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 강원도 금강군에 자리 잡고 있는 금강산에서 시작한 북한강은 양평균 양서면 양수리에서 남한강과 만난다. 만나는 지점의 이름은 두물머리. 두 강이 만나 하나의 강을 이루는 데, 그 넓이를 보면 '과연 한강이구나!'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올 만큼 넓을 뿐 아니라 수량이 풍부하여 놀라움을 자아내게 한다. 음, 물론 더 놀라운 것은 이렇게 풍부한 물이 있음에도 물이 부족한 국가라는 점이다. 현대인들의 생활 메커니즘이 아낌없는 소비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두물머리에서 북한강을 따라 몇 키로만 올라가면 '물의 정원'을 만날 수 있다. 북한 강변에 자리하고 있는 정원은 화려한 삶을 살지만 허망한 마음을 가진 도시민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고요히 흐르는 강물과 넓은 정원, 그 사이에 오솔길처럼 만들어진 아름다운 산책로에는 빡빡한 생활을 잠시나마 잊고 느린 걸음을 걸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잔잔한 웃음소리는 북한강의 바람을 타고 두물머리를 지나 팔당에 이른다. 팔당 댐을 건너 남양주와 하남 사이 아파트 촌을 지나 서울 강변에 자리 잡은 아파트와 마천루의 오피스 건물 사이사이 도심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팍팍한 도시인들의 콧구멍에 바람을 불어넣는다.
오월, 물의 정원이 가장 화려하고 활기찬 계절이다. 오월에는 정원 가득 주홍색과 노란색이 어우러진 개양귀비 꽃과 사람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당 현종의 후궁이었던 양귀비의 미모에 빗대어 '양귀비'라 불리게 된 양귀비 꽃은 아편 성분이 있는 꽃과 없는 꽃이 있다. 아편 성분이 있는 양귀비는 한 사람의 인생을 파멸로 몰아간다. 마치 양귀비가 당나라를 파탄 낸 것처럼. 아편 성분이 없는 양귀비는 개양귀비라 불린다. 이 꽃의 별명은 우미인초. 항우의 연인이었던 우미인의 이름을 붙였다. 양귀비와 함께 중국의 4대 미녀 중의 하나였던, 그녀는 항우의 곁에서 사랑만 하다 죽었다. 사랑만 하다... 사면초가의 전장에서 부른 그녀의 노래는 '대왕의 의기가 다하셨다면 천첩이 살아서 무엇하리오.'로 끝을 맺는다.
그런 우미인의 성정 때문이었을까. 개양귀비, 아니 우미인초는 사람을 파탄낼 수 도 있는 아편 성분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하늘하늘한 꽃 잎과 천연 빛깔을 자랑하여 보는 이들이 절로 빠져들게 한다. 그 덕분에 개양귀비 꽃이 만발하는 오월에 물의 정원을 찾은 이들은 꽃의 빛깔과 북한강의 물결을 만끽하며 눈으로 담고 웃음으로 나눈다.
올해 오월의 어느 날 아침, 슬쩍슬쩍 콧구멍이 간질간질 했다. 작년 오월 아내와 함께 했던 개양귀비 꽃의 하늘하늘한 꽃잎과 그 빛깔, 바람에 일렁이는 꽃의 물결이 그리고 무심한 듯 흐르고 있는 북한강의 강물과 탁트인 시야감이 그리웠다. 그 그리움을 참지 못하고 일 년 만에 물의 정원을 다시 찾았다.
이른 일요일 아침, 늦잠을 자는 아이들 몰래 집을 나왔다. 차를 몰고 새벽길을 달려 물의 정원에 도착했을 때는 아침 여덟 시. 부지런한 이들이 이미 산책을 하고 있었다. 천연색 꽃잎의 일렁임과 무심히 흐르는 강물. 정원의 들판에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개양귀비 꽃이 가득했다. 우리는 서로 손을 잡고 아름다운 꽃길을 걸었다.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와 복잡한 머릿속에 청량감을 불어넣었고 우리 옆에는 주홍색과 노란색 꽃들이 가득했다. 노란 꽃, 나는 노란 꽃과 눈을 마주쳤다.
나는 이들이 보낸 시간을 떠올렸다. 꽃을 피우기 위해 차가운 강바람에 쏟아지는 된서리, 흰 눈을 견뎠을 테다. 추운 겨울과 북한강의 무심한 강물과 겨울바람, 그 어느 것을 원망하지도 않고, 그저 마땅히 스스로 그러해야 하듯이, 겨울을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꽃을 피웠으리라. 사랑만 하다.. 간 우미인 처럼.
노란.. 꽃이 아름다웠다. 이들이 보낸 시간이... 가련했다. 이들에게는 시간이 없는 것을, 그리고 이 광막한 우주 공간에서 애쓰며 사는 이들은 사람들 밖에 없음을 알면서도.
그곳에서 더 머물고 싶었다.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명상을 같이 하는 모임.. 을 만들고 있어요. 명상, 혼자 하는 거 어렵습니다. 습관이 안되어서죠.. 습관을 키우려면, 같이하는 게 좋습니다. 아래 글 참고하시고, 관심 있는 분은 "노크!"를 해주세요. 새로운 인연이 만들어지고, 인연은 새로운 길을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