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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임 Nov 17. 2022

오랜 서랍생활을 청산하고 브런치 작가가 되다.

불합격 레이스의 종결 스토리


드디어 브런치 속에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

내 명의로 된 이 한 켠의 공간을 얻기 위해 그동안 몇 번의 도전을 했었는지.. 흑흑

솔직히 처음 가입할 땐,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줄은 정말 몰랐다.

지금은 브런치 작가님으로 선정되었으니 지난날들이 차분하게 정리되면서 회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지만 얼마간은 그냥 탈퇴해야 하나.. 포기하고 싶은 마음에 한동안 로그인조차 하지 않았었다.  

마침내 오늘. 오랜 서랍 생활을 청산하고 처음으로 발행하는 글이니깐. 본격적인 글쓰기에 앞서 왜 그렇게 브런치 작가에 선정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고, 어떻게 브런치에서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룰 수 있었는지에 대해 써볼까 한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언제 브런치에 가입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작가의 서랍] 맨 밑에 깔려있는 글의 날짜는 2020년 2월이지만, 아마도 그 이전에도 가입했던 걸로 기억한다.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처음 가입할 때는 브런치 작가가 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다.(아마도 브런치에 처음 가입하시는 분들 중 상당수가 비슷한 마음으로 가입하지 않았을까.) 나는 이전에도 블로그 활동을 하고 있었고, 많은 포인트가 상품으로 걸린 온라인 서점의 책 후기 이벤트에도 당선된 적이 있었기 때문에(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자만심이 너무 부끄럽다) 자신이 있었다.

오래전 일이라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첫 작가 신청의 '소개'와 '계획'에는 분명 그런 자만의 찌꺼기들이 묻어 있었으리라. 담당자가 알고 싶어 하는 내용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잔뜩 썼던 거 같다. 아마도 담당하시는 분은 내 신청서를 보는 내내 '안물!' '안궁!!'을 연신 외치다가 '불합격' 버튼을 누르지 않았을까.


'탕'


그렇게 본격적으로 불합격 레이스의 시작을 알리는 총성이 울렸고 내 얼굴은 빨개졌다. 지금 생각하면 탈락할 수밖에 없었던 명확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지만, 그때는 예상치 못한 결과였기에 잠깐 멘붕의 시간을 경험했다. 뭔가 내 전달 방식이 잘못되었던 걸까.

다시 심호흡을 하고 재도전을 준비했다. 이전에 제출했던 글보다 완성도가 높아 보이는 글들을 블로그에서 꺼내 작가의 서랍에 넣고, 작가 소개와 앞으로의 계획에 이전보다 더 많은 정성을 쏟았다.


며칠 후 구면이지만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았던 메시지가 떴다.

이번에도 함께하지 못해 안타깝다는 메시지.

두 번 같은 메시지를 받으니 이대로의 세 번째 작가 신청은 의미 없을 거라고 판단했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선정되는 걸까.

구글 신과 녹색창에 '브런치 작가 합격'을 검색했다.

수많은 후기와 팁들이 있었다.

한 번에 합격한 사람도 있었지만, 두세 번의 도전 끝에 합격했다는 글들이 더 많았다.

"그렇지~ 한 번에 합격하면 재미없지. 나는 두 번 탈락했으니깐 세 번째 붙으면 딱 되겠네."

다시 힘이 났다.   

합격 수기들 속엔 '차별화된 명확한 목표'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에 빗대어 생각해보니, 내 것들은 너무 두리뭉실했다.


블로그와 하드 디스크의 워드 파일들을 다시 뒤졌다.

명확한 주제로 엮을만한 지난 글들을 검색했다.

내가 자주 썼던 글들과 쓰면서 즐거웠던 글들.

카페에 관한 에세이들이 많았다.

내가 자주 가는 공간.

그곳에서 벌어졌던 일들.

콘셉트를 잡았다.

자기소개도 새롭게 쓰고, 앞으로의 방향도 좀 더 구체적으로 썼다.

결과를 기다렸다.


결과는 뭐.

여전히 불합격 레이스가 끝나지 않았음을 알리는 안내문이었다.(여기서 합격했으면 '불합격 레이스'라는 말을 쓰지도 않았겠지..)  

혹시.. 담당자가 실수로 지난번에 보낸 버튼을 다시 누른 건 아니었을까..

고의였던 실수였던 암튼 결과는 그랬다.


그 이후로 작가 신청 버튼을 누르는 것에 더 신중해졌다.  

기억을 되짚어봐도 정확히 몇 번을 도전했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실제로 도전한 횟수와 마음속으로 도전한 횟수가 막 섞였을지도.  

마우스로 [작가 신청] 버튼을 누른 횟수보다, 마음속으로 작가 신청을 눌렀던 횟수가 더 많았으니까.

새로운 콘셉트를 잡고 작가의 서랍에 글을 채우고 준비를 마쳤다가도 뭔가 좀 아닌 거 같아서 다시 엎고, 다른 콘셉트로 바꾸고를 몇 번 반복.

그때쯤 이력서를 쓸 일이 있었다면 취미란에 '브런치 작가 신청'을 써야 할 것만 같았다.


지속적으로 쓸 수 있는 나만의 글은 무엇일까.

지난 글 수집을 멈추고, 새로운 글을 서랍에 담아보기도 했다.

코로나 이전에 여행을 많이 다녔었다.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몇 편의 여행 정보와 에세이를 썼고, 목차도 만들어봤다. 공개하지 않았던 운영 중인 블로그 주소를 연결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버지니아 울프가 그토록 외쳤던 '자기만의 방'의 온라인 버전을 나는 경험하고 있다.

