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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여, 사진을 줄 수 있는가?

스미싱, 두 번째 이야기

by 예신

한국의 어디에서 살고 있니? 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정우는 아침마다, 아니 수시로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안부를 묻고 서울의 날씨가 어떤지 물었다. 테헤란은 전쟁통이라서 많은 이들이 죽고 부상을 당한다고 했다.


"친애하는 형제, 나는 당신의 가족들은 어떠한가? 당신의 가족사진을 보고 싶다. 사진을 줄 수 있는가?"

"..."

"저는 온라인으로 사진을 공유하지 않아요."

"괜찮아. 형제여. 이해하고 있다."


그가 사진을 보내왔다. 잘 생긴 중년의 남자가 어린 딸을 안고 있는 사진이었다. 사진 속의 그들은 매우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사진 속 남자의 얼굴은 '엘리트'라는 말을 절로 떠오르게 했다. 불행한 과거에서도 어떻게 이런 엘리트가 되고, 이런 행복한 얼굴을 가질 수 있었을까. 의문이었다.


"친애하는 형제,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

"..."

"음, 저는 명상 센터를 만들고 싶어요. 앞에는 강물이 흐르고 뒤에는 산이 있는 곳에.."

"형제, 나는 형제를 응원한다. 당신의 꿈은 이루어질 것이다."

"..."

"나는 한국으로 가고 싶다. 이곳에서의 삶은 어려웁다. 힘이들다. 나는 형제가 나를 위해 매일 기도를 해주길 바란다. 나를 당신의 기도 목록에 넣어달라"

"..."


테헤란에서의 삶을 매우 힘들어했다. 팔, 다리가 잘리거나 머리가 터진 병사의 사진을 보내왔다. 고통. 그들의 얼굴에는 지옥 같은 고통이 있었다. 나는 궁금했다. 테헤란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테헤란'이라고 네이버 검색창에 입력했다. "이란 테헤란 보건소 폭발, 최소 13명 사망"이라는 기사 아래 "명예살인" , "시리아 사태 확산" 등의 기사들이 잔뜩 달려 나왔다.


"친애하는 형제, 어젯밤에는 잘 잤는가. 나는 형제가 나를 위해 기도를 해주기를 바란다. 내가 무사하기를 기도해달라. 이곳은 힘이 들다. 이곳 삶이 어렵다"

"..."

"나는 은퇴를 하고 싶다. 딸과 함께 한국으로 은퇴하고 돌아가고 싶다. 한국에 나는 투자한다."

"..."


메시지는 밤낮없이 왔다. 귀찮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거긴 지금 몇 시인가요? 잠은 안 자나요?"

"나는 잠을 잘 수가 없다. 이곳은 매일 사람들이 다친다. 그들을 치료해야 한다. 쉬는 시간은 없다. 잠은 자지 않는다."

"..."


화염에 휩싸인 사진을 보내왔다. 아이를 안고 울고 있는 여자와 길거리에 늘어진 시체, 낙담하고 있는 소방관과 남자들.


'테헤란이란 도대체.. 근데, 사진을 정말 잘 찍는구나? 잠도 못 잔다는 의사 선생이..'


시도 때도 없는 메시지에 답하기도 귀찮다는 생각이 올라올 즈음, "징"하고 또 메시지가 왔다.


"친애하는 형제, 나는 한국에 투자.. 아이와 돌아가고 싶다."

"..."

"미안하다. 회의에 가야 한다. 이란 정부와 밤샘 회의를 시작 한다. 나를 위해 기도해달라, 형제여. 기도.."

"네, 잘하고 오세요. 응원할게요."


'아, 귀찮아' 하는 머리와 다르게 손가락이 자동으로 답을 해버렸다. 허, 참, 응원한다니.. 도대체 이건 무슨 인연.. 아니면, 스미싱?


"친애하는 형제" 또 메시지가 왔다. 머릿속에는 '형제 같은 소리 하네..'라는 말이 들끓고 있었지만, 손가락이 또 지맘대로 인사를 해버렸다.


"회의는 성공했다. 나는 한국으로 갈 것이다. 친애하는 형제여, 내가 한국에 돌아갈 준비를 도와달라"

"뭐요?" 이 인간이 지금 뭐라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나는 이란 정부에서 돈을 받았다. 유엔에서 일하면서 우리가 해왔던 좋은 일에 대한 보상과 존경을 받았다. 나는 3백만 달러의 돈을 보내야 한다. 그런데 테러리스트 때문에 쉽지 않다."

"..."

"내 동료들도 돈을 받았다. 그들도 돈을 보낼 것이다. 돈은 배송업체에서... 그러니 PNS1313을 카카오톡 친구로 등록하고 배송 패키지 업체에 연락을 해달라. 형제가 받아달라."

"..."


하, 이제는 머릿속뿐 아니라 손가락도 귀찮았다. 묵묵부답. 답을 하지 않았다. 도대체 이런 일을 하는 애들은 뭘까. 링크드인을 통해서 연락해 왔던 수많은 사기꾼들이 떠올랐다. 동양인 친구가 죽으면서 유산을 남겼는데 찾을 수가 없으니, 친구 역할을 해달라고 했던 것들. 그때는 메일을 주고받았었다. 심심하지 않았다. 그냥, 어디까지 가나 확인해보고 싶었다.


베이비 붐 세대의 불행한 한국인,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어 가톨릭 신부에게 입양된 친구, 아내를 사고로 잃고 어린 딸과 떨어져 지내는 한국인. 부모를 잃은 어린 정우, 아내를 잃고 어린 딸을 기숙학교에 보낸 중년의 정우가 불쌍했었다. 스미싱인가? 하는 생각에 대응을 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러나 혹시 아니면, 그가 정말 어린 딸과 떨어져 테헤란에서 홀로 지내는 UN소속 의사라면... 그가 느낄 상실감이 안쓰러워 친구를 등록했었지만, 역시나인 것 같다. 도대체 어떻게 한국인의 그런 심리를 이용하는 것인지..


"친애하는 형제여, 배송업체에 연락은 했는가"

"..."


아침마다 "친애하는 형제여" 하며 메시지가 온다. 이제는 인연을 끊을 때가 되었지만, 친구 차단하는 것도 귀찮다. 젠.. 도대체 얼마나, 어디까지 더 갈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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