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준형 형사 Jan 31. 2021

피의자와 아들

22살 파출소 순경으로 시작하여 41살 강력형사의 이야기...


피의자와 아들

10년 전 형사팀에서 근무했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형사팀은 파출소와 지구대에서 들어오는 여러 사건을 처리하는 부서로 죄종 중에서는 폭행 사건이 가장 많습니다. 경찰서의 형사팀은 사건의 피해자나 피의자가 파출소에서 순찰차를 타고 경찰서에 도착하여 형사당직실로 신병이 인계되면 이들의 조사를 하고 사건의 수사를 마무리하는 수사팀입니다.
 

 그날은 불타는 금요일로 사건이 가장 많은 바쁜 날이었는데, 당시 아내는 임신 중으로 만삭이었습니다.

아내가 저녁때쯤 배가 아프다고 하여 일단 근처에 계신 어머님에게 아내에게 빨리 가보시라고 전화를 하고 나서, 팀장님에게 아내의 출산으로 조퇴를 해야겠다고 얘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4~5건의 사건이 한꺼번에 밀려들어왔습니다.

그날은 엄청 바쁜 날로 팀원들이 잠시 눈 부칠 시간도 없이 24시간을 꼬박 밤을 새워야 하는 날이었는데, 팀장님께서는 들어온 사건은 신경 쓰지 말고 병원에 빨리 가 보라고 하셨지만, 제가 1건만 처리하고 가겠다고 하여 그중 가장 경미한 폭행 사건 1건을 받았습니다.
  

신속히 피해자 조사를 끝내고 술 거나하게 취하신 피의자이신 중년의 어르신의 조사를 시작하려는데, 어르신은 피해자분을 때리셨냐는 제 질문에 'X새야~, X놈아~'하시며 때린 적도 없는데 경찰들이 자신을 강제로 순찰차에 태워 경찰서로 끌고 왔다면서 욕만을 하셨습니다.

조사가 길어질 것이 예상되었고 조금이라도 빨리 조사를 마치고 가보려고 하던 저는 병원에 조금은 늦게 가게 될 것을 예감하였습니다.

제 질문을 듣지도 않는 어르신에게 저는 계속 추궁을 하고, 어르신은 저에게 계속 욕만을 하시면서 1시간이 흐를 때쯤에 어머님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았더니, 며느리가 지금 얘 낳는데 왜 빨리 안 오냐며 역정을 내셨습니다.
  

어머님과의 전화를 끊고 다시 조사를 시작하려는데, 어르신은 두 손으로 상을 집으시고는 모니터와 프린터 사이로 얼굴을 제 쪽으로 살며시 내미시며 "내가 그 사람 때렸네, 사인하고 손도장 찍을 테니 와이프한테 빨리 가보게"라고 하셨습니다.

어머님과의 전화통화를 엿듣고 그러시는 것 같아서 저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면서 퉁명스러운 말투로 "인정하시면 벌금 나와요"라고 하였더니, 어르신은 얼굴을 조금 더 제 쪽으로 내미시며 "어흠~ 때렸으니 벌금 나오겠지"하셨고 저는 서둘러 조사를 마치고 아내가 있는 병원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조사가 거의 끝나고 어르신은 제가 출력한 조서를 받으시고는, 어르신께서는 제가 준 조서를 읽지도 안으셨으면서 다 읽었다 거짓말을 하시고는 정말... 정말 아주 신속하게 조서 맨 끝의 '더 할 말이 있나요'라는 문항에 자필로,


'내 손주도 1살이네, 득남하시게'라고 쓰셨습니다.



아들과 함께






국민에게 사랑받는 경찰을 꿈꾸다^^

이전 14화 "이번이 두 번째예요, 신고해도 잡지도 못하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