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다 토하고 놓아버려'
법원 앞 도로는 한산했다. 점심시간이 막 지나서인지도 모르겠다. 질질 끌던 나의 결혼생활에 대한 판결은 예상 시간보다 빨리 끝났다. 마음이 홀가분해진 기분 탓인지 곧장 집으로 가긴 싫었다. 택시 정류장에 서 있는데 체크무늬 롱코트 옷깃 사이로 찬바람이 훅 들어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뭔가 허전한 것 같으면서도 채증은 여전했다. 종잡을 수 없는 허망한 마음은 입춘이 막 지난 날씨를 닮았다. ‘시인 진달래, 이제 너는 자유인이야!’ 나는 다짐하며 택시를 탔다. 뒷좌석에 앉았다.
“어서 오세요, 어디로 모실까요?”
짧은 커트 머리에 진한 선글라스를 쓴 택시 기사가 상기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은 없었다. 집만 아니면 어디든 괜찮았다.
“일단 직진해 달리세요. 저 오늘 자유인이 됐거든요.”
“손님, 그래도 목적지는 있을 거 아닙니까?”
택시 기사는 룸미러로 나를 힐끗 보며 다시 물었다.
“여기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가주세요.”
“네? 어디라고요?”
“바다가 보이는 카페요!”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택시 기사는 더 묻지 않았다.
전날 깊은 잠을 자지 못해 피곤했다. 눈을 감았다. 이대로 고요히 잠이 들면 어떨까, 깨워도 깨워지지 않는 그런 잠. 그때 가방 속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저장된 번호가 아니었다. 받을까 말까, 썩 내키지 않는 통화버튼을 오른쪽으로 슬쩍 밀었다.
“달래야, 나야 송화. 전화번호가 달라서 놀랐지? 핸드폰이 깨져서 새로 샀어.”
“그랬구나. 넌 여전히 잘 지내고 있지?”
“그냥저냥 사는 거지. 넌 어때?”
“응, 나도 그렇지 뭐.”
“달래야, 실은 나 병원에 다녀오는 길인데 시간 되면 만날까?”
“어머, 어디가 어떻게 언제부터 아팠어?”
“좀 됐어.”
“근데 오늘은 좀…. 미안해, 내가 전화할게.”
나는 모처럼 혼자된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아 서먹하게 전화를 끊었다. 아무래도 마음이 영 찝찝했다. 그때 택시 기사가 물었다.
“저기 혹시 방금 통화하신 분, A 중학교 얼짱이었던 채송화 맞나요?”
“맞아요, 근데 왜죠?”
“저도 거기 졸업했거든요.”
“어머나, 그럼 이름이 뭐예요?”
“나리, 오나리.”
“달리기 잘했던 오나리?”
너무 반가웠다.
“난 진달래야. 우리 얼마 만이야.”
“중학교 졸업 후 처음 보는 것 같은데.”
택시 기사는 그제야 선글라스를 벗고 상기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뒷모습은 영락없는 남자였으나 목소리 톤이 약간 높았기에 여자지 싶었다. 하지만 동창일 줄은 전혀 뜻밖이었다.
“야, 이런 우연도 있네. 나리 넌 잘 사는 거지? 결혼은?”
“아직 혼자 사는 게 좋아서. 아니 구속당하는 게 싫다고 해야 하나.”
“그럼 계속 혼자 살 거니?”
“아마도 그럴 거 같아. 난 하고 싶은 게 많거든.”
“부럽다 얘.”
“부럽긴, 아주 웃기는 삶이지.”
나리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거침없이 풀어놓았다.
“기차여행 중에 어떤 남자를 만났어. 바로 옆자리에 앉은 그 남자는 두 살 많았지. 교제하는 동안 괜찮다 싶어 결혼할 단계에 이른 거야. 그런데 자꾸만 결혼을 미루길래 뒷조사했더랬어. 알고 봤더니 그는 가정을 가진 남자더라고. 개자식. 그런 쓰레기 같은 남자한테 몸과 마음을 줬다는 게 쪽팔리고 싫어서 그의 가정을 파괴하고 죽어버리려고 했어. 근데 며칠 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죽으면 나만 억울할 거 같은 거야. 그의 가정을 깨지 않으며 자존을 지키기로 마음먹었어.”