내 방이 필요하다고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브런치 도전 생활을 청산하고 원래 글쓰기를 하던 내 블로그로 돌아갔다.

고향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출세 한번 해보겠다고 서울로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온 신세라고 할까.

그래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다행이었다.

역시 오랜 시간 활동했던 곳이라 편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쓰는 글임에도 착한 이웃들이 좋아요도 눌러줬다.

그래. 사람은 자신을 반겨주는 곳에서 살아야지.


그렇게 블로그에서 글 밭을 가꾸며 전원생활을 즐기던 어느 날 문득 중구 난망으로 쓰던 글의 주제를 조금은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블로그까지 연결했음에도 탈락했다는 건, 내 블로그가 내가 쓰고자 하는 주제를 뒷받침할 역할을 못한다는 거니깐.

카테고리를 정리하고 이미 써놓은 글들 중에 눈에 띄게 형편없는 글들은 문장을 보충하거나 삭제했다. 브런치 작가에 재도전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계속 탈락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나는 그동안 글 쓰는 건 좋아했지만, 관리에는 소홀했던 거 같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네. 그동안 열심히 일했습니다."

"아 그래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아.. 네. 열심히 했는데, 막상 보여달라고 하시니 어떤 걸 보여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열심히 일했습니다!!"

이런 상황이었다고 할까.

그러니까 계속 불합격 레이스를 뛰고 있지..

하지만, 당분간은 브런치 작가에 재도전할 생각은 없었다.

누군가의 선택을 받기 위한 힘을 빼고, 예전의 '글 쓰는 즐거움'을 다시 찾고 싶었다.


글을 쓰고 싶을 땐 블로그에 간간히 흔적을 남겼다.

온라인 독서모임도 참여했다.  

비대면의 시대에 온라인 독서모임은 즐거운 취미 생활이 되어줬다.

온라인 독서친구들과 두꺼운 책들을 함께 독파를 하다 보니, 간간히 남기고 싶은 글들이 생겼다.

같은 책을 읽는데 누군가는 이해를 하고 누군가 이해하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발견하고 어떤 사람은 발견하지 못하는 다양한 것들이 눈에 보였다.

그런 것들 중에 글로 쓸만한 것들을 골라서 후기를 남기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블로그 통계를 보다가 특이점을 발견했다.

책 후기를 썼던 몇 개의 포스팅이 유난히 조회수와 공감도가 높았다.

그때쯤이었다. '브런치'가 다시 생각난 건.

그 포스팅 몇 개를 빼서 작가의 서랍으로 옮겼다.

그리고 찬찬히 다시 읽어봤다.

제목은 같은 후기지만, 다른 사람들의 것과 다른 특색이 보였다.

나는 원래 타인에 의해 정해진 형식대로 뭔가를 하는 것보다 나만의 방식과 시선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 글들도 후기의 정석에서 벗어나 그냥 그때의 내 시선과 생각을 바탕으로 썼던 글들인데 그것이 오히려 특이점이 되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작가 신청]을 눌렀다.

공백 기간 동안의 내 소개를 쓰고, 어떤 글을 써왔고 앞으로 내가 쓸 글들은 기존의 것들과 어떤 차별점이 있는지 편하게 써 내려갔다.

 

확신이 들었던 건 아니다.

알다시피 brunch.co.kr에서 나는 불합격 레이스를 뛰고 있는 선수니깐.(이쯤 되면 운동화 바닥에 구멍이 났거나 트랙 바닥이 벗겨졌거나 하지 않았을까..)

그저 이 정도면 한번 응모는 해볼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한두 번 탈락하냐.

이번에도 탈락하면 고향에 돌아가 있다가 생각날 때 또 올라오지 뭐. 하는 가벼운 마음이 되려고 애썼다.

하지만, 애쓰는 마음과는 달리 역시 결과는 궁금했고, 오랜 서랍 생활의 종지부를 찍고 싶다는 열망은 여전했다.


그리고 발표.

사실 오랜 시간 동안의 바람이 무색하게, 정식으로 제대로 된 합격 메시지를 보지는 못했다.

그냥 결과가 궁금해서 앱을 클릭했는데 새로 프로필 쓰는 걸 추천한다는 메시지가 있었다.

그 사이에 앱 업데이트가 있었나..

뒤로 가기를 누르고 작가 신청을 눌러봤다.

하지만, 내가 보낸 글 수정하기 화면이 없었다.

응?

설마?

하는 마음으로 메일함에 들어가 봤다.

그토록 기다렸단 메시지.


'브런치 작가가 된 것을 환영합니다. 소중한 글 기대합니다.'


드디어 탈락의 레이스가 끝이 났다.

기분이 묘했다.

누가 보면 뭐 정식으로 출판이라도 한 줄 알겠네. 이제 새로운 공간의 작은 문턱을 넘었을 뿐인데.. 덤덤한 척했지만, 마음속 어딘가에서 오래된 체증이 쑥 하고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랫배도 조금 더 들어가고, 턱선도 더 날카로워졌다! 는 아니지만 기분은 그랬다.


글 좀 쓴다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이곳. 브런치.

마침내 나도 이곳에서 [발행] 버튼을 확보했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불합격 레이스를 뛰었던 긴 시간 동안 속상함 말고도 얻은 것은 있으리라 생각한다. 갈증이라던가 무릎 통증이라던가..? 는 농담이고, 내가 쓰게 될 글뿐만 아니라 써왔던 글들을 다시 돌아보고 글을 쓰는 방향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거 같다. 그리고 취약했던 지구력도 +1만큼 증가했기를 기대한다.

이제 두 다리 스트레칭 좀 하고, 브런치에서 새롭게 시작될 레이스를 즐거운 마음으로 준비해봐야겠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나에게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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