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지구인과 외계 생명체가 우주선을 서로 연결하여 만나는 장면을 보며 나는 긴장했다. 외계인은 어떤 의도로 지구인을 만나려는 걸까. 어떤 모습일까. 갑자기 공격하면 어떻게 하지. 내 기억 속 외계인은 그리 친절한 존재가 아니었다. 영화는 우주선에 홀로 남은 두 생명체가 위기에 처한 각자의 고향별을 구하는 세포를 찾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생김새도, 언어도, 숨 쉬는 환경도 다른 두 존재가 실시간 통역 장치로 소통하고 서로 흉내 내며 조금씩 가까워진다. 상대의 위험을 외면하지 못하고 목숨을 거는 장면은 마음을 찡하게 울렸다.
지구인이 외계 생명체의 호흡용 캡슐을 꼭 끌어안자, 바위 모양의 그 존재가 몸을 밀착하며 묻는다.
"포옹은 언제 끝나는지 어떻게 알아?"
지구인은 답한다.
"그냥 느낌이 와."
올해 본 애니메이션 영화 쥬토피아 2가 떠올랐다.
푸른 뱀 게리는 그 모습 때문에 오해를 받는다. 내 기억 속 뱀 역시 보통 사랑스럽거나 정의로운 캐릭터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서로 다른 동물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주토피아를 파괴하려는 일당과 맞서는 중이었다. 주인공 주디는 중독으로 쓰러지고 게리 역시 강추위에 몸이 얼어붙는다. 게리는 가까스로 기어가서 주디에게 말한다.
"안아도 될까요?"
주디의 체온이 전해지면서 게리는 움직일 힘을 얻고 끝내 주디와 주토피아를 다시 살려낸다.
'안다'는 말은 상대를 내 안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이해와 연대, 포용이라는 단어도 몸을 맞대면 말랑하게 녹는다. 마음의 온도가 서로 가까워지고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엄마 품 속에서 아기는 편안하다. 몇 발짝 앞에 두 팔 벌린 엄마에게 안기려고 아기는 걸음마를 뗀다. 예전에 부모님과도 집에 다녀갔다가 헤어지기 전에 서로 한 번씩 꼭 끌어안고는 했다. 여위어 가던 아버지의 품과 넉넉했던 어머니 품이 다시 그립다.
"나 안아."
가끔 딸이 그런다. 공부하다 힘들 때면 집에 돌아오자마자 두 팔을 펼치며 그렇게 말하곤 했다. 요즘은 "이제 안는 것만 가지고는 안되네." 하며 투덜거리기도 하지만, 잠자리에 들 때는 아직도 커다란 무민 인형을 꼭 안고 잠에 든다. 그렇게 안기고 안으면서, 딸은 다시 힘을 얻겠지 생각한다. 언젠가 아빠 품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 전에 먼저 안아야 하는 존재들이다.
"쉽지 않은 세상 그 누구도 다르지 않을 거라 그 손 맞잡고 같이 웃고 마음과 마음 안고. 꼭 안아 주세요." (강허달림 노래 '꼭 안아 주세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