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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형 형사 Jan 31. 2021

"이번이 두 번째예요, 신고해도 잡지도 못하면서"

국민에게 사랑받는 경찰을 꿈꾸다...


"이번이 두 번째예요, 신고해도 잡지도 못하면서"

(신고되지 않은 금은방털이 미수사건)

당직날 다른 사건의 현장에서 수사 중일 때 파출소에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새벽에 누군가 금은방 유리창을 깨고 들어오려다 미수에 그쳤는데, 금은방 사장님께서 이상하게도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겠다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급히 금은방에 도착을 하니 파출소 경찰관과 경비업체 요원이 밖에서 얘기를 하고 있었고, 사장님은 가게 안에 있었습니다.

우선 CCTV를 돌려봤습니다. 모자에 마스크를 쓴 한 용의자가 돌멩이로 창문을 있는 힘껏 2번 내려쳤는데, 다행히 강화유리라 유리가 깨지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유리창을 자세히 보니 돌멩이에 긁힌 자국이 보였습니다.

 

 


 

 
저는 금은방 안에 앉아 계시는 사장님에게 다가가 "사장님, 신고를 해주셔야 저희가 수사를 하고 범인을 잡지 않겠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사장님은 "피해도 없으니까 귀찮게 하지 말고 그냥 가세요"라고 퉁명스럽게 말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약간 짜증 난 말투로 "그럼 경찰은 뭐하러 부르셨어요?"라고 물었더니, 사장님은 경찰은 자기가 부른 게 아니라 경비업체가 부른 거고, 5년 전에 자신의 금은방이 털려서 경찰에 신고를 했는데 범인도 못 잡았고 담당 형사라는 양반은 연락도 한 번 없었다면서, 그때 손해를 몇천만 원을 봤다면서... 신고해봐야 귀찮기만 하고 잡지도 못할 테니 그냥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사장님의 말투에서 경찰을 불신하고 계심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근데 저는 사장님에게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누군가가 제 머리를 한 대 때린 것처럼 '아~!'하고 그 사건이 기억이 났습니다. 5년 전에 사장님의 금은방이 털렸었었고 다른 팀에서 수사를 했는데 결국에는 범인을 못 잡고 미제사건으로 남은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경찰을 못 믿겠다며 사장님의 손에 등 떠밀려 쫓겨나듯이 금은방을 나온 저희 수사팀은 사무실에 들어와 신고가 접수되지 않은 '금은방털이 미수 사건'을 떻게 처리할지를 두고 회의를 했는데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저는 사장님의 신고가 없더라도 지금 즉시 수사에 착수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선배님들은 피해자의 진술이 없기 때문에 범인을 잡더라도 검사가 기소를 할 수 없는... 그러니까 유죄 판결을 받을 수 없는 이 사건의 수사에 돌입하는 것 반대했습니다. 일선 강력팀은 많은 사건에 치이기도 하지만 강력형사라고 하더라도 쉬는 날도 없이 계속 일만을 할 수는 없기 때문에 5명으로 꾸려진 강력팀의 수사력을 각 사건에 적절히 분배를 하는 것 또한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선배님의 말씀도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저는 이 사건이 비록 유리가 안 깨져서 미수에 그쳤지만 단 한 건이라도 터지면 큰 재산 피해가 발생하는 사건이고 연쇄 범죄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다른 사건들은 잠시 미뤄두고 이 사건을 수사하겠다고 피력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제가 꼭 사장님을 설득해서 어떡해서든 피해 진술을 받아내겠다고 우겨서 저희 팀은 바로 용의자의 추적을 시작했습니다.
 
