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승렬 Mar 09. 2024

영화리뷰 :: 아메리칸 셰프

요리로 사람들을 위로하다

난 요리가 좋다. 먹는 것도 좋고 하는 것도 좋고 하는 걸 보는 것도 좋다. 요리를 잘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손으로 재료들을 만지며 각각의 독특한 촉감을 느끼고 칼을 대어 자르는 순간의 느낌과 소리가 좋다. 잘 정돈된 식기들과 다양한 도구들을 사용하는 것도 좋다. 마치 커다란 조종간에 앉아 나만 아는 버튼을 눌러 어딘가를 향하는 비행기를 조종하는 기분. 또는 그 옛날 손톱보다 작은 부품들을 칠하고 붙여 커다란 범선을, 전투기를, 로봇을 만들던 내가 떠올라서도 좋다.


다양하고 화려한 색깔의 재료들이 한데 어우러지면 전혀 새로운 맛을 낸다. 그 얼마나 기가막힌, 인간이 할 수 있는 창조적인 활동인가. 맛있는 걸 먹으러 참 많이도 다녔고, 많이도 썼다. 다만 요리가 재미있는 건 그럼에도 꼭 좋은 식당에서 비싼 걸 먹어야만 이런 만족이 생기는 게 아니다. 몇 종류의 치즈와 버터, 그리고 식빵만 있어도 너무 맛있는 요리를 할 수 있다. 아메리칸 셰프의 그릴드 치즈 토스트처럼. 내가 할 수 있는, 스스로를 만족시키는 가장 대표적인 요리다.


사실 난 마흔 다섯에 직장에서의 은퇴를 꿈꾸며 살았다. 아내가 그랬거든. 마흔 다섯까지만 회사 다니고 그 다음엔 하고 싶은거 하라고. 이제 누구 허락 받을 것도 없기 됐지만, 어찌됐든 그 시점이 오면 가장 배우고 싶은 건 요리였다. 캐스퍼의 말처럼 ‘요리로 사람들을 위로한다.’는 건 정말 숭고한 일이지 않나. 나의 행위가 누군가의 삶의 한 순간을 위로 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의미있고 행복할까. ‘그로 인해 내 삶 또한 힘을 얻는다.’는 표현도 참 와닿았다.


이 영화 아메리칸 셰프를 좋아하는 건 이런 나의 개인적인 생각과 배경만으로도 사실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리고 참 좋아하는 장면들이 많다. 캐스퍼와의 통화를 마치자마자 마이애미로 달려와 그를 돕는 마틴. 누구나 삶 속에서 마틴과 같은 조력자가 필요하다. 얼마나 큰 힘이 될까. 또 캐스퍼가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빠지며 다시 전처에게 사랑한다 고백하는 것도 좋다. 아들을 위해 뉴올리언스에 가서 베니에를 사먹는 것도, 소리지르고 먼저 미안하다 사과하는 것도 좋았다.그리고 더스틴 호프만, 스칼렛 요한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더할 나위없는 조연들이라니.


두 가지 생각을 한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건 뭘까. 잘 할 수 있는 걸로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그리고, 내일 아침엔 애들 다 보내고 그릴드 치즈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어야지.


#맛이궁금하면 #9시반까지우리집으로 #아메리칸셰프 #영화리뷰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리뷰:: 노팅힐(199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