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인데 개발이 싫어요

개발자의 권태기

by Eunice

프로그래밍이 좋아서 개발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막상 일이 되니 스트레스를 받으며 열정이 식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이런 고민은 남 일 같지 않아 깊이 공감이 간다.


처음에는 "일이 재밌어서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버텨라" 같은 말을 떠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조언이 실제로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열정이 식어버린 기분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 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나도 비슷한 시기를 지나왔다. 첫 출근 날의 설렘과 작은 성취를 이뤘을 때의 뿌듯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옅어졌다. 마주한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고, 일은 단순히 좋아하는 활동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업무 속에 파묻혀 지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개발을 좋아하기만 했지 썩 잘하는 건 아니었구나.
문제를 푸는 재미는 있었지만, 실제 업무를 잘한다는 건 또 다른 이야기구나.
아무리 열심히 해도 직장생활에는 코드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구나.


이런 깨달음들이 찾아오면서 의욕은 사라지고, 회의감이 밀려왔다. 정말 좋아했던 일임에도 멀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도 있다. '그냥 적당히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코딩은 취미로 즐기면 어떨까?' 하는 상상에 빠지기도 했다.


이런 권태는 연애나 결혼에서 오는 권태와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해보진 않았다만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을 떠올리면 비슷하게 느껴졌다. 설렘으로 시작했던 관계도 시간이 흐르면 갈등과 충돌을 겪게 되고, 처음의 설렘은 서서히 사라진다고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거리를 두며 스스로를 돌아보기도 하고, 상대방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며 관계를 회복하기도 한다. 때로는 각자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기도 한다.


일에서도 이런 고민은 반복된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가만히 시간을 보내며 기다리기도 하고, 새로운 자극을 주기 위해 블로그 글을 쓰거나 다른 활동을 찾아보기도 했다.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며 격려를 얻기도 했고, 예기치 않게 얻은 깨달음으로 다시 힘을 얻기도 했다. 그리고 때로는 '이 길이 아니구나'라는 신호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길을 선택하기도 했다.


권태감은 때로는 지나가는 감정일 수 있지만, 그 이상의 신호일 때도 있다. 단순한 권태라면 시간과 변화로 극복될 수도 있지만, 번아웃이나 정말로 그 일이 내 길이 아님을 알려주는 직감일 때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권태를 무조건 참고 이겨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질 필요는 없다.


일태기를 이겨내며 그 분야에서 깊게 성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다른 길을 선택해 새로운 분야에서 넓게 성장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선택이든 개인의 삶이고 여정이기에 누구도 함부로 평가할 수 없다.


다만 새로운 직장이나 직무를 선택한다고 해서 마냥 행복한 일만 가득한 것은 아니라는 점은 기억해야 한다. 새로운 길에서도 지루함과 권태는 찾아올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선택이 틀렸다는 의미는 아니다. 중요한 건,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하고 어떤 순간에도 나를 아껴주며 존중하는 마음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지루하고 힘든 순간이 와도 견딜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가? 좋아해야만 할까? 적어도 싫지만 않으면 괜찮은 건 아닐까?"


다양한 일을 시도해 보면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갔다. 지금은 개발을 사랑하고 이 일을 통해 얻는 성취와 배움을 소중히 여긴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꼭 한 가지 직업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다양한 직업을 거쳐갈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주변을 보면 창업을 하거나 기술 영업, 데이터 분석, 코딩 교육 강사, IT 크리에이터 등으로 전향한 사람들도 많다. 어떤 사람들은 완전히 다른 업종으로 이직해 만족감을 느낀다.


열정이 사그라지는 경험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존중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하며 나에게 맞는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권태를 이겨내든, 새로운 길을 찾든, 그 선택이 자신의 것이라면 충분히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 선택들의 발자국들을 뒤돌아 볼 때 '더 좋은 길을 걸었다면' 이라 생각하기 보다는 내 발자국이라는 데에서 애틋하게 돌아보자. 스스로를 아끼자.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만의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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