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엔에프제이 Oct 17. 2024

만추

자꾸만 엄마의 입이 씰룩거린다

  엄마는 내 말을 듣기는커녕 막무가내였다. 원래 차분하던 성격은 도무지 보이지 않고 무언가에 홀린 듯 집 안에 있는 물건을 하나씩 던져가며 찾아댔다.

  ―민경아, 서랍에 있는 통장 네가 훔쳐 갔지?

  엄마는 은근히 나를 경계하며 물었다.

  ―아니야. 엄마 요즘 왜 그래. 잘 찾아보지도 않고 나한테 뒤집어씌우는 거야.

  어이없는 상황에 나는 화가 좀 났다.

  ―설마 M의 짓인가?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민경이 너지. 빨리 내 통장 가져와. 너 도둑년이지? 경찰에 신고할 거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이 들어갈수록 누구나 있을 법한 건망증 증세는 아닌 것 같았다.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것처럼 아찔했다. 집 안에 있을 만한 곳을 다 뒤져봐도 통장은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실망하여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어린아이처럼 시무룩해지더니 금세 힘이 빠진 듯했다. 엄마에겐 휴식이 필요했다.

  며칠 후 오래간만에 냉장고를 청소했다. 냉장실 청소가 끝나고 냉동실 서랍을 열고 청소하려는데 안쪽에 까만 비닐봉지가 냉동식품에 눌려 있었다. 봉지를 뜯어봤다. 봉지 안에 엄마가 찾던 통장이 다 들어 있었다. 엄마를 불러 통장을 전해주며 물었다.

  ―엄마, 냉동실 서랍에 통장을 넣어 둔 기억 안 나?

  ―난 모르는 일이야. 아니라고.

  엄마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시치미를 뚝 떼었다.

  ―알겠어. 근데 왜 갑자기 통장을 찾는 거야?

  ―M이 파트너 할 때 귓속말로 나를 꾀었거든.

  ―뭐라고 했는데.

  ―세상에서 뒤태가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면서 귀에다 막 바람을 넣는 거야. 그러더니 돈을 빌려달래.

  ―참 나. 그 말을 믿어? 빈말로 하는 소리를. 그런데도 댄스 아카데미 계속 다닐 거야?

  ―당연하지. 오늘 저랑 같이 춤 한 번 추실래요?

  엄마는 언젠가부터 빈말로 했던 말들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그러더니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늦은 오후, 근래에 몸과 마음이 유난히 힘들다고 말하던 엄마를 불러내 집 근처 공원을 산책했다. 좀 더 좋은 곳으로 갈 형편이 되지 않았기에 공원에서라도 바람을 쐬고 싶었다. 엄마는 싫지 않은 기색이었다. 길바닥에 쌓인 낙엽을 밟을 때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좋은지 부러 아이처럼 밟기도 했다.

  ―집을 나오니까 좋긴 좋다. 나뭇잎들이 언제 이렇게 쌓였지.

  엄마는 길바닥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소녀처럼 스텝을 밟은 시늉을 했다.

  ―오랜만에 사진 한 장 찍어줄까?

  나는 엄마의 설렌 대답을 듣고 싶어서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아니야. 이제 사진 안 찍고 싶다. 표정 관리가 잘 안 되니까 어색해. 이쁘지도 않고.

  지나간 세월을 아쉬워하는 듯 엄마의 목소리엔 힘이 빠졌다.

  ―그래도 여길 보며 웃어봐. 항상 사진 찍을 때 치아가 다 보이도록 웃었잖아.

  나는 핸드폰 카메라를 들고 엄마한테 바짝 다가가 아양을 떨며 얘기했다.

  ―이게 다 웃은 건데, 거봐 별로잖아. 그래서 안 찍는다고 했지. 혹시 제주도라면 모를까.

