언니한테 물었다.

  “까만 원피스는 만지지도 입지도 말랬잖아. 빨리 벗어.”

  “미안해. 너무 궁금해서 살짝 걸쳐본 거야.”

  언니가 까만 원피스를 벗었는데도 나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엄마의 기운을 언니한테 뺏길까 봐 전전긍긍했다. 차라리 까만 원피스를 입고 외출하는 게 나을 성싶었다. 그날 이후 나는 외출하는 날엔 무조건 까만 원피스를 입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는 사람들의 미래가 곧잘 예측되었다. 특히 학생들의 진로를 예측한 것은 백발백중이었다. 때때로 나도 소름이 돋았다. 대학가에 소문이 돌았다. 나를 찾는 취준생들이 많아지면서 바빠졌다. 사람을 만나 상담해 준 시간은 모두 무료였다. 취준생들의 적성에 맞는 직업을 얘기할 땐 뭔지 모를 희열이 느껴졌다. 나의 어깨도 덩달아 우쭐했다.   

  

  하우스 대각선에서 보인 저녁노을에 매료되어 넋 놓고 있는데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연희야, 언니를 받아줘서 고맙다. 그리고 욕심부리지 않고 네가 가진 재능을 아낌없이 나눠주어 더욱 고맙다. 까만 원피스는 세탁하면 절대 안 된다. 자매끼리 싸우지 말고 서로 의지하며 잘 살아. 이제야 편하게 내 길을 갈 수 있겠구나. 참, 내년쯤 거기 하우스는 금싸라기 땅 황금 하우스가 될 거야. 조금만 더 기다려.”

  “네? 황금 하우스라뇨? 엄마? 엄마?”

  나는 다급하게 엄마를 불렀다. 그 후 엄마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까만 원피스를 입은 채 연수 언니랑 저녁 산책을 나섰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왔다. 비를 맞은 까만 원피스가 조금씩 흐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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