나는 믿기지 않았다. 중학 시절 나리는 줄곧 반장을 했고, 달리기도 잘했다. 요란스럽지 않게 주변을 장악하는 나리의 통솔력과 카리스마를, 친구들은 부러워했다. 그런 나리가 어쩌다 택시 기사를 하게 되었는지 무척 궁금했다. 나리는 궁금증에 관한 이야기를 묻기도 전에 말해주었다.
“사실 대학 졸업 후 취직이 잘되지 않아 산전수전 다 겪은 후 마지막으로 운전하는 게 좋아 택시 회사에 입사했어. 그 후 개인택시에 이른 거야.”
“그랬구나, 마음고생 좀 했겠다.”
나는 솔직히 꼬집어 잘했다고 말하지 못했다.
이어서 나리가 느슨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좀 힘들긴 했어. 진짜 되는 게 없어서 차라리 죽어버릴까 생각도 했지.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잘하는 건 공부보다 운전이더라고.”
“참, 나리답다. 잘하는 것을 찾아서 열심히 살고 있으니.”
“그런가. 어머, 혼자만 너무 떠들었잖아. 이제 네 이야기 좀 듣자.”
“내 얘기?”
나는 당황스러웠다. 그러잖아도 나의 삶을 물을까 싶어 중간쯤에 내릴까도 생각하던 차였다. 차마 내 입으로 말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기엔 시간이 필요할 거 같았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이미 속에 있던 말을 끄집어내고 있었다.
“남편은 다수가 부러워한 공기업의 연구원이었어. 머리는 좋으나 몸이 약한 편이었고 날카롭게 지적하는 버릇이 있었지. 지인의 소개로 만나 삼 개월 만에 결혼해 살아보니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하나씩 보이는 거야. 그런데도 그게 사랑과 관심이려니 생각했어. 시간이 흐를수록 내 의견은 아예 못 들은 척 무시되기 일쑤였고, 퇴근한 그와 집안 곳곳에 쌓인 먼지를 닦아야만 저녁을 먹는 심각한 청결주의자였어.”
“어떻게 살았니. 너무 힘들었겠는걸.”
나리는 화가 난 목소리로 내 말을 부추겼다.
“그뿐만이 아니야. 어쩌다 마실 나온 햇살이 가득한 집에 둘이 있다 보면 번개보다 빠른 찌릿함이 성감대를 터치해 올 때가 있거든. 그럴 땐 하던 일을 멈추고 강렬한 섹스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한 번도 해보지 못했어. 끝끝내 나의 욕망이 해결되지 않자, 몽롱한 눈빛을 따라 도톰한 입술로 관능적인 키스를 하다 거칠게 호흡하며 가슴골을 타고 애무하는 모습을 혼자 상상하곤 했지. 남편의 오래된 습관은 계절에 상관없이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다는 거였어. 항상 청결한 몸을 유지해야 안심이 된다는 사람이었거든. 샤워를 마친 남편은 내가 침대 위로 올라오기 전 이미 숙면에 빠진 날이 많았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적응할 수 없는 것들이 타협점을 찾지 못하면서 부부 사이가 삐걱거렸던 거야.”
이상하다. 철저하게 숨겨 놓은 이야기가 입 밖으로 나오자 거침없이 쏟아졌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한 번쯤 어느 곳에라도 토해내야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기라도 한 것일까.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로 할 수 없는 얘기들을 떠올렸다.