  엄마의 표정이 어두워졌고 마음에 든 사진 한 장을 건지지 못한 채 공원 데이트는 끝나고 말았다. 나온 김에 봉골레 파스타를 같이 먹을 생각에 마음이 들떴는데 그마저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언제부터였을까, 엄마의 얼굴에 웃음이 사라진 건. 어떤 구박을 해도 꿋꿋하게 브이를 그리며 집요하게 사진을 찍어달라던 엄마였는데. 무엇이 엄마의 사진 찍는 취미마저 체념하게 했을까, 생각할수록 가슴이 아렸다.  

  

  공항 근처에서 빌린 승용차를 타고 운전하는 데 익숙하지 않아 긴장했다. 평일 오후 세 시쯤이라 그런지 주차장이 한가했다. 군데군데 세워진 차를 피해 가장자리에 주차했다. 거의 직진만 했는데도 차에서 내릴 때는 초보운전 티가 날 정도로 다리가 후들거렸다. 내리자마자 맑은 공기와 함께 펼쳐진 풍광은 굳었던 입이 풀어지게 했다. 점차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주위를 둘러보곤 막 달려볼까 했는데 아무래도 무리일 거 같아 금세 그만두었다. 엄마는 차 안에서 궁싯거리고 있었다.

  ―엄마 뭐 해, 빨리 나와.

  ―잠깐만, 아까 선글라스 챙겼는데 안 보여서.

  엄마는 그리 따가운 햇볕이 아닌데도 모자와 선글라스를 써야 사진이 잘 나온다면서 기어이 선글라스를 찾아냈다. 습관처럼 쿠션을 한 번 더 얼굴에 두드린 후 그제야 차에서 내렸다. 나는 사진 찍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엄마는 오래전부터 사진을 찍을 때 다양한 자세를 취하는 게 모델 못지않게 자연스러웠다. 좌우 나무들이 우거지고 길의 끝이 보이지 않는 도로 한복판에서도 귀찮은 정도로 나를 불러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한때는 그게 왜 그렇게 짜증이 났는지 몰랐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아래 무리 지어 출렁거리는 은빛 억새를 보자 어김없이 카메라가 떠올랐다. 이번엔 기필코 엄마 마음에 쏙 들어 다시 봐도 미소 지을 수 있는 사진을 찍어주고 싶었다. 어느 때보다도 집중하여 잘 찍어보리라 마음먹었다. 새별 오름의 초입에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수많은 사람이 오갔던 황토색 길을 엄마와 나는 느린 걸음으로 걸었다. 오르막길을 오르다 사잇길로 빠졌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억새 숲은 바다를 옮겨 온 듯 은빛 물결로 출렁거렸다. 때마침 자리를 잡고 앉은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언뜻 보아도 육십 대 후반쯤으로 보인 부부의 대화였다.

  ―요즘엔 그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드네.

  ―그게 무슨 말이어요?

  ―젊어서 한창 일할 땐 당연히 내가 가정의 주인공 같았는데 지금은 조연도 아니고 겨우 엑스트라에 불과한데, 짝꿍이 나를 버리지 않고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런 생각이 든단 말일세.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은 주인공 맞아요. 적어도 내가 죽기 전까지는. 그러니 아무 염려 마요.

  엄마를 따라가던 길에 들려온 부부의 애틋한 대화가 가슴을 울먹였다. 엄마는 걸핏하면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를 쫓아 딴 길로 가버리기를 반복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조금씩 방향감각을 잃어갔다. 저만치 혼자 앞서가는 엄마를 불렀다.

  ―엄마, 같이 가.

  ―으응, 빨리 와.

  ―참 며칠 전에 댄스 아카데미 그만 다니라고 아빠가 난리 쳤다며. 그만둘 거야?

  나는 엄마에게 바짝 붙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 이제 겨우 나를 위한 삶의 방향을 찾은 거 같은데 그만둘 이유 없지.

  엄마는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곤 계속 말을 이었다.

