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기훈 Nov 02. 2023

시뮬라크르, 시뮬라시옹, 그리고 디지털세계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40년 전 예측한 세상

 '시뮬라크르(Simulacra)'와 '시뮬라시옹(Simulation)'은 프랑스의 철학자인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20세기 후반에 제안한 개념으로, 현대 소비문화와 그 구조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시뮬라크르는 본래의 현실과의 차이를 불분명하게 만드는 복제물이나 모조품(명사)을 나타내고, 시뮬라시옹은 본래의 원본이 없이 모조품이 실제로 진짜로 인식되는 현상(동사)을 말한다.



 보드리야르의 철학적 의의는 현대 사회가 인식할 수 있는 현상이나 기호 자체로 점철되어 있음을 지적하고, 그것을 위한 시뮬라크르 만들기(시뮬라시옹 하기)에 뿌리내림을 고발한 것에 있다. 이는 2,000년 이전에 플라톤이 설명했던 '이데이'론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보드리야르는 현실과 그것을 대변하는 사물, 아이디어, 혹은 이미지 사이의 관계를 다루며,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을 통해 현실과 가상, 진짜와 가짜, 원본과 모조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현상을 설명하고자 하였기에 '이데아' 보다는 인식이 가능한 세계에 더욱 주목한다.

 

 현대의 디지털 기기 중독 현상은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이 설명하고자 하는 바에 상당히 잘 부합하며, 해당 개념을 통해 이해될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해 접하는 정보와 현실 세계의 경험 간에 경계가 모호해지고, 가상의 세계에 빠져들어 현실과 가상 사이의 구분이 희미해진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실제적인 경험과 만남보다는 디지털 세계에서의 경험을 선호하게 되며, 현실과의 접점을 점차 상실해 간다.


 시뮬라시옹은 원본 자체가 없이 모조품이 진짜로 인식되는 현상을 뜻하는데, 이는 실제로 디지털 세계에서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현상 중 하나이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은 우리의 삶을 보여주는 모습이지만, 그것이 실제로 우리의 삶의 모든 부분을 반영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가짜의 세계가 우리의 자아와 현실 간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며,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상화된 버전이나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에 집착하도록 만든다.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의 개념을 통해 우리의 현실세계와 가상세계 사이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현실 세계를 경험하고 이해하는 방식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고찰을 요구한다. 정신적인 안녕과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세계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조율하고, 현실과 가상 사이의 구분을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작가의 이전글 디지털 공간에서 주인 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