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도 0˚] 그때 너는 사진에 찍혔다

1996년 이후, 어느 날의 사진.

by 들순



폰이 없었을 때, 아빠는 너의 사진을 찍기 위해 필름카메라를 들었다. 시간이 흘러 필름은 디지털카메라가 되었고, 디카는 폰이 되었다. 그동안 사진을 보관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너의 아빠는 가족 여행을 다녀오면 꼭 사진관에 필름카메라를 맡겼다. 잘 못 찍어 까맣게 나오거나, 흔들리고 이상한 사진도 모두 인화하여 두둑해진 종이봉투를 집으로 가져왔다. 엄마는 아빠가 가방에서 두꺼운 사진 봉투를 꺼내면 늘 "헤엑!" 하고 놀랐다. 니 아빠 못 말린다, 하면서, "잘 나온 사진만 뽑아야지 잔뜩 뽑아서 뭐 하려고!" 잔소리를 했다. 그러면 아빠는 "다 잘 나왔으니까 그렇지!" 했다.


그렇게 너의 아빠가 몇 십장, 많으면 백몇 장의 사진을 인화해 오면 우리의 역할은 '진짜' 잘 나온 사진을 골라 앨범에 붙이는 것이었다. 바닥에 사진들을 늘어놓고 무얼 고를까 고민