  ―솔직히 오랫동안 해오던 명품수선집 문을 닫던 날, 내 삶이 무너지는 거 같았어. 아빤 변함없이 자기중심적이었고, 넌 너대로 독립된 삶을 살고 있었으니 난 어느 곳에도 마음 붙일 때가 없더라. 그때 지인의 소개로 댄스 아카데미에 등록하게 된 거야. 애석하게도 아빤 나의 파트너가 되어 줄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하더라. 좀 서운했어. 동작을 리듬에 맞게 따라 해야 하는 게 부담스럽지만, 정신이 살아있는 동안, 춤을 출 거야. 춤을 출 때 비로소 내가 살아 있는 것 같거든. 어쩌면 여자로서 마지막 호흡을 즐기는 것일지도 모르잖니.

  ―그럼 아빠랑 화해할 생각은?

  엄마의 눈치를 흘끔 살피며 물었다.

  ―글쎄. 지금으로선 반반이야.

  엄마는 확신이 없는 대답을 했다.

  ―나도 중재자 역할 지긋지긋해. 앞으로 제발 사이좋게 살면 안 돼?

  나는 귀찮고 불안한 기색을 들키지 않으려고 한 발짝 뒤에 따라가며 물었다.

  ―부부간의 문제니까 알아서 할게.

  엄마는 약간 짜증이 난 듯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러곤 갈증이 났던지 들고 있던 물을 쉬지 않고 벌컥벌컥 절반 이상을 마셨다. 정상까지 가는 길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오갔다. 정상을 밟고 온 자들의 여유로움과 반드시 정상을 정복하고 말겠다는 욕망에 이글거리는 자들, 그들은 모두 보이지 않는 어떤 관계망 안에서는 같은 동지인 듯했다. 엄마는 사람들이 없는 곳을 찾아 그새 멋진 자세를 잡고 서서 나를 불렀다.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으려는데 엄마의 모자가 보이지 않았다.

  ―엄마, 아까 모자 쓰고 왔잖아. 모자 벗고 찍을 거야?

  ―무슨 소리야, 모자 썼는데.

  엄마는 곧바로 머리를 만지더니 그때야 모자가 없어진 사실을 알았다. 분명 차에서 내렸을 때 모자와 선글라스를 챙겼는데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언제부턴가 종종 그랬다. 엄마의 기억력은 예상보다 빠르게 흐려져 갔다.

  그즈음 나는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엄마한테는 차마 말할 순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피하듯 한국을 떠나 낯선 나라에서 적응한다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반드시 성공해서 돌아오겠다는 각오로 부모님을 설득하긴 했으나 날이 갈수록 외국에서의 현실은 나를 외면하는 거 같았다. 외로웠고, 매일매일 답이 보이지 않는 내일을 만나는 게 두려웠다. 한국에 잠시 들어온 후 시간에 대한 경계가 풀린 탓이었을까, 엄마와 더 친밀해지고 싶은 까닭이었을까 그동안의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나둘 꺼내게 되었다. 제주도에서 처음으로.

  ―진작 말하지, 그랬어. 많이 힘들었겠구나. 지금은 어때?

  모처럼 엄마가 진심으로 묻는 것 같았다.

  ―약을 계속 먹으니까 좀 괜찮아졌어.

  나는 이제라도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 코끝이 찡해지는 걸 참으며 대답했다.

  ―이참에 한국으로 아예 들어올래?

  엄만 그동안 딸의 힘듦을 알아주지 못한 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글쎄. 그건 생각을 좀 해 봐야 할 거 같아.

  나는 들어오겠다고 바로 답하지 못했다.

  ―그래 알았다. 나도 요샌 엊그제 일도 기억이 잘 안 나거든.

  엄마는 말하는 사이사이에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남은 삶에 대한 뚜렷한 확신이 없어 무척 답답해했다. 어디선가 칼바람이 휙 불어와 얼굴을 스치듯 지나가는데 마음 한편이 찌릿했다. 나는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넋 놓듯 올려봤다. 그러자 곧 구름 떼가 몰려와 시야를 흩어버렸다. 뭔가 불투명한 미래, 말하자면 잠시도 예측할 수 없는 우리의 미래가 하늘 아래 홀로 힘겹게 서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엄마한테 별거 아니라고 안심시켜 놓았지만, 우려하던 염려가 현실이 될까 봐 가슴이 바짝바짝 탔다. 혹여 어디에서라도 불안한 내심이 나타나지 않게 표정 관리를 해야 했다.

