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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임 Nov 21. 2022

개츠비가 왜 위대한지 모르겠다구요? [위대한 개츠비]

단 한번도 자유롭지 못햇던 영혼 - 개츠비가 위대한 이유.

지인들과 읽었던 책들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한 친구가 '위대한 개츠비'를 언급했다. 


"난 개츠비가 왜 위대한지 아직도 모르겠더라."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다른 지인들도 다들 동조하는 분위기.

제목은 위대한 개츠비인데 왜 위대한지도 모르겠고, 왜 이 책이 유명한지도 모르겠다고. 

개인적으론 그 책을 너무 재미있게 봤던 입장이라 내심 그런 반응들에 당황했다. 하지만 특별히 언급할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그렇게 넘어갔는데.. -사람들마다 기준은 다르니까- 


집에와서 잠이 막 들려고 할때, 갑자기 뜬금없이 지인들의 그 대화가 떠올라서 머릿속을 휘젓고 다녔다.

이불킥 유단자들은 공감하겠지. 잠들기 전에 그런 생각에 한번 꽂히면 갑자기 정신이 맑아지면서 눈이 번쩍 떠진다. 커피의 카페인보다 강력한 불면효과.

나는 갑자기 개츠비를 변호하고 싶어졌다. 

아니. 개츠비가 얼마나 잼있는데, 얼마나 위대한데!

이왕 개츠비가 왜 위대한지에 대해 쓰는 김에 아직 '위대한 개츠비'를 읽지 않으신 분들이 가지고 있는 또다른 선입견. 그가 자유로운 영혼의 상징처럼 언급되는 이미지의 진실에 대해서도 언급해보고자 한다. 이 두가지는 묘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가 왜 자유로운 영혼이 아닌지 알게 된다면 왜 위대한지 또한 이해하게 되리라.

 



예전에 방송에서 돈의 씀씀이가 화려하고 영혼까지 자유로운 캐릭터를 '개츠비'에 비유하던 때가 있었다.

그 당시 나는 피츠 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읽기 전이었고, '개츠비'라고 하면 영화 위대한 개츠비의 디카프리오가 마치 '그대 눈동자에 건배'를 외치듯 잔을 들고 있는 이미지가 떠올라서, 자신의 재산을 방탕하게 플렉스 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상징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아마도 방송 관계자도 같은 의미로 특정 연예인을 개츠비에 비유했을 것이다. )  


하지만, 책을 읽어보면 개츠비는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다.

적어도 그의 영혼은 단 한 번도 자유로웠던 적이 없다.


- 아래부턴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스포가 상당부분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 책을 읽지 않으신 분이나 스포에 민감하신 분들은 참고하세요. 


단 한 번도 자유롭지 못했던 개츠비의 영혼

누가 그를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했는가.

그가 돈을 거침없이 쓰고 성대한 파티를 자주 열어서?

소설을 읽어보면 그가 거의 매일 밤 파티를 열었던 것은 맞지만, 정작 개츠비가 여자나 술을 즐겨서 그런 것은 아니다. 파티가 진행되는 동안 그는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의 거대한 저택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고, 며칠씩 파티를 즐기는 손님들도 있지만, 정작 개츠비의 얼굴을 직접 봤거나 이야기를 나눠본 사람은 거의 없다. 심지어 그들은 개츠비가 근처에 있음에도 알아보지 못한다. 

그를 실제로 본 적도 없는 손님들은 조잡한 상상력과 추측에 허세를 더해 개츠비에 대한 거짓된 소문의 살을 찌우고 그걸 안주 삼아 밤새 주인 없는 파티를 즐긴다.

만약, 개츠비가 진정으로 돈 쓰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파티를 즐기는 인물이라면 매일 밤 파티의 주인으로서의 절대적인 혜택과 권력을 누렸겠지.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파티를 자주 열었던 것은 맞지만,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할 만큼 파티에서 여성과 스캔들이 나거나 무례한 행동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럼 그는 왜 그렇게 매일 밤 천문학적인 돈을 써가며 파티를 열었던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데이지'라는 그의 옛 연인 때문이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 그런 화려한 파티가 매일 밤 이어지면, 이 특이한 축제는 사람들의 입을 타고 소문으로 퍼져 나갈 것이고, 그러다 보면 데이지도 돌아온 개츠비의 존재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게 될 테니깐.

개츠비의 컴백과 파티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한 그녀라도 불편하지 않은 마음으로 그 파티에 참석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파티는 '누구에게나' 열려있으니깐. 적어도 대외적으로 그녀는 단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파티에 참석하는 거뿐이니깐.