남편은 결혼 전 함께 살았던 반려견을 데려왔다. 설마 우선순위에서 밀릴까 싶었는데, 예감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정확했다. 그는 나를 개새끼 뒤에 세웠다. 나는 반려동물보다 아이를 좋아하는데 정작 내 아이는 없다. 누구의 책임인지는 굳이 말하고 싶지 않다. 언제부턴가 나의 내면에 차곡차곡 쌓인 것은 행복이 아니라 외로움이었다. 보이지 않은 공허함이 무서운 속도로 내 안에 침투되는 걸 보면서 슬슬 나머지의 삶이 불안해졌다. 섹스 리스로 살아온 지난 십 년 동안의 삶을, 그야말로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쇼윈도 부부였다는 것을, 집이란 곳이 결코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만이 아니었음을, 숨이 막혀 죽을 거 같은데 그 흔한 여행조차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강박적인 현실을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만 하는 안타까움을 뼈저리게 경험한 삶이었다는 것을, 여자로서 단 한 번도 오르가슴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다는 말을, 모범생이었던 내가 어떻게 실패한 결혼이란 걸 친구에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나의 자존감은 이미 바닥으로 내려와 온데간데없었다. 결혼한 후 여자로서 매력을 마음껏 발휘하며 살겠다던 야무진 꿈이 사라지고 오늘이 온 것이었다.
나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아까 법원에서 도장 찍고 나온 거였니?”
“어.”
나는 미련 따윈 아예 없다는 말투로 짧게 대답했다. 하필이면 오늘 내 생일이기도 했다. 구속에서 벗어난 첫 번째 자유를, 혼자여서 더 좋을 시간을, 마치 내일 세상이 끝날 것처럼 만끽하고 싶었다. 마흔 즈음에 새로운 반란이 시작될 거 같아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서울을 벗어난 택시는 월곶 교차로에서 우회전하여 배곧신도시를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창밖을 보며 나리를 불렀다.
“나리야, 잠깐만 천천히.”
“왜 무슨 일인데.”
나리는 비상 깜빡이를 켜고 도로 우측에 차를 세웠다.
“저기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는 얘, 송화 같아.”
“아까 통화하던 송화?”
“맞아. 병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는데, 왜 여기 있지?”
“이 동네 사나 보지.”
“아니야, 송화는 서울역 근처에 살아.”
“아까는 일이 있다고 했잖아.”
“사실 일이 있는 건 맞아. 내가 가서 만나보고 올게.”
나는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송화는 그 자리에서 넋 놓고 앉아 있었다. 내가 다가가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내가 먼저 어깨를 살짝 쳤다.
“송화, 맞지?”
송화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어 달래야, 여기는 어떻게 왔어?”
“지나가는 길인데 꼭 너 같아서 잠깐 내렸어. 아까 통화할 때도 여기 있었던 거니?”
“그땐 병원에서 막 나와 서구. 집에 가기 싫을 때 가끔 들리던 곳이 근처에 있어.”
“그렇구나, 시간 괜찮으면 나랑 같이 바닷가 갈래?”
“정말? 함께 가도 돼?”
“당연하지. 얼마든지 환영이야. 나 오늘부터 완전 자유인이야.”
“고마워.”
송화는 동창을 만났는데도 뭔지 모를 불안한 기색을 보였다. 어쨌거나 송화의 합류로 작은 동창회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송화가 택시를 타자, 나리가 격하게 반가움의 표시를 했다.
“어서 와, 동창이 운전한 택시는 처음이지?”
“그래그래, 너무 반갑고 멋지다 얘.”
“멋지긴, 뭐가 멋져. 밥은 먹고살아야 하니까.”
“하여간 우리가 지금 택시에서 만나고 있단 사실이 믿기지 않아.”
내가 거들자 나리가 말을 받았다.
“맞아, 나도 몇 년 동안 택시 운전하면서 동창을 손님으로 태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거든.”
“이건 운명 같은 거야.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아. 이제야 좀 살 것 같아.”
송화의 상기된 목소리에 나는 맞장구를 쳐주었다.
“맞아, 우리에게 어떤 행운이 따를 거 같아. 오늘이 내 생일이거든. 왠지 생일날은 마음먹은 대로 될 것 같은 감이 오지 않니?”