  어느새 새별 오름 중턱까지 올라왔다. 땀으로 범벅이 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중간에 포기하지 않았음에 대한 칭찬을 해주었다. 그러곤 마땅히 편하게 앉을 만한 벤치를 찾지 못하여 겉옷을 벗어 풀밭에 깔고 앉았다. 다른 사람들도 쉬어가려는 듯 우리 옆쪽에 자리를 폈다. 얼핏 돌아보니 엄마 나이와 비슷한 오십 대 중반쯤으로 보인 초등학교 동창들인 듯했다. 엄마는 옆자리에서 들린 고향의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에 흥미가 생기자 몸이 그쪽으로 점점 기울어졌다. 의도치 않게 그들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있잖아. 얼굴은 반반하고, 아담한 키에 성격이 좀 까칠한 얘 그 거시기.

  ―아따 누구? 이름을 말해야 알지.

  ―순금이. 근데 왜?.

  ―얼마 전에 순금이가 어떤 댄스 경연대회에서 우승했대.

  ―어머 부럽다, 성격은 까칠해도 춤은 잘 추나 보구나.

  ―근데 그거 알아. 순금이는 춤추는 게 좋아 결혼 따윈 아예 생각도 안 했대.

  가만히 듣고 있던 엄마의 눈빛엔 부러움이 가득해 보였다. 단 한 번이라도 말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금방이라도 합류할 것처럼,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무언의 신호를 보내며, 이미 대화 내용의 결과까지도 알고 있다는 듯, 피식피식 웃었다. 곁눈질로 슬금슬금 그들을 바라보는 내내 엄마는 행복해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잇몸이 다 보이도록 환하게 웃던 엄마의 모습은 내가 좋아하는 함박꽃을 똑 닮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지만, 엄마의 마음이 어디쯤 가고 있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제라도 오롯이 엄마의 삶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의 마음을 물었다.

  ―엄마도 댄스 대회 나가고 싶어?

  ―음, 그렇긴 한데 난 아직 실력이 부족하잖아. 어림도 없지.

  엄마는 말끝에 약간의 미련을 남기며 말했다.

  ―이제부터라도 더 열심히 하면 되잖아. 엄만 충분히 할 수 있어.

  같은 여자로서 엄마의 삶을 응원하고 싶었다.

  ―아휴, 아빠가 댄스 아카데미 다니는 거 엄청나게 싫어하는데 무슨 수로.

  엄마는 무심한 듯 말했지만, 목소리는 열정적이었다.

  ―내가 아빠를 설득해 볼게.

  적극적으로 엄마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관둬라. 이 나이에 뻔한 잔소리 듣는 것도 싫고, 괜히 아쉬운 소리 하는 거 같아 더 싫다.

  여운을 남긴 엄마의 목소리가 내내 가시처럼 걸렸다.

  ―난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진심으로 말했다.

  ―행복? 뭐가 행복일까. 남편보다 내 마음을 알아준 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금도 난 행복해.

  엄마가 말한 행복하다는 말투 속에는 왠지 아빠와 서원해진 관계가 내내 섭섭한 것처럼 들렸다.

  ―그렇게 흔하게 표현한 행복 말고, 엄마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느끼는 행복 말이야. 아니면 여행도 괜찮고.

  나는 엄마의 기억력 저장 공간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부지런히 여행 다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힘주어 말했다.

  ―여행도 돈이 있어야 가지. 뭐든 맘먹은 대로 되지 않은 게 인생인 거 같더라. 지금부터 관리 잘해서 너라도 행복하게 잘 살아. 난 이미 늦은 거 같으니.