돌멩이로 내리쳤음에도 유리가 깨지지 않고 오히려 시끄러운 비상벨 소리에 놀라 도망친 용의자의 이동경로를 일주일간 끈질기게 추적하여 용의자가 경기도 ○○시의 모텔에 들어가고 모텔비를 카드로 결제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용의자는 1명이 아닌 4명이었고, 이들은 금은방을 털자고 공모를 하고 계획을 짰으며 사전에 털기 쉬운 금은방을 물색하였고, 행 행위를 할 때에는 주변에서 망까지 본 이들은... 이번에는 실패했지만 다음에는 실수 없이 금은방을 털겠다며 또 다른 계획을 짜고 있었습니다. 1명에 의한 단독범행이 계속된 수사에 의해 4인조 금은방털이 사건으로 규모가 커지게 된 겁니다.


자 이제는 모텔에서 쓴 카드가 누구 것인지를 밝혀내고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일망타진을 하면 되는데, 정작 문제는 그때까지도 금은방 사장님의 피해 진술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건에 있어서 피해 진술은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얼마나 중요하냐면... 범인이 자백을 하고 범행 증거가 CCTV에 전부 녹화되어 있으며 모두가 그 용의자가 범인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더라도... 피해자의 진술이 없으면 검사는 범인을 기소를 할 수가 없으며, 판사는 유죄 판결을 내릴 수 없습니다.

신속히 수사에 착수하여 연속된 추적으로 또 다른 범행을 모의 중인 범인들의 바로  앞까지 다다랐지만 정작 범인들을 잡더라도 법적 처벌을 못하게 될 상황에 직면하게  겁니다.

이 사건은 제가 선배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사를 진행하였기 때문에, 용의자들을 검거하기 전에 저는 어떡해서든 금은방 사장님을 설득하여 피해 진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경찰을 불신하시어 신고를 하지 않겠다던 금은방 사장님에게 불안한 마음을 안고 전화를 걸었습니다. "사장님, 김형사입니다. 가게에 계시죠. 제가 좀 찾아뵙고 할 얘기가 있어서요"라고 했더니, 오히려 사장님께서는 저에게 경찰서를 아가려던 참이었다고 하셨습니다.

사장님께서는 경비업체에서 작지만 흠짐이 난 유리창에 대해서 피해를 보상해 주겠다고 연락이 왔는데,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경찰에 사건이 접수된 '확인서'를 경비업체에 제출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적극적으로 찾아와 수사를 해주겠다는 경찰들을 못 믿겠다고 내쫓듯이 돌려보낸 터라... 이제 와서 다시 신고 접수를 해달라고 하기가 민망하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사건사실확인서'를 출력해서 금은방에 찾아갔습니다. 확인서를 사장님에게 드리면서 이미 사건을 접수해서 수사 중이니 그런 걱정은 하실 필요 없다고 하면서, 금은방에서 사장님과 커피 한잔을 마시면 예전에 있었던 사건과 이번 사건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사장님의 자필 진술서를 받아 금은방을 나올 수 있었습니다.

늦게나마 피해 진술이 확보되었고, 이를 근거로 신청한 압수수색영장과 체포영장이 모두 발부되어 며칠 후에 범인들을 모두 검거하여 일망타진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털려고 계획한 다음 범행 대상인 금은방은 다행히 피해를 예방할 수가 있었습니다.

 

 

현장수사 모습



사건 수사를 마무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장님에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사장님께서는 범인들이 선임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합의를 봐달라는 전화가 왔는데 합의를 봐주어도 되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피해 변상을 받으시면 합의를 해 주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답해 드렸습니다.

시간이 흘러 관내를 순찰하던 중에 사장님의 금은방에 들렸습니다. 사장님께서는 미소로 커피를 한잔 타 주시면서 바쁘더라도 자주 좀 놀러 오라고 하셨습니다.

사장님께서는 5년 전 어느 날 갑자기 금은방이 털려  손해를 입으면서 당시에 힘든 시기를 격었었고 결국에는 그 범인을 잡지 못했지만,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경비업체와 범인들에게 받은 금전적 보상은 불과 200만 원 남짓이었지만, 관내의 주민을 위해 범인을 잡겠다며 열심히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여준 저희 수사팀을 보면서 5년 전의 울분과 슬픔을 금이나마 잊을 수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국민에게 사랑받는 경찰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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