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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어디에서 살고 있니?

스미싱, 첫 번째 이야기

by 예신

늦은 시간 '징'하고 카톡 메시지가 왔다. 누굴까? 정우?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문자의 내용이 이상하다. 존댓말과 반말이 섞여있고 문장에 어색함이 묻어 있다. 번역기를 돌린 것인지, 아니면, 한글을 잘 못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나의 친애하는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응, 뭐지? 이건 뭘까? 이름을 말해달라니?' 하는 생각이 드는 찰나에 다시 메시지가 왔다.


"그대의 아름다운 프로필을 가로질러 왔을 때 그래서 저는 인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이런 저돌적인 남자가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로부터 대시를 받은 여자의 마음을 알 것 같다. 기분이 나쁘면서도, 좋으면서도, 좋지도 않고, 뭐 이런 황당할 때가 있나 싶어, 주저주저했다. 알려줘도 되나, 하는 걱정에 마지못해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얘기해요."라고 했더니, 괜찮단다. 아니, 이런.. 내가 안 괜찮은데. 메시지가 계속 온다. 징, 징, 징. 아, 놔, 냉정과 열정사이 수필 쓰기 숙제해야 하는데.


"나는 고아입니다. 한국에서 났지만 부모님의 죽음 이후 15살 때 부모님을 잃었습니다. 고아원 가정에서.."

"부모님의 유일한 생존 아이니까 나는 형제 나 자매가 없습니다... 부모님의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항상 내 눈을 버스트???? 나는 가톨릭 사제에 의해 입양되었습니다...."


'아, 아픈 과거가 있는 사람이구나. 어쩌지? 그나저나, 이 사람은 어떻게 나에게 메시지를 보낸 건지?' 하는 고민에 빠졌다. 그때, 다시 메시지가 왔다.


"한국인 친구를 찾고 있었다. 나는 열려있는 채팅 나는 당신의 아름다운 프로필을.."


이런, 오픈 채팅으로 연락한 거였다. 얼마 전 명상 모임을 위해 채팅을 오픈했었다. 워낙 스미싱이 많다 보니, 메시지가 반갑지 않다. 하지만, 이 남자, 저돌적이다. 이런, 젠..


"한국의 어디에서 살고 있니? "


서울이라고 말해줬다. 아름답다고 회신이 왔다. 어디에 살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이란 테헤란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유엔을 위해서 일하고 있다고. '아, 놔, 진짜 냉정과 열정사이 써야 하는데...' 하는 마음이 일었다. 하지만, 나는 냉철하지 않은가? 마음을 가다듬고, 냉정하게 생각해봤다. '과연, 메시지가 이렇게 많이 오는데.. 냉정과 열정을 쓸 수 있을까?' 한 숨이 나왔다. 다시 메시지가 왔다.


"나는 50인데 당신은 몇 살입니까?"


'아, 이런, 나이까지.. 묻다니. 이거 스미싱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일었다. 이름 묻고, 나이 묻고, 도시 묻고.. 헉, 이러다 큰 일 나는 건 아닐까, 하지만.. 부모님을 잃고 홀로 살아남아 고아원에서 자랐을 어린 정우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미국의 작은 마을과 거리, 학교의 하얗고 검은 사람들 사이에 주저하며 있었을 정우의 마음이 떠올랐다. 냉정과 열정.. 참, 모를 일이다. 냉정해야 될까?


"나의 친애하는 너 혼자 사니?"


드디어, 호구조사가 들어왔다. '아, 이런.. 이런 것 까지 알려줘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결혼했다고 했더니, 자기는 홀아비라고 한다.


"나는 몇 년 전 아내를 잃었다. 나는 8살짜리 딸이.. 미국 기숙학교.."

"나는 딸에게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생은 나에게 쉽지 않았다."


아내의 이야기를 한다. 몇 년 전에 사고로 잃었다고, 아내가 보고 싶지만, 볼 수가 없다고, 인생이 쉽지 않다고 한다. 이런 경우가 있나. 부모님을 잃고 고아가 되었는 데, 아내까지 사고로 잃었다니. 딸은 잘 있냐고 했더니, 아내의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음.. 한국 말이 서툴긴 하다.


"한국에 오면 언니에게 연락을 해도 됩니까?"

"..."

"..."

"으음..., 저는... 남자입니다."


'아, 놔.. 작업당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며, 이제 문자를 안 보내겠거니 했다. 하지만, 다시 메시지가 왔다. 전혀 당황하는 기색이 없이. 아, 이게 뭔가?


"괜찮아, 형제여. 친애하는 형제 나는 한국인 친구를 사귀고 싶다. 한국의 소식이 알고 싶고.. 한국에 왔을 때 한국을 잘 알고 싶다."

"친애하는 형제 당신의 카카오톡에 나를 추가하십시오. 저기 저에게 메시지를..."


그가 카카오톡 아이디를 보냈다. 하, 이건, 뭐.. 오픈 채팅을 닫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나는 그를 친구로 추가했다. 인연이라는 것은 원래 그렇지 않은가. 우연히 찾아오고, 그렇게 연결이 되고, 또 다른 인연을 불러오고. 그래, 그게 삶이니까. 나의 삶에 살짝, 살~짝 발가락 끝의 일부분을 걸친 그를 친구로 등록했다. 냉정과 열정사이라는 제목의 수필은 이렇게 마감하기로 했다.


그는 열정적이었고, 나는 냉정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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