  꼬집어 말하지 않아도 대화 속에서 엄마가 느끼는 현실에 대한 원망과 아빠에 대한 불평불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제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것까지도. 명품수선집 사업이 어려워지기 전부터 아빠와의 갈등은 깊어지고 언어폭력은 더 빈번했으니, 하루라도 빨리 심란한 현실에서 탈출하고 싶었는지 몰랐다. 더군다나 아빠가 엄마의 자존심을 건드려 무시할 때면 하루에도 몇 번씩 결혼 생활을 끝내고 싶단 생각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고 했다. 급기야 아빠는 파산해야 할 상황까지 와버렸다. 깊은 밤, 눈을 감아도 감기지 않고 밤새 조여 오는 심장을 달래며, 어떻게든 파산은 피하고자 전전긍긍하던 아빠를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밤잠을 설친 날이면 엄마는 어김없이 아빠의 눈치를 보았다. 회복의 가능성이 점점 낮아지고 있음을 감지한 나는 가족들의 소소한 행복마저 빼앗길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뾰족한 수가 없어 답답할 뿐이었다. 그나마 엄만 댄스 아카데미를 제집처럼 드나들면서 현실 도피를 하는 거 같았다. 한편으론 다행이지 싶었다. 언제쯤이면 힘든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막연한 생각만 스쳤다. 내면의 벽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근심 걱정은 이미 새별 오름의 중턱보다도 훨씬 높은 산을 이루었다. 우린 더 늦어지기 전에 벌떡 일어나 가던 길을 걸었다. 충분히 쉬었는데도 엄마는 종아리가 아프다고 했다. 평상시 잘 쓰지 않던 근육들이 오히려 더 단단하게 뭉쳐져 가던 길을 더디게 했다. 다 포기하고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가슴 위에서 그네를 탔다. 혼자였다면 진즉에 올랐다가 내려오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마침내 정상이 눈앞에 보였다. 제주의 아름다운 초록 풍경이 한눈에 쏙 들어오자 엄마는 주위 사람들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와, 좋다. 저기 봐봐, 저 끝에 바다도 보이고 한라산도 보이는 거 같아. 민경아, 빨리 이리 와 봐.

  ―와, 진짜 멋지다. 제주도 여행하러 오길 잘한 거 같아.

  ―맞아. 민경아, 고마워.

  나는 모처럼 환하게 웃던 엄마가 사랑스러웠다. 불현듯 찰나의 순간을 뚫고 나온 엄마의 맑고 순수한 영혼을 보는 듯했다. 하늘과 가까워진 틈을 타 애원하듯 하늘에게 빌었다. 제발,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엄마의 기억력을 빼앗지 말아 달라고. 보고 느끼고 즐길 수 있는 오감의 행복을 더는 가져가지 말아 달라고. 그러곤 엄마가 만족해할 때까지 노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엄만 내 마음도 모르고 억지웃음을 웃고 있던 엄마의 사진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휙 돌아서 버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문득문득 예전과 다른 표정의 사진을 발견할 때면 상대방이 무안할 정도로 짜증을 냈다. 그럴 때마다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듯 좀 더 곰살궂게 다가가 엄마의 눈치를 살폈다.

  해넘이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도도하게 깔린 붉은 노을에 반하여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나는 엄마와 팔짱을 낀 채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엄마의 따뜻한 온기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천천히 나의 내면으로 스며들었다. 엄마의 체온은 홀로 낯선 나라로 떠날 때의 외로움까지 녹여내는 듯했다.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거기 그 찰나에 잠잠히 머물고 싶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엄마 어깨에 몸을 기댔다. 그러자 엄마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민경아, 모녀간의 여행에 서슴없이 초대해 줘서 고맙다. 요즘 내가 누구인지 깜박할 때도 있어 걱정이 좀 되긴 한다마는, 이제 죽어도 한이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누구보다 행복한 거 같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 딸 민경아,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니?

  ―당연히 알지. 철이 없었을 때 엄마한테 대들고 무시하고 힘들게 했던 거 미안해. 엄마가 있어 내가 웃을 수 있었다는 거, 엄마도 알지? 엄마의 온전한 사랑을 부끄럽게도 스물여섯 인 지금에야 조금 알 것 같아. 엄마한테 받은 그 사랑 나도 갚을 수 있게 기회를 줘. 그리고 아무 걱정하지 마. 엄마 딸 민경이가 있잖아.

