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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May 12. 2024

나만 그런 게 아니었네

나는 해를 보면 재채기를 한다. 직접 해를 보지 않더라도 밝은 곳에 갑자기 나오면 종종 그렇다. 다들 그런 줄 알았다. 햇빛 쨍한 곳에서 고개를 들면 코가 간질거리고 재채기가 나오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다. 그런데 누구나 그렇지는 않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주변 사람들은 보통 안 그런다며 오히려 정말 그러냐고 신기해했다. 알아보니 이런 증상을 빛 반사 재채기 증후군 또는 아츄(Achoo) 증후군이라 부르는데, 사람들 중 15~20% 정도가 그렇다고 했다.


'이웃집 토토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다. 아픈 엄마를 위해 시골 생활을 하게 된 두 자매와 아빠, 다정한 동네 주민들, 그리고 커다란 숲의 정령 토토로가 펼치는 이야기가 환상적이고 따듯하다. 몇 번을 보다 보니 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두 자매가 시골집 안팎 여기저기 구경 다니다가 함께 커다란 나무(녹나무인데, 그곳에 토토로가 산다) 앞에 서서 감탄하며 올려다보는데, 갑자기 동생 메이가 재채기를 하고 같이 깔깔 웃는 장면이다. '아, 메이가 나무를 올려보다가 해를 봤나 보구나.' 나에게는 그 모습이 유독 와닿았다. 갑자기 말썽꾸러기 메이가 한결 더 친숙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웃집 토토로’(1988) 중에서 사츠키와  메이

동질감이 주는 안도감이 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네'라는 것, 다른 이에게서 나의 모습을 보는 일. 만약 세상에서 나만 하품이나 재채기를 한다면, 혹은 방귀를 뀐다면 어떠려나 생각해 본다. 아마 그 '질병' 때문에 사람들과의 관계를 피하고 고민하며 고치려다가 좌절할 것 같다. 공공장소에서 재채기 한번 하면 주위에서 이거 무슨 소리냐고 수군거릴 것이며, 어쩔 수 없는 하품 때문에 저건 동물인가 사람인가 하는 눈총을 받을지도 모른다. 방귀는 뭐 말할 것도 없고... 서양처럼 재채기 후에 'Bless you' 하며 상대의 안부를 물어주거나, 한 사람이 하품하면 전염되어 옆사람이 따라 하는 것 같은 연대감은 당연히 기대할 수 없겠다.


별 것도 아닌 일을 나만 그런가 하며 걱정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너도 그러냐고 하며 찾다 보면 나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가만히 보면 다들 사는 일은 다 비슷비슷해서 그렇다. 다만 자랑과 고민의 지점이 서로 조금씩 다를 뿐이다. 딸에게 물었다. "너도 밝은 곳 나오면 재채기가 나오니?" "응 나도 가끔 그래." 그렇구나. 나만 그런 게 아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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