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TV 한 대쯤은 당연한 시대이지만,
한때는 텔레비전이 있는 집이 동네에서 손꼽힐 정도였다.
텔레비전이 흔하지 않던 시절,
그것은 단순한 전자제품이 아니라
이웃과 친구, 가족이 모이는 중심지였다.
텔레비전이 있는 친구네 집은 아이들의 동네 명소였다.
"오늘 마징가 Z 하지?"
"그래, 우리 집으로 와!"
텔레비전이 있는 친구네 집은
자연스럽게 동네 아이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방 안에는 삼삼오오 모여 앉은 친구들이 가득했다.
"야야야, 조용히 해! 이제 로켓 펀치 나올 거야!"
그 순간엔 모두 숨을 죽이며 화면을 응시했고, 모두는 같은 세계 속에 있었다.
아이들뿐만이 아니었다.
어른들에게도 TV는 동네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장소였다.
권투 경기, 야구 중계, 대통령 연설 같은 중요한 방송이 있는 날이면 TV가 있는 집으로 동네 사람들이 모였다.
그렇게 텔레비전 앞에는 아저씨들이 둘러앉아 담배 연기를 피워 올리며 선수의 펀치에 맞춰 몸을 들썩이며 응원했고 KO 순간엔,
"이겼다아아!!!"
집 안이 떠나가라 환호가 터졌다.
한 집에 텔레비전은 오직 한 대.
그렇다면 누구의 것이었을까?
대부분 어른들의 것이었다.
뉴스 시간이 되면 "이제 뉴스 시작하니까 만화는 그만!"이라는 말과 함께 TV 채널은 강제 변경,
아이들은 풀이 죽어 방으로 들어가야 했고, 가끔 어머니가 드라마를 보고 싶다며 채널을 돌리면
아버지와의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특히 할머니는 ‘전원일기’를 꼭 챙겨 보셨다.
"김 회장 나오는 거 언제 하지?"
이 한마디면 TV는 자동으로 전원일기로 고정됐다.
그 시절,
TV가 있는 집에 가는 것은 마치 외출하는 것처럼 신나는 일이었다.
아이들은 친구 집에,
어른들은 TV가 있는 이웃집에 모여
화면 속 세계를 함께 경험했다.
그리고 가끔,
TV를 너무 오래 보다가 저녁때가 되면,
"이제 그만 보고 집에 가!"
라는 말을 듣고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서야 했다.
TV가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동네를 하나로 이어주던 ‘공동체의 중심’이었던 시절이었다.
"밥 먹으면서 TV 보면?!"
하지만 TV에서 만화가 나오면 밥숟가락을 든 채로 화면에 넋이 나가곤 했다.
그러면 어머니의 경고가 날아왔다.
"TV 끈다!"
그 순간만큼은 숟가락이 번개처럼 입으로 향했다.
밥이 입에 들어가는지 맛을 느끼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TV가 꺼지지 않는 것.
지금은 선명한 화면이 당연하지만, 그때는 TV 외부 안테나를 돌려 방향을 잡아야 했다.
화면이 흐려지고 지지직거리면 누군가 밖으로 나가
안테나를 이리저리 돌려야 했고, 집 안에서는
"거기! 멈춰!" "아니, 다시 오른쪽!"
하고 소리쳤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TV 화면이 지지직거릴 때도 많았다.
그럴 땐 온 가족이 안테나 조정을 위한 긴급 작전에 돌입했다.
그 시절 TV는 흑백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느 집에 ‘컬러 TV’가 들어왔다는 소문이 퍼졌다.
하늘은 파랗고, 초록색 들판이 펼쳐지고, 만화 캐릭터들이 색깔 옷을 입고 있었다.
흑백 화면만 보던 눈에 컬러 화면은 마치 ‘새로운 세상’이었다.
지금은 각자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고, 각자의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그때는 TV가 있는 곳에 사람이 모이고,
같이 보고, 같은 감정을 공유하던 시절이었다.
TV는 단순한 전자기기가 아니라 온 가족, 온 동네가 함께하는 ‘공동체의 중심’이었다.
친구 집에 모여 만화를 보던 시간, 어른들이 함께 권투 경기를 보며 응원하던 순간, 컬러 TV를 처음 보고 감탄했던 날, 한 대의 TV를 두고 벌어졌던 치열한 채널 전쟁...
이제는 더 이상 TV를 보러 친구 집에 가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스포츠 경기, 국가대항전, 월드컵 같은 순간이면 함께 모여 같은 화면을 바라본다.
방식은 변했지만, "함께 본다"는 본질은 그대로 남아 있다.
이제는 가족이 함께 TV를 보는 일도 줄어들었다.
각자 핸드폰을 보면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시대다.
하지만 가끔은 예전처럼 함께 TV를 보며, 같이 웃고, 같은 순간을 공유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때처럼, TV가 우리를 이어주는 순간을 다시 만들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