 ―네 살이던 그 작은 아이가 언제 이렇게 많이 컸다니. 세월이 참 빠르긴 하구나. 어린 딸을 두고 세상을 떠난 그 빈자리에 덜컥 들어가 내 새끼처럼 잘 키우려고 정작 내 배로는 자식을 낳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미우나 고우나 남편 중심으로 살았던 시간이 보상이라도 받은 것 같구나. 그나저나 민경이 시집갈 때 예쁜 드레스도 봐줘야 하고 혼수 살 때도 같이 가줘야 하는데.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기품 있는 장모님이란 소리도 듣고 싶고. 어디 그뿐일까, 손주들 태어나면 용돈을 많이 주어 인기 최고인 할머니가 되고 싶은데. 제기랄, 이놈의 멍청한 기억력이 문제야.

  엄마는 그 많은 세월이 주마등을 스쳐 가는 듯 먹먹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 엄마가 잘 키워준 덕분이지. 엄마, 정말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나는 참으로 애틋한 모녀 사이가 되고 싶었다. 살다 보면 앞으로도 더 많이 엄마란 이름을 부를 날이 올 텐데 그때마다 지금처럼 다정하게 대화할 수 있을까, 금세 코끝이 찡했다.

 하지만 지금은 울고 싶지 않아 엄마의 겨드랑이를 간지럽혔다. 엄마는 뒤로 훌러덩 넘어질 뻔하며 까르르 웃음보가 터졌다. 엄마는 얼마나 웃었던지 슬슬 배가 고프다고 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생각만으로도 짜릿한 기쁨이 뇌까지 전해졌다. 나는 노을 너머에 있는 아름다움에 좀 더 머물고 싶었던지 발걸음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좀 더 머뭇거린 사이 어둠이 빠르게 내려왔다. 햇살에 하늘거리던 은빛 억새들도 보일 듯 말 듯 돌아갈 길을 재촉했다. 나는 엄마가 넘어지지 않게 붙잡고 천천히 오름을 내려왔다.

  주차장에 있던 모든 차들이 빠지고 우리 차만 덩그러니 남았다. 나는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기 위해 차를 몰고 달렸다. 식당은 조금 한적한 곳에 있었다. 엄마는 냄비에 큼직하게 썰어 놓은 무를 깔고, 그 위에 살이 도톰하게 오른 은갈치를 올려놓고, 매운 고추를 송송 썰어 넣은 칼칼한 갈치조림을 유독 좋아했다. 그런데 오늘은 앞 접시에 놓인 갈치조림을 멍하게 바라만 볼 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갈치조림이잖아, 무에도 간이 적당히 배어 맛있으니까 빨리 먹자. 무반응의 싸늘한 눈빛은 내 안에 서글픈 멍울을 만들고 말았다. 그렇게 엄마의 시간은 조금씩 정지되는 듯했고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불안정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 곁에 누군가가 꼭 필요한 상황까지 와버린 거 같아 씁쓸했다.

 

  예전엔 엄마가 운전할 때 내가 조수석에 앉았으나 이제는 역전됐다. 조수석에 앉은 엄마는 어쩌다 맑은 정신이 들 때면 쉬지 않고 잔소리했다. 운전석에 앉자마자 안전띠를 매라는 둥, 앞차의 꽁무니에 바짝 붙지 말라는 둥, 신호 위반하지 말라는 둥, 우회전할 때 건널목을 잘 살피라는 둥, 과속하지 말라는 둥, 엔간하면 먼저 양보하라는 둥, 세상에서 과태료가 제일 아깝다는 둥…… 잔소리가 이렇게 반가울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낯선 사람을 보듯 데면데면했다. 엄마의 마지막 단기 기억 장치 안에 딸과 함께 떠난 여행이 가장 행복했던 삶으로 저장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로 들어간 후 잠이 오지 않아 낡은 노트북을 켰다. 언젠가 나에게도 딸이 생긴다면 엄마와 둘이 떠났던 여행 이야기를 꼭 들려주리라 마음먹었다. 엄마의 정신은 여전히 안개가 끼는 것처럼 뿌옇게 눈앞을 덮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환하게 개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나만 보이면 엄마의 입은 씰룩거리며 바삐 움직였다. 해야 할 잔소리가 너무 많아 그 안에서 서로 다투어 나오려다 얽힌 표정이랄까. 그래도 난 좋았다. 아직은 엄마의 딸이란 걸 기억할 수 있을 때, 보물 같은 사진 속 주인공이 누구인 줄 정확히 알고 있을 때, 유일하게 엄마가 딸에게 할 수 있는 더 많은 이야기를 유에스비에 담아두고 싶었다. 다음날 빌린 승용차를 반납했다. 늦가을이었는데도 2박 3일간의 여정 동안 제주도의 하늘은 어느 때보다도 유독 파랬다.  

