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발자 할 그릇이 안 돼.'

개발자 할 그릇, 누가 정하는 건데?

by Eunice

개발자가 된 이후 “나는 개발자가 될 그릇이 아닌가?” 라고 생각한 때가 많았다. 지금도 종종 한다. 이런 생각을 할 때는 코딩하며 골머리를 앓을 때에 느낄 수도 있지만, 일상에서도 이런 감정을 마주할 때가 있다.


가령, 전문 SNS에서 “도커에서 amd64 이미지를 받아서 이를 쿠버네티스 arm64 클러스터에서 동작하게 하려면 멀티 아키텍처 이미지를 빌드하거나 QEMU를 활용해야 하는데...” 같은 문장들로 시작하는 테크니컬 라이팅 글을 접할 때마다, 내겐 ‘흥미’보다는 ‘일’처럼 느껴졌다.

물론 일할 땐 일처럼 느껴져도 무방하겠지만, SNS에 올라오는 이런 기술 글들을 마주칠 때면 스스로가 유난히 부족하게 느껴졌다.
내 스택이 아니면 당연히 이해가 안 갈 수도 있는데도, 나는 내가 무지하단 기분을 '굳이' 느끼기 싫었다.
내 스택인데도 모르는 부분이면, 당연히 자존심이 상했다.
'나 말고 세상의 기술들은 이렇게 빨리 발전하고 있구나.'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빨리 다 알아가고 있구나' 같은 감정 또한 느끼고 싶지 않았다.


또, SNS 공간에서 조차 기술 정보를 생산하는 이들이 있고 또 사람들은 그것을 구독하면서 흥미롭게 소화한다. 개발 커뮤니티에는 오래 상주하며 토론하는 이들도 많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저게 정말 재밌을까? 저걸 다 이해하기는 하는 걸까?” 하는 의문과 동시에 “저런 사람이 진짜 개발자구나”라는 생각에 마음 한편이 움츠러들곤 했다. 때로는 그들처럼 돼야 한다는 강박에, 정작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글에도 ‘좋아요’를 누르기도 했다.

비슷한 경험은 10여 년 전 NHN NEXT라는 교육 과정(지금의 네이버 커넥트)에 지원했다가 떨어졌을 때, 또 부트캠프에서 뛰어난 동료들을 보았을 때도 있었다. 회사에서 밥도 굶어가며 하루 종일 설계하고 코딩에만 몰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는 “이들은 나와 전혀 다른 존재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내가 갈 길이 아닌 것만 같았다.


그럴 때 스스로에게 물었다. “경험을 더 쌓으면, 왠만한 기술 글도 곧잘 읽히고, 점차 흥미가 생길까?”
하지만 솔직히 당장 필요한 내용이 아니면 여전히 별 관심이 가지 않는다. 내 마음을 좀 더 들여다 보니 꼬인 마음으로 좋아요를 누르는 행동은 그저 ‘나도 저들과 같아져야 한다’는 강박감과 다르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런 “나는 저들과 다르다”는 생각에 발목 잡혀, 개발을 포기하거나 도중에 다른 길로 돌아선 건 아닐까 싶다. 분명 우수한 인재를 보고 동기부여가 될 때도 있지만, 오히려 의욕을 잃기도 한다. 그리고 여러 교육자들은 “적성이 맞지 않으면 빨리 포기하는 게 낫다”고 말한다. 그 말도 일리가 있다. 하루 종일 코드를 보며 사는 일이 맞지 않은 사람도 분명히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개발을 진심으로 좋아했음에도 “난 저들과 다르다”는 감정에 짓눌려 스스로를 갉아먹다가 어느 순간 포기해버리는 경우일 것이다. 뛰어난 이들 처럼 일상이 코딩으로만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해도 그들처럼 되는 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조금 느린 것 같고, 엄청난 흥미또한 아닌 것 같다면서 여러 이유를 대며 자기 가능성을 외면해버리는 일. 떠올려보면 내 안에도 그런 마음이 늘 도사리고 있었다.


그 마음들을 차분히 마주한 후, 나는 다짐했다. “처음 그 마음을 잃지 않도록 하자. 내가 이 일을 그만두더라도, 합당한 이유가 아니라 비교감으로만 자포자기 하지는 말자.” 어차피 모든 사람이 같은 속도로 달릴 수는 없다. 모두가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만의 이유로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개발자’라는 이름 아래에서조차 우리는 저마다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기술 블로그를 읽는 게 취미처럼 즐겁고, 또 어떤 이들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성장을 이어간다. 그래서 불필요하게 남과 나를 비교하느라 마음 쓸 필요가 없다는 걸, 이제야 조금씩 깨닫고 있다.


서툴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성장하겠다는 다짐. 그 다짐이야말로 내가 개발자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가장 든든한 밑거름이 아닐까. 자신의 속도와 방식으로 나아간 길의 끝엔 분명 미래의 자신이 손을 내밀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