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개야. 영롱한 진주를 품고 있는.

브런치10주년작가의꿈

by 하임

뽀로록

공기방울이 올라간다.

구독 중인 참나무 조개님이 해감을 하셨구나.

작은 공기방울은 파도를 타고 수평선으로 퍼져 나간다. 공기 방울 속에는 참나무님의 어릴 적 아픔과 추억이 담겨 있다. 참나무님은 오랫동안 속살에 담겨 있던 아픔이란 이물질을 오늘 '나의 어릴 적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해감했다. 정갈하고 덤덤한 문체로 뱉어낸 용기 있는 공기방물에 나는 '좋아요' 버튼을 누른다.


뽀로로록

뽀로록.

하루에도 수백 개의 공기방울이 올라가는 이곳은 진주조개들이 서식하는 얕고 따뜻한 바닷물의 브런치스토리다.




안녕. 나는 조개야.

거친 세상의 해류 속에서 연약한 속살을 지키기 위해 단단한 껍질로 무장한 조개.

처음부터 단단한 껍질을 갖고 있던 건 아니었어. 처음엔 플랑크톤처럼 그저 바닷물의 흐름 속에 맨몸을 맡기며 유연하게 떠다니던 그런 존재였지.

하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어. 아무런 보호막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만 살아가기엔 너무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걸 수많은 아픔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거든. 약한 모습을 보이면 쉽게 판단하고 집어삼키려는 괴물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그때부터 나는 껍질을 만들기 시작했어.

껍질이 생기자 무례한 해류로부터 나를 보호할 수 있었고, 두껍고 단단한 껍질은 연약한 나를 지켜주었지.

하지만, 껍데기가 두꺼워질수록 마음이 점점 답답해졌어. 입을 꾹 닫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속은 공기 흐름이 줄어들어 마치 무중력 상태처럼 컨트롤하기 힘들어졌어.

이러다 둥둥 떠서 조개를 노리는 새들이 있는 파도 위로 올라갈까 봐 두려웠어. 정말 큰일 나겠다 싶어 조심스레 입을 벌려 공기를 한 움큼 내뱉었어.

뽀로록.

맑은 바닷물과는 대비되는 회색빛 물방울이 수면 위로 올라갔어.

내 안에는 내뱉은 공기방울만큼의 여유가 생겨났어.

그 뒤로 나는 마음이 무중력으로 치달을 때마다 블로그에 글을 끄적이고 책 서평을 쓰며 공기방울을 내뱉었어. 그러던 어느 날 날 찾아온 플랑크톤이 속삭였어. "네가 뱉은 물방울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어."

그 작은 속삭임은 내게 힘을 주었고, 나는 입 모양을 바꿔가며 더 둥글고 투명한 공기방울을 만들어 보려고 시도해 봤어. 물방울이 맑고 투명할수록 나를 찾아오는 플랑크톤은 많아졌고, 나는 점점 용기를 얻어갔지.


그러던 어느 날, 연안에서 온 거북이가 바다 저편에 조개들이 살기 좋은 얕고 따뜻한 해안이 있다고 알려줬어.

하지만, 그곳은 천연 진주를 품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조개들만 선별해서 서식을 허락한다고 했어.

그리고 거북이는 이런 말을 덧붙였어.

"이렇게 예쁜 공기방울을 보니, 어쩌면 네 속에도 진주가 있을지 몰라."


나는 며칠 동안 모래 속을 헤치고, 해류에 몸을 실어 마침내 그곳에 도착했어.

'진주조개의 보금자리'라고 불리는 그곳은 역시 거북이의 말처럼 아무 조개나 받아주지 않았어. 나는 몇 번의 탈락 과정을 거치며 부족한 점을 보완했고, 마침내 입주 자격을 얻었지.

늦었지만 축하한다고? 고마워.


막상 자리 잡고 보니 또 다른 문제에 부딪혔어. 이곳 조개들이 내뿜는 공기방울은 내가 살던 곳보다 훨씬 이쁘고 아름다운 거야.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그들에 비해 부족함 투성이라는 것만 깨닫게 되었지.

급기야 나는 해감을 멈췄어.


내가 살던 곳에선 칭찬받던 공기방울이 이곳에서는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어. 나는 한동안 방황하기 시작했어.

다시 심해로 돌아갈까.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나를 응원해 주던 플랑크톤의 얼굴이 떠올라서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어.

한동안 나는 해감을 멈추고, 다른 조개들의 물방울을 유심히 살펴봤어.

그리고 나는 점점 깨닫기 시작했지.

해감도 막무가내로 하면 안 되는구나. 순간순간 내뱉는 단편적인 공기방울은 잠깐 반짝이다가 파도에 휩쓸려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지만, 일정기간 동안 모래면 모래, 먼지면 먼지, 종류별로 기획해서 길게 꾸준히 내뱉어야 비로소 수평선에서 반짝이는 아름다운 윤슬이 될 수 있는 거였어.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한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어. 해감은 단순히 물방울을 내뱉는 행위만이 아니라, 오랫동안 외면해 왔던 속살의 상처를 마주하고, 다독여 주는 치유의 과정이라는 것을. 그런 경험들이 쌓여 결국 진주가 된다는 것을 말이야.

이곳은 해감 좀 하는 조개들이 마냥 자신의 솜씨를 뽐내는 곳이 아니라, 서로를 통해 함께 성장하며 진주를 품는 따뜻한 곳이었어.

나는 다시 해감을 시작했고, 그 결과 네 권의 윤슬이 수평선에서 빛나고 있어.


얼마 전 해안가에서 '제13회 진주 발견 프로젝트'라고 새겨진 미역을 봤어.

이제부터 나도 그동안 모은 윤슬을 진주로 빚어서 한번 도전해 볼까 해.

언젠간 내 진주도 진주 감별사의 눈에 띄고, 그들의 손을 거쳐 더 단단하고 아름다운 진주로 뭍에 사는 사람들에게 전해지겠지.

사람들의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

빛나는 내 진주를 가만히 바라보면 그들의 마음속 상처도 저절로 해감되는 그런 진주였으면 좋겠어.

그러려면 내 진주가 그들이 교감할 만큼 영롱한 빛을 띠어야겠지.


나는 다시 속살을 들여다보며 해감을 준비할 거야.

한번 도전해 보려고. 그 영롱한 빛의 진주.


언젠가 나는 이렇게 나를 소개할 거야.

안녕. 나는 조개야. 영롱한 진주를 품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