 

  딩동, 엄마 핸드폰으로 한 통의 문자가 왔다. 거의 중독처럼 드나들던 댄스 아카데미에서 경연대회가 열린다는 M의 연락을 받은 후, 엄만 무척 긴장돼 보였다. 처음엔 누구나 그러하듯이 엄마도 리듬을 타지 못해 자꾸만 스텝이 꼬였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파트너 M은 단 한 번도 짜증 내지 않고 차근차근 친절하게 가르쳐 줬다고 했다. 함께 춤을 추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엄마는 자연스럽게 M의 어깨에 기대게 되었고, 때때로 부부인 줄 착각이 들 정도로 가까워졌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어쨌거나 춤을 배우면서 엄마의 기억력이 살아나는 듯했다. 엄만 틈만 나면 집에서도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곤 했다. 경연대회가 다가오자 어떻게든 M의 실력을 따라잡아야 한다면서 느닷없이 나를 불렀다.

  ―민경아, M의 대역을 해줄 수 있겠니?

  ―내가?

  ―응. 이리 와 봐.

  ―그렇지만 난 아무것도 모르는데.

  ―남자 역할이 필요한데. 어쩌지?

  ―아빠한테 부탁해 봐.

  ―저 인간이 할 줄 알겠니?

  ―일단 내가 물어나 볼게.

  나는 안방에서 영화를 보고 있던 아빠한테 물었다.

  ―아빠 살사댄스 쳐 봤어?

  ―당연하지. 예전에 강사도 했는걸.

  ―뭐야, 근데 왜 가만히 있었어.

  ―지금은 리듬감이 떨어져서 스텝이 꼬이기도 하고, 엄마랑 같이하면 백 퍼센트 싸울 거 같아서지.

  ―그럼 딱 한 번 정도는 엄마 파트너 해줄 수 있겠네. 곧 경연대회라는데 자꾸 신경이 쓰이나 봐.

  ―알았어.

  아빠는 마지못해 대답하고 거실로 나왔다. 엄마는 그동안 배운 댄스 실력을 멋지게 보여주고 싶은 눈치였다. 나는 임시로 만든 심사위원석에 앉았다. 두 사람은 거실 중앙에 섰다. 나는 살짝 긴장한 듯한 서로의 표정을 보았다. 티가 나지 않게 각자의 심호흡이 끝난 거 같아 음악을 틀었다. 음악에 따라 리듬을 타며 때론 격렬하게 때론 부드럽게 눈빛 감정 교환까지 제대로 흘러가는 듯했다. 엄마의 진지한 표정은 프로 못지않았다. 엄마는 아빠를 M으로 알고 경연대회 춤을 아주 정열적으로 췄다. 아빠는 M이 되어 엄마가 끌고 가는 대로 따랐다. 엄마는 M을 침실로 데리고 가 물었다.

  ―M 선생님, 나 오늘 어땠어요?

  ―음, 생각보다 잘하던데.

 마침내 경연이 열리는 날 아침이었다. 엄마의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자는 M이었다. 엄마는 핸드폰을 던져버렸다. 그러곤 혼잣말했다.

  ―어머, M이 또 있나 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