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목과 수박

짧은 글

by 그래도

그때는 '샤워'라는 말을 몰랐다.

어린 시절 더운 여름날

밖에서 놀다 들어오면

아버지나 형들이 하는 말


"등목 해줄까?"


마당 수돗가에

웃옷 벗고 엎드리고

등에 확 끼얹어지는

찬 물 한 바가지


"으차차차차"


순간 아뜩한 차가움에

튕겨져 날아가는 더위


그때는 집에 냉장고가 없었다

아버지는 수박 한 통과

얼음덩어리를 같이 사 오셨다


수박 장수가 작은 삼각 모양 찍어내어

잘 익었다며 큰소리쳤을 수박 한 통

삼각 부분은 먼저 몰래 먹고

다시 슬그머니 끼워놓곤 했었다


얼음을 잘게 부수고

수박은 숟가락으로 퍼내어

커다란 양푼에 담고

천천히 왕복하는 선풍기 바람이

빨리 내 쪽으로 오길 바라며

식구들 다 같이 둘러앉아

수박 먹던 시절


무덥던 여름

집에 도착하자마자

에어컨 켜고 샤워하고

냉장고에서 잘 잘라진 수박 꺼내

혼자 먹다가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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