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

by 일야 OneGolf

퇴직 후 전원생활을 하던 A 씨는 자신이 생각하던 회사의 경력직 직원 모집 기사를 보게 되었고, 망설임 끝에 지원하였다.


며칠 후 면접장에 도착하자 안내 직원의 인도를 받아 한 회의실에서 대기하게 되었다. 그곳에는 이번에 응시한 10여 명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안내 직원은 사전 안내를 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회사에 긴급한 일이 생겨 면접 시작이 1시간가량 늦춰졌다고 양해를 구했다.


회의실에는 총 13명이 있었다. 30대로 보이는 이도 있었고 60대에 가까워 보이는 이도 있었다. 대부분은 스마트폰을 꺼내 무언가를 보고 있었고, 한두 명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회의실 안을 천천히 둘러보던 A 씨의 눈에 한켠에 널브러져 있는 잡지와 회사 안내 자료들이 들어왔다. 그는 별 생각 없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그냥 두자니 어수선해 보였다. 잡지는 잡지대로, 회사 관련 자료는 따로 나누어 테이블 위에 정돈했다.
정리를 마치고 의자에 앉으려는데 책상 위에 오랜 먼지가 쌓여 있었다. 아마도 이 회의실은 자주 사용되지 않는 곳인 듯했다. 쌓인 먼지의 서걱거림이 싫었던 그는 화장실로 가 종이 핸드타월 몇 장을 뜯어 물기를 묻힌 뒤 테이블을 닦았다.


그 사이 안내 직원이 다시 나타나 모두를 면접장으로 이동시켰다.


면접장은 넓은 빈 강의실이었다. 그곳에는 면접위원 10명과 그 외 몇 명의 관계자가 더 자리하고 있었다. 면접위원을 제외한 지원자 전원에게는 유리창을 닦는 과제가 주어졌다.


면접위원장은 말했다.


“오늘 면접은 유리 닦기입니다. 아무 유리나 하나를 선택해 닦으시면 됩니다. 다 닦았다고 판단되시면 마치고 나가시면 됩니다. 시간제한은 없습니다. 오늘 면접에 참가해 주셔서 회사를 대표해 감사드립니다. 복귀하실 때는 문 앞에서 소정의 면접비를 수령하시기 바랍니다. 시작하셔도 좋습니다.”


설명이 끝나자 실내에 있던 모두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사람들은 하나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로 눈치를 보느라 선뜻 마무리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맨 뒤에서 불만 가득한 표정이던 한 지원자가 천을 툭툭 털며 자리를 떠났고, 그를 신호로 많은 이들이 서둘러 정리하고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유리창 닦기가 시작된 지 1시간 정도가 지나자 창가에는 A 씨 혼자만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좀처럼 끝낼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유난히 열심히 닦는 것도 아니었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한 곳을 잠깐 닦고, 다시 팔짱을 낀 채 유리를 응시했다.


해가 뉘엿해질 무렵, 면접위원 중 A 씨와 동년배로 보이는 한 위원이 다가와 물었다.


“아직 한참 남으셨겠죠?”


“네.. 3시간 정도는 더 걸릴 것 같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계속하십시오.”


그렇게 A 씨의 유리창 닦기는 해가 지고 달이 뜬 밤 9시가 되어서야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그날의 면접도 그렇게 끝이 났다.


며칠 후, A 씨는 회사 인사담당 임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축하드립니다. 합격입니다. 일정 조율 후 계약서를 작성하시면 됩니다.”


“좋은 소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한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말씀하십시오.”


“제가 왜 합격한 것입니까? 분명 면접일에 오셨던 분들은 저보다 훨씬 젊고 능력도 뛰어나 보였습니다.”


인사담당자는 웃으며 말했다.


“이 질문을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대부분은 왜 불합격했는지를 묻습니다.”


“제가 왜 합격했는지를 알아야 회사가 제 어떤 면을 필요로 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고, 그래야 저도 그 부분을 더 노력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A 씨는 한 가지 이야기를 꺼냈다.


영화배우가 꿈이었던 무명 여배우 K 씨는 오디션 준비를 위한 돈이 넉넉하지 않았다. 평소의 허름하고 푸석한 긴 생머리 차림 그대로 오디션에 참가했다. 감독은 그런 그녀의 모습이 자신이 원하던 주인공 캐릭터와 너무도 잘 맞는다며 그 자리에서 바로 주인공으로 낙점하고 계약했다.
거액의 계약금을 받은 K 씨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이 싫어 미용실로 향해 푸석했던 긴 생머리를 싹둑 잘라냈고, 첫 촬영 날 발랄한 단발머리의 화려한 신예 영화배우 모습으로 현장에 나타났다.


이 이야기를 들은 인사담당자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A 씨에게 물었다.


“유리창을 왜 그렇게 오랫동안 닦으셨습니까?”


A 씨는 차분히 답했다.


“회사에서는 왜 유리를 닦는지, 어느 수준으로 닦을지, 무엇을 기준으로 삼을지 아무 설명이 없었습니다. 그저 닦으라고만 했습니다. 저는 유리를 닦는 목적과 목표 수준, 그리고 방법을 고민해야 했습니다. 낮에는 깨끗해 보여도 노을이 지거나 밤에 조명이 비추면 또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인사담당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도 그렇게 보았습니다. 그래서 A 씨를 발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소회의실에서 다른 분들이 스마트폰을 보거나 잡담을 하는 동안, A 씨는 주변을 정리하셨지요. 그 모습 역시 중요한 판단 요소였습니다.”


A 씨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말했다.


“회사 결정에 감사드립니다. 다만 계약에 앞서 한 가지 약속을 받고 싶습니다. 그게 가능하다면 계약하겠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업무를 추진하실 때 최소한 그 업무의 목적은 명확히 제시해 주십시오. 그렇게 되면 저도 정확히 판단하고 책임질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인사담당자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업무의 목적을 먼저 묻는 지원자,
지시의 이유를 고민하는 사람.


그는 그제야 왜 A 씨가 마지막까지 창 앞에 서 있었는지,
왜 낮과 노을과 밤까지 기다렸는지를 분명히 이해하게 되었다.


회사는 일을 시키는 곳이지만,
일의 의미를 설명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그 회사에서는 업무를 지시하기 전에 한 가지를 먼저 공유하기 시작했다.


“왜 이 일을 하는가.”


목적이 분명해진 순간,
일은 비로소 ‘노동’ 보다 ‘책임’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