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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리형 May 19. 2020

몽쉘통통

반려동물과 이별하는 법

 작고 하얀 꼬물거리는 생명체와 내가 처음으로 조우했던 날, 그 연약한 털 뭉치는 머리를 베개에 파묻은 채 잠이 들어있었다. 엄마의 지인이 키우던 개가 새끼를 낳았는데, 젖을 떼자마자 주변 사람들에게 분양해 주는 것을 데려왔다고 했다. 손바닥만큼은 될까? 태어난 지 두 달 정도밖에 되지 않은 하얀 몰티즈종의 어린 강아지와 나는 그렇게 만났다.


“이름을 뭘로 하지?”

“몽쉘통통!!”

 그 당시 내가 가장 좋아하던 과자의 이름이 몽쉘통통이었다. ‘말하지 알아도 알아요~’라는 유명한 CM송과 함께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초코파이를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몽쉘통통의 진득한 크림과 초코 향이 어린 내 입맛에 훨씬 더 맛있게 느껴졌다. 강아지의 이름을 지어주자는 엄마의 말에 나는 밑도 끝도 없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자의 이름을 붙이자고 주장했다. 그런 막내의 막무가내식 주장에 못 이긴 척, 가족들도 ‘몽쉘통통’으로 하기로 동의해 주었다. 하지만 너무 길다는 이유와 이름 끝에 ‘이’를 붙이기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알 수 없는 습성으로 인해 가족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몽쉘이’라 줄여 부르기 시작했고, 조금 더 지나서는 단지 친근하다는 하찮은 이유 하나만으로 그 작은 털 뭉치의 이름은 ‘몽실이’가 되었다.  


 몽실이는 처음 우리 집으로 온 날 거의 하루 종일을 잠들어 있었다. 너무 오래 자길래 나는 그 어린것이 낯선 환경으로 오게 된 충격으로 잘못된 것은 아닌가 걱정했을 정도였다. 몽실이가 잠에서 깨어난 건 저녁을 먹은 후 온 가족이 모여 TV를 보고 있을 때였다. 열려있는 안방 문 안쪽에서 무언가 작은 물체가 총총거리는 발걸음 소리를 내며 걸어 나왔다. 나는 그때 몽실이의 얼굴을 처음으로 제대로 보게 되었다. 낮 동안은 머리를 베개에 파묻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처음 본 하얀 꼬맹이는 얼굴에 검은 단추를 3개 박아놓은 것 같은 땡그란 눈과 코를 가지고 있었다. 거실 장판이 미끄러웠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아직 제대로 설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이었을까. 어린 강아지는 한 걸음 걷고는 다리를 양옆으로 벌리며 미끄러지더니, 다시 일어나서는 두 걸음 걷고는 또 미끄러졌다. 그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우리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무리를 좋아하는 개의 습성상 본능적으로 생존을 위해 이미 이곳을 점거(?) 하고 있는 생물 집단 속으로 들어가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힘겨운 사투 끝에 우리가 있는 곳까지 걸어온 그 조그만 강아지를 나는 휙 들어 올리고는 품에 살포시 안아보았다. 처음 내 몸으로 느껴본 몽실이의 촉감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말랑말랑해서, 마치 살아있는 작은 찹쌀떡을 만지는 것 같았다. 


 집에서 막내였던 나는, 한 생명이 성장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본 경험이 없다. 어릴 적 유일한 동물 친구였던 병아리들은 아무리 잘 돌보아도 오래가지 못하고 금방 죽었다. 그런 내게 몽실이는 태어나 처음으로 서로의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본 소중한 존재였다. 내가 소파에서 낮잠을 자고 있으면, 왜 자기를 빼놓고 잠을 자냐고 항의라도 하는 것 마냥 짖는 소리를 내더니, 어느새 내 옆구리 곁으로 와서는 몸을 웅크리고 같이 잠이 들었다. 외출을 하고 돌아올 때면 계단을 올라오는 내 발소리를 알아채고는 현관문을 열기도 전부터 끙끙거리는 소리를 냈다. 내가 맛있는 걸 먹고 있을 때면 자기에게도 한 입 달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치고 난동을 부렸다. 가끔 몽실이만 집에 혼자 남겨두고 온 가족이 외출을 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현관문 안쪽에서 세상 다시없는 구슬픈 울음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너무나 슬퍼서, 듣고 있으면 정말로 발걸음을 떼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족으로서 함께 했다.


한창 수능 준비에 분주해 있던 고등학교 3학년의 어느 주말 아침이었다. 낑낑거리는 비명소리가 너무 커서 잠에서 깼다. 거실로 나와보니, 몽실이가 몹시 고통스럽다는 듯한 얼굴로 몸을 꼬아대며 울고 있었다. 나는 급하게 부모님을 깨워 그 사실을 알렸고, 두 분은 아파하는 몽실이를 데리고 동물 병원으로 갔다. 그리고 그게 나와 몽실이의 마지막이었다. 오후가 되어 돌아온 부모님은 몽실이와 함께가 아니었다. 암덩어리가 너무 커서 신경을 누르고 있었고, 수술을 해도 소용이 없으니 안락사를 시키라는 수의사에 말에 따라 몽실이를 보내주고 왔다고 했다. 그 순간 부모님은 분명 몽실이의 죽음을 얘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몽실이의 죽음을 직접 보지 못했기에 그 모든 말들이 하나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냥 부모님이 몽실이를 잠시 어딘가에 맡겨두고 온 것처럼 생각될 뿐이었다.


  3일 정도가 지나 밤늦게 독서실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던 때였다. 길을 걷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코 끝이 찡해오는 느낌으로 시작된 울음은 곧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까지 커졌다. 몽실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머리가 며칠의 시간이 지나 드디어 현실을 이해한 것이었다. 나는 길 한복판에서 그대로 웅크려 앉았다. 입을 막고 숨을 참아 봐도 울컥거리는 눈물이 댐이라도 터진 듯 끝도 없이 새어 나왔다. 처음 만난 날,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잠들어 있던 그 작은 등판이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선명하게 그려졌다. 서로의 몸을 맞대고 잠이 들 때 옆구리로 느껴지던 그 조그만 체온이 방금 전 일처럼 생생했다. 작고 귀여운 단춧구멍 같은 까만 눈이 미치도록 보고 싶어 졌다.


 그렇게 나는 길 한복판에서 한참을 흐느꼈다. 울고 또 울다 보니 언제까지고 나올 것 같던 눈물도 천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눈물을 닦으며 나는 처음으로 몽실이가 영원히 떠났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몽실이가 죽은 후 한 번도 하지 못했던 작별 인사를 마음속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안녕, 나의 작은 친구야. 그동안 함께 해 주어서 너무 고마웠어. 우리 꼭 다시 만나자?’



-처리형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MKAfCDsK4pWxrz2USDvAag


-처리형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churih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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