“좋아, 달래 생일파티도 하고 의기투합해서 멋진 시간을 갖자. 참고로 난 음악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어.”
송화의 목소리만 들어도 매우 고조되어 있어 금방이라도 어떤 결과물이 나올 것 같았다. 어쩌면 호시탐탐 현실을 벗어날 기회만 엿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자꾸만 송화의 말투가 신경이 쓰였다. 아니나 다를까 송화는 “내 형편에 음악은 무슨 음악이야.” 하더니 금세 시무룩해져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택시 안에 부자연스러운 침묵이 흘렀다.
거리를 걷고 있던 사람들은 두꺼운 패딩을 벗고 가벼운 코트 입성하고 그들만의 자유를 만끽하며 지나갔다. 발걸음이 가볍고 편안해 보였다. 한참 동안 창밖만 보고 있던 송화가 입을 열었다.
“요새 부쩍 죽고 싶을 만큼 우울했어.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고. 오늘도 병원에 다녀오긴 했으나 나아지질 않은 거 같아.”
나와 나리는 차마 무슨 병인가를 물을 수 없었다.
송화가 계속 말을 이었다.
“얘들아, 고마워. 결혼한 후 처음 만난 친구들한테 내 속병을 거리낌 없이 얘기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살 거 같아. 사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한참 사춘기로 예민할 때 남편의 외도를 발견한 거야. 도저히 그 얼굴을 마주 대하고 싶지 않더라. 그래서 일단 아들이 대학 갈 때까지 별거하자고 했어. 때때로 원망과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오를 때면 억울해서 잠을 잘 수가 없었어. 그런 날이 거의 매일 지속하였지. 그때부터 술을 먹기 시작했어. 절대 도움이 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술을 끊을 수 없었어. 난 지지리 복도 없는 년이야.”
마음 깊은 곳에 숨겨 놓은 응어리를 용기를 내 꺼내준 송화가 고마우면서도 안쓰러웠다. 어떻게 안아주고 보듬어줄까. 어떻게 해야 그 아픔 그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나도 송화도 막막했다. 택시 안의 공기가 탁했다. 생각할수록 지나온 삶이 불공평한 느낌이 들자, 내 안에서 주먹보다 단단한 무엇이 폭발할 것 같았다.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분위기를 전환하고 싶은 그때였다. 눈치 빠른 나리가 룸미러를 보며 택시 기사답게 말했다.
“손님, 드디어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도착했습니다, 분위기 만점입니다.”
“어디? 빨간 등대가 보인 거 보니 맞네.”
“기사님, 여기 카드. 후회하지 말고 넉넉히 긁어요.”
“달래야, 나도 택시비 낼게.”
“아니야, 오늘은 내가 다 쏠 테니 부담 갖지 말고 즐기기만 해.”
오후 다섯 시를 막 넘기고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들어서자 오늘의 마지막 햇살이 블라인드 사이로 스며들었다. 운이 좋은 날엔 카페에 앉아서 해넘이를 볼 수 있다는 창가 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나리와 송화는 따듯한 카페라테, 조각 케이크, 나는 샷을 추가하여 따듯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잠시 후 종업원이 조각 케이크와 주문한 커피 석 잔을 가져왔다. 작은 목소리로 나를 위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예전의 화려함은 사라졌을지라도 어느 때보다 의미 있는 날이라서 만족스러웠다. 혼자된 자유 시간을 기념하는 첫 번째 날이기도 했다.
모녀가 운영한 카페는 손님이 많았다. 카페 한쪽 작은 방에서 타로를 볼 수 있다는 상술이 적중했다. 우리는 커피를 마시면서 동시에 같은 곳에 시선이 멈췄다. 보아하니 모두 타로를 보고 싶은 눈치였다. 내가 의견을 제안했다. 현재 거머리처럼 달라붙은 각자의 힘듦에 머물지 말고 뭔가 재미난 일을 찾아 같이 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말하자면 각자의 시간을 합하여 누군가에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그런 일, 일명 찾아가는 봉사단을 만들고 싶었다. 나는 생각이 떠오른 김에 친구들에게 묻기로 했다. 나리에게 먼저 물었다.