개츠비는 그녀와 재회를 할 수만 있다면 다시 그녀와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이렇게 모든 것은 데이지와의 재회를 위한 것일 뿐, 자신의 쾌락을 위한 것이 아니다.

개츠비의 영혼은 적어도 이 소설의 시작에서 끝까지 한 번도 자유로웠던 적이 없다.

그는 자신의 영혼을 스스로 데이지의 손목에 묶어 버렸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위대한 개츠비

그럼 왜 개츠비가 위대하다는 타이틀을 얻었을까?

그가 위대한 이유는 재산이 많아서도 아니고 세상에 위대한 업적을 남겨서도 아니다.


그가 위대한 이유는 겉만 번지르하고, 즉흥적이고, 온갖 허풍과 그럴듯한 말로 스스로를 뽐내는 거짓 가득한 껍데기의 세상에서 오로지 개츠비만이 '심장'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소설 속 뉴욕의 모습은 돈과 화려함의 연극 무대 같다.

세상 그 어느 곳보다 화려하고 세련된 사람들이 사는 곳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은 모두 연기자다. 마치 대본을 외우고 연기하는 배우들처럼 자신이 뉴욕이라는 엄청난 도시에 어울리는 존재임을 과시한다. 자신이 가진 것보다 더 많은 재력을 뽐내고, 항상 최신 유행의 중심에 있으며, 조연이나 단역 따위는 없고 모두 자기가 주인공이라고 주장하는 한 편의 엉터리 연극 무대 같다. 

재력은 곧 욕망의 자유로움으로 표출된다.

그들은 먹고 마시고 취하고 즐기고 섹스한다.

하지만 그 속에 마음은 없다.

이해관계에 따른 발 빠른 대처가 있을 뿐.


데이지가 사고를 냈을 때. 

개츠비가 죽었을 때.

그들의 화려함에 감춰져 있던 누추한 본모습이 비로소 드러난다.

데이지는 지구 끝까지라도 개츠비와 함께 할 것처럼 굴다가 개츠비가 막상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니 지금까지 그에게 보였던 모든 행동들을 거두어들인다.

하지만 개츠비로부터 얻을 수 있는 혜택은 버릴 수가 없다.

그녀는 호텔에서 개츠비가 폭탄선언하고 난 후에도 그와 함께 드라이브를 즐긴다. 심지어 자기가 운전해 보겠다며 질주하다가 어이없는 사고를 냈고, 그로 인해 사망자가 발생한다.

개츠비는 그녀를 위해 그 사고마저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단 한 번도 그녀를 원망하지 않았다. 아니 그의 마음은 그녀를 원망할 수 없었다.

하지만, 데이지는 그의 장례식에조차 오지 않는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 대신 죽은 것과 다름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무런 마음의 진동이 없다. 그저 자신들과 상관없는 하나의 해프닝처럼 다시 파티를 즐기고 뉴욕의 꼭두각시 같은 삶을 이어간다.

개츠비의 파티에 매일 참석해서 그의 술과 음식을 탕진하던 그 많은 사람들도, 그의 장례식장에 오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이 공짜로 즐길 수 있던 장소에 대한 부재만 느낄 뿐이다.


데이지를 향한 개츠비의 이러한 마음과 행동은 거대한 부와 아름다운 외모와 명성을 가진 다른 뉴욕의 인싸(요즘 단어로 표현하자면)들과 비교된다. 개츠비와 그들의 겉모습은 비슷했지만, 그들은 그저 돈의 냄새와 쾌락의 냄새를 따라 본능적으로 모여드는 날파리 같은 존재와 다를 바 없다. 당장의 쾌락에 따라 움직일 뿐이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거나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마음따위는 없다. 그저 화려한 포장지를 걸친 빈 껍데기의 몸짓일 뿐이다.

하지만 개츠비는 달랐다.

전쟁 참전부터 옥스퍼드를 거쳐 어둠의 세계에서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데이지 저택의 물 건너에 자신의 대저택을 짓고, 천문학적인 금액이 소비되는 화려한 파티를 열었던 것도, 그 모든 행동들은 오직 그의 '사랑'을 위한 행위였다. 마지막에 데이지의 사고까지 자신이 뒤집어쓸 만큼 그는 오로지 데이지를 위해 그 모든 것을 이루고 희생했다.

온통 스스로의 이익과 탐욕과 체면밖에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찬 세상.

개츠비는 그런 등장인물들 중에 유일하게 심장이 뛰고 있는 사람이다.

뉴욕이라는 연극 무대에서 유일하게 살아 숨 쉬고 있던 그는 그래서 위대한 개츠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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