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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승렬 Jul 25. 2021

영화리뷰:: 노팅힐(1999)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어렵고도 아름다운 이야기

이 영화는 시작부터 감동이다. 잔잔하게 시작되는 피아노 반주의 첫 음만 들어도 마음의 몽글 거림을 거부할 수 없는 엘비스 코스텔로의 'SHE'. 그리고 등장하는 아름다운 애나.


1999년의 줄리아 로버츠는  정말이지 너무너무 아름다웠다. 더 어렸고 발랄했던 1990년의 귀여운 여인을 기억하는 분들도 많겠지만 99년의 그녀에겐 그저 예쁨을 넘는 우아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어쩌면 극 중에서 보여주는 상대에 대한 배려, 예를 들면 태커 동생의 생일에 닭요리를 만든 친구 맥스가 불편할 것 같아 본인의 베지테리안임을 숨기고 최고였다고 말해주는 모습이나 - 그걸 보며 '이 사람 정말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맥스의 아내 벨라의 눈빛, 저녁 자리를 마치고 나가기 전 모두의 볼에 입을 맞추고 태커의 동생에겐 다시 한번 축하 인사를 건네며 꼭 안아주는 모습, 그런 마음 씀에 아름다움이 더해 드러나는 것이 우아함인 듯했다. 누군가에게 우아하다는 찬사, 그 이상의 말이 얼마나 더 있을까. 그것은 단순히 '척' 한다고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올 들어 좋아서 여러 번 본 영화들을 다시 보며 느끼는 건 한 번도 눈에 띄지 않았던 장면이 새롭게 발견된다는 점이다. 윌리엄 태커가 이혼한 남자였다는 걸, 중요한 설정으로 처음 받아들였다. 그런 상황에서만 나오는 그의 감정, 눈빛, 고민들이 어쩌면 지금 내 상황과 맞물려 더 깊이 다가왔을지 모른다. 신기하다. 노팅힐을 5번 넘게 집중해서 봤고 집중하지 않고도 5번은 더 봤을 것임에도 처음 머릿속에 박힌 사실이다. 역시 영화든 책이든 음악이든 나의 감정 상태가 감상하는 마음에 깊이 담긴다. 그뿐이랴. 우리가 먹고 즐기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내 마음의 색이 어떤 지에 따라 각각 다르게 물든다.


노팅힐은 가장 마지막 장면, 애나가 태커의 마음을 확인하고 세상에 두 번 다신 없을 것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나지막이 내뱉는 'Indefinitely' 와 그때 흐르는 음악 'She'를 보고 듣기 위해 2시간을 기다린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나는 그 장면을 좋아했다. 아니 모두가 그럴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엔 이전에 보고 듣지 못했던 몇 가지 장면과 대사들이 마음에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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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나와의 짧은 만남 이후 그녀에게 푹 빠져버린 태커는 이런 말을 한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찾았는데, 그 사람도 나를 사랑할 확률은 지극히 낮고 어려운 거야."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안다. 난 너무 쉽게 사랑에 빠졌고 상대도 그러했다. 서로의 마음은 한 시간도 채 못 되어 확인됐고 이후 그 마음은 13년의 긴 시간 동안 흔들려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같은 대사를 이전에 들었을 때 아무 감흥도 공감도 없었던 것 같다. 살면서 이런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서로에게 완전한 믿음을 주며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인간의 짧은 인생 동안 누릴 수 있는 어쩌면 최고의 행운은 아니었을까. 그런 사랑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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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의 데이트를 마친 두 사람이 에나의 호텔 로비 앞에서 서로의 관계를 정의하지 못한 채 솔직하게 나누는 대화도 매우 좋았다.


"우리는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요" 잘 모르겠어요. "나도 몰라요"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데 그 앞날을 생각하면 너무 길고 복잡하고 어려웠을 것이기에, 그저 서로 잘 모르겠다고 현재의 감정에 충실한 이야기를 한다. 그럼에도 관계의 시작을 위해 다음 걸음을 내딛으려 다시 한 마디를 더했던 애나의 용기도, 그걸 자연스러운 미소로 받은 태커의 마음도. 부러웠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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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스캔들 이후 다시 온 런던에서 애나는 태커를 찾는다. 하지만 태커는 애나를 거절한다. 그는 두려웠다. 다시 또 버림받을 것에. 그가 본인의 이혼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 사람이 저의 모든 것을 알아버린 거죠. 그래서 떠났어요'라고. 그렇기에 두려웠을 것 같다. 인기 많은 세계 최고의 스타. 자신의 일에 바쁘고 새로운 끊임없이 사람을 만나야 하는 그런 배우와의 사랑 끝에 혹여나 버려져 마음의 상처를 다시 입고 싶지 않았을 것 같다. 그 두려움에 사랑의 마음을 거절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애나는 솔직하게 말한다. '나의 명성은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에요. 나도 그저 한 남자 앞에 서서 사랑해달라고 부탁하는 여자일 뿐이에요.'


그녀의 진솔한 고백으로 태커는 마음을 돌린다. 후회할 일은 남기지 않는 거다. 영화를 보는 내내 입가를 간질거리게 툭툭 뱉은 영국식 유머를 담은 그의 마지막 고백. 그 결과가 빚은 것이 앞서 얘기한 애나의 마지막 대사와 이 영화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감동적인 음악 'SHE'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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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보이지 않던 애나의 멋진 패션들에도 눈이 참 즐거웠다. 애나는 어쩜 그렇게 다양한 스타일이 잘 어울리는지. 태커의 여행 서점에 처음 들렀을 때 시크하게 입은 올 블랙, 그리고 슬쩍 드러나는 베레의 샤넬 로고, 흰 티셔츠 한 장에 자연스러운 노 메이크업, 태커의 셔츠를 오버 사이즈로 사랑스럽게 입은 모습, 태커에게 고백하러 왔던 날 나름 그녀 딴엔 가장 평범하고 소박하게 입으려 노력한 티가 났던 하늘색 브이넥 니트와 얇은 가디건. 전부 너무나 잘 어울렸다. 그런 그녀의 에티튜드가 너무 좋았다. 또 태커는 정말 남자가 재킷을 걸쳤을 때 어떤 마법이 일어나는 지를 가장 잘 보여줬다. 블루톤의 셔츠에 브라운 재킷, 화이트 셔츠에 네이비 재킷. 정석과 같은 멋진 스타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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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비현실적인 상황을 결국 현실의 세계로 만든 영화 노팅힐. 1999년 첫사랑에 마음 졸이던 나와 2021년 사랑을 포기할 수 없어 마음 졸이는 내가 겹쳤다. 두 사람의 대화 속에 등장하는, 우연한 만남과 영원한 사랑을 그린 샤갈의 <신부>도 다시 찾아보게 됐다. 샤갈은 아내를 정말 많이 사랑했던 것 같다. 제주 빛의 벙커에서 내년 2월까지 모네, 르누아르, 샤갈을 전시한다. 그전에 제주에 한 번은 갈 수 있었으면.
















https://www.youtube.com/watch?v=ecYMyB7QOq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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