“나리야, 혹시 색소폰 연주 가능하니?”
“연주하기엔 아직 아마추어야.”
“그럼 할 수 있다는 거고, 송화는 뭐 잘하니?”
“난 피아노를 전공했잖아. 다른 악기도 금방 배울 수 있을 거 같긴 해.”
“그럼 달래 넌 잘하는 게 뭐야?”
친구들의 생기 있는 분위기가 좋았다. 마지막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놀이 강사 자격증이 있었다. 그동안 별로 사용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참에 끼를 발산해야겠단 마음이 앞섰다. 아무리 동창일지라도 의견 일치가 단번에 되지 않을 법 한데 우린 의외로 잘 맞았다. 나도 모르게 카페 한쪽 방에 있던 타로를 통해 우리가 합심하여 선한 일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불쑥 솟았다.
“우리 저거 한 번 해볼까?”
내가 말을 꺼내자 약속이나 한 것처럼 나리와 송화가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나도 궁금했어.”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타로를 보는 방으로 갔다. 단발머리 파마가 잘 어울리는 타로 방주인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세 명이 동시에 들어갔지만, 주인 앞에 앉은 나리부터 차례로 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한 사람씩 타로를 뽑아 주인 앞에 놓았다. 주인의 눈에서 환한 빛이 뿜어 나왔다. 그의 입이 열렸다.
“세 사람은 무엇을 해도 이룰 수 있는 인연이니 뜻을 모으세요.”
방을 나온 우리는 각자의 재능을 기부하는 조건으로 의견이 일치되었다.
카페를 나와 빨간 등대가 보이는 둑길을 따라 걷고 싶었으나 허기진 배를 채운 후 걷기로 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곳, 오이도 조개구이 전문점으로 들어갔다.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조개껍데기까지도 삼킬 지경이었다. 빨갛게 타오른 숯불 위에 구이용 철망을 올려놓았다. 잠시 후 모둠 조개가 등장하자 대화가 중단되고 모든 시선은 일제히 불판으로 향했다. 한 손에 면장갑을 끼우고 시차로 벌어진 조개에 물이 빠지기 전 눈치껏 먹기 시작했다. 적당히 짭조름한 물이 목구멍으로 들어갈 때의 짜릿함은 예술이었다. 서로를 챙겨줄 겨를도 없이 잽싸게 가져다 먹었다. 소주 한 잔씩만 마시기로 했는데 벌써 서너 병째였다. 우리의 짓궂은 수다 떨기는 영락없이 중학 시절 그 순수했던 심성을 소환한 것 같았다. 어쩌면 모두가 혼자인 거나 다름없는 삶이지만, 이젠 서로 힘이 되어 줄 어떤 확신 같은 게 느껴졌다. 어디 그뿐인가, 더는 외롭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자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시장기가 완전히 가시고 포만감에 빠져 있던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쐬는 바람이 시원했다. 어둠이 깔린 둑길을 팔짱을 끼고 걸었다. 밤바람을 맞으며 끝이 보일 때까지 걸을 참이었다. 그런데 자꾸만 스텝이 꼬였다. 송화가 그대로 바닥에 꼬꾸라졌다. 창피한 줄도 모르고 큰 소리로 말했다.
“나, 너무 많이 마셨나 봐. 근데 기분 정말 좋다. 집도 남편도 아이들도 다 필요 없어. 너희들이 최고다.”
나리도 혀가 꼬인 상태로 말을 받았다.
“나 결혼하지 않은 거, 처음으로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고맙다, 얘들아.”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한다고 하더니. 몰라 난 아직 모르겠고. 이제부턴 오롯이 나의 행복을 위해 살 거야.”
