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우면 쉬운대로,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지나온 오토바이의 엔진 소리와 바람,
그리고 길 위에서 만난 풍경들은 내 마음에 깊이 새겨진다.
서울의 분주함을 뒤로 하고, 나는 오토바이의 엔진을 발아래 두고 속초로 향한다. 양평과 홍천을 지나는 이 길은 두 바퀴를 타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친숙하다. 두 바퀴로 바람을 가르며, 44번 국도를 따라 인제로 달린다. 익숙하고 편안한 길이 주는 안정감은 나의 마음을 평온하게 한다. 그러나 익숙한 길이라고 해서 그 매력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김포의 너른 들녘에서부터 달려온 56번 지방도는 이제부터 44번 국도를 만난다. 미시령 선바위를 지나며 마치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듯 변화의 물결을 보여준다. 용대리 황태마을을 지나 좁은 협로가 시작된다. 이 길을 지날 때면 마치 숨겨진 보물을 찾으러 모험을 떠나는 인디애나 존스가 된 것 같은 설렘을 느낀다. 사천왕처럼 길을 동서로 지키고 서있는 바위들을 따라 계곡 사이로 달리다보면, 설악산의 품안에 들어어왔음을 자연스레 알게 된다. 그러나 이 코스의 매력을 여기에서 다 설명하기엔 아직 이르다.
미시령터널을 진입하는 순간, 오토바이의 엔진 소리가 터널의 벽을 울린다. 터널을 통과하는 소실점 끝에서 기다리는 것은 내리막길과 함께 펼쳐지는 속초 앞바다의 장엄한 풍경이다.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풍경을 마주하노라면 숨이 막히는 듯하다. 오른쪽에 우뚝 선 울산바위는 이 길의 장승처럼 우리를 내려다본다.
하지만 이 길의 진정한 매력은 미시령옛길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울산바위를 마주하고 앉아선 제법 큰 규모의 관광 리조트에서부터 고개 넘어 인제 용대리의 황태마을까지 살금살금 빠져나오는 숨겨진 산길. 억지로 찾지 않으면 네비게이션은 절대 안내해주지 않는 이 코스는 실뱀같은 산길을 따라 올라가며 굽이마다 마주치는 경치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중간중간에는 울산바위를 조망할 수 있는 포인트가 여럿 있어 엔진을 자꾸만 멈추도록 한다. 미시령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속초시의 전경은 이 여정의 하이라이트이다.
산을 넘어 바다에 닿기까지 이 여정의 끝에서, 나는 다시 새로운 출발을 준비 한다. 새로운 풍경은 내게 또 다른 힘을 준다. 지나온 오토바이의 엔진 소리와 바람, 그리고 길 위에서 만난 풍경들은 내 마음에 깊이 새겨진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된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도, 그곳에선 또 다른 여행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