평소에 하고 싶었던 말을 내뱉고 나니 후련했다. 우리는 각자의 삶을 돌아보며 출렁이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어둠을 뚫고 바다의 말이 들려왔다.
‘다 토하고 놓아버려.’
세 여자는 파도의 말에 위안받았다.
‘그래, 다 토하고 놓아 버리고 갈게.’
밤바다 바람에 술기운도 서서히 가셨다.
얼마 후 우리가 기획하던 거 연습하는 날이었다. 봉사단에 필요한 것들은 도움 없이 알아서 조달하기로 했다. 색소폰은 일찌감치 확보된 거나 다름없었고, 송화는 신시사이저를 구해서 연습하겠다고 했다. 나는 프로그램 진행하는 것을 맡았다. 재미난 게임을 준비하고 함께 부를 노래를 선곡하면서, 평소에 꿈꿔왔던 문학 정서를 곁들인 봉사활동이 곧 실행될 거 같아 자신감이 상승했다. 무엇보다 송화의 기분 상태가 안정적으로 돌아와 한 번도 연습 시간에 빠진 적이 없었다는 게 큰 수확이며 기쁨이었다. 생각해 보면 우린 참으로 외로운 삶을 살았다. 행복한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것, 그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더는 자신에게 방관하지 않을 것이었다. 우연의 일치 속에서 보일 듯 말 듯 마음가짐이 단단해졌다. 공연을 앞두고 송화가 말문을 열었다.
“얘들아, 마지막 총연습은 실전처럼 해보는 건 어때?”
“그렇긴 한데, 마땅한 장소가 없잖아.”
나를 빤히 쳐다보며 나리가 물었다.
“뭐야, 설마 우리 집?”
내가 웃으며 반문했다.
다들 공연이 다가오자 걱정되었던 모양이었다. 허름하긴 해도 전원주택이나 다름없는 우리 집이 그나마 안성맞춤이었다. 층간 소음 걱정을 안 해도 된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었다. 마음이 앞섰다. 나리의 색소폰은 차에 있었고, 집으로 가는 길에 송화네 집에 들러 신시사이저를 가져왔다. 해넘이 직전에 있던 마지막 햇살이 집에 도착한 우릴 반겼다. 거실 한쪽에 가지고 온 짐을 옮겨 놓고 바닥에 둘러앉아 커피를 마신 후 시작하자고 했다. 나는 즐겨 마시던 케냐 더블 에이 커피와 어제 사 온 참외를 꺼내왔다. 나리와 송화는 아삭한 참외를 한 입 베어 물고 동네 환경이 쾌적하다며 연신 부러워했다. 나는 언제든지 아지트로 내어줄 생각이 있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이제 슬슬 준비해 볼까? 거실이 무대라 생각하고 동선에 거슬리지 않게 신시사이저 위치를 잘 잡아야 했다. 그다음 나리의 포지션을 찾았다. 송화가 신시사이저 앞으로 의자를 바짝 당기고 앉아서 물었다. “우선 트로트 한 곡 어때?”
“좋아, 신청 곡은?”
“태클을 걸지 마!”
“다음 곡은, 나는 행복한 사람!”
송화가 악보를 찾아서 반주하고 나리는 색소폰을 불었다. 나는 모형 마이크를 잡고 초대 가수인 양 따라 불렀다. 간드러지게 불러야 하는 곳에서 목소리가 이탈하는 바람에 한바탕 웃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노래는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웃기는 마력 덩어리였다. 하지만 노래를 따라 부를 땐 마음먹은 대로 쉽게 되진 않았다. 희한하게 아까 틀렸던 부분만 나오면 유독 긴장된 티가 역력히 드러났다. 벌써 다섯 번째 그 부분을 넘어가지 못했다. 그런데도 우리의 얼굴엔 빛이 났다. 마치 행복이란 생각보다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는 걸 깨닫기라도 한 것처럼. 만만찮았지만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배가 고팠다. 목의 긴장도 풀 겸 저녁을 먹고 하는 게 나을 거 같았다. 가까운 마트에서 필요한 재료를 사고 포도주도 한 병 샀다. 전업주부였던 송화의 실력을 발휘할 좋은 기회였다. 나는 전적으로 도우미였다.
“달래야, 물 빠진 채소는 종류별로 잘 썰어서 둥근 접시 위에 가지런히 올려놔.”
송화는 주부다웠다. 이것저것 간섭할 때면 영락없이 언니 같았다.
“불고기 담을 그릇 좀 줄래?”
“알았어, 가져올게.”
나는 송화를 도왔다. 아예 포도주잔도 꺼내왔다. 소박하지만 근사하게 차려진 식탁에 둘러앉았다. 불고기와 월남쌈, 그리고 포도주 한 잔을 곁들이니 최고의 만찬이었다. 밤이 더 깊어지기 전 한 번 더 연습해야 하는데 몸이 리듬을 탔고 노래는 구성졌다. 분위기에 취한 탓도 있으려니 싶었다. 밤새 춤을 춘대도 지치지 않을 거 같았다. 그동안 넘쳐나는 흥을 표출할 기회가 없었던지, 아니면 저 깊은 어느 곳에 감추고 살았던지, 어쨌든 이제야 물 만난 고기처럼 파닥거리며 거실을 누비고 다녔다. 십 년 묵은 체증까지 내려간 듯, 한결 가벼워진 몸짓으로 힘찬 비상을 보는 듯했다.
이번 공연은 어느 문학회 회장님의 소개로 초청을 받은 터라 더욱 긴장되었다. 실내에서 하는 첫 번째 공연이었다. 목적지가 가까워지자 나리가 약간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문학회 모임이라는데 우리가 준비한 거는 트로트 곡뿐이잖아. 괜찮을까?”
“그러게. 뭔가 고상한 클래식 연주만 기대할 거 같은데.”
“그렇다고 한들, 인제 와서 어쩌겠어. 이참에 용기 있게 보여주자. 기죽지 말자”
별거 아니라는 말, 한 마디씩 하고 나니 긴장된 마음이 풀어졌다. 공연 장소로 이동하는데 갈증이 났다. 목을 축이면서 ‘노란 선글라스’의 공연 순서를 확인했다. 마디마디에 미세한 전율이 흘렀다. 아마추어 연주단인데도 마지막에 배정되었다. 사회자가 말했다.
“이번 순서는 오늘의 클라이맥스 ‘노란 선글라스’의 공연이 있겠습니다.”
우린 노란 원피스를 맞춰 입고 노란 선글라스를 쓴 채 무대 위에 올랐다. 나는 회원들이 기대하는 눈빛을 보았다. 너무나 강렬한 눈빛들이었다.
그들의 지적인 시선을 피하며 신시사이저와 색소폰의 적당한 거리를 확인한 후 마이크를 잡았다. 나의 무대 인사가 끝나고 곧바로 이어지는 색소폰 연주를 감상한 듯싶더니, 한 명 두 명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본능적 행동을 통제할 생각이 없었던 그들에겐 체면 따윈 없었다. 그들은 한 목소리로 ‘누구도 내 인생에 태클을 걸지 말라’는 메시지를 어두운 밤하늘을 향해 힘차게 외쳐댔다. 그러자 순간 나리의 색소폰 연주의 리듬이 바뀌었다. 나는 리듬에 맞춰 멘트를 넣었다.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
(길은 막다른 골목이 적당하오)
(길은 뚫린 골목이라도 적당하오)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지 아니하여도 좋소.
갑자기 공연장이 조용해졌다. 나는 멘트를 이었다.
13인의 노란 아해 인생에 태클을 걸수록 좋소.
13인의 노란 아해 인생에 태클을 걸지 않을수록 좋소.
이상의 <오감도> 시 제1호를 패러디한 내 2행시는 색소폰 연주의 주술적인 음향과 함께 노래 후렴처럼 회원들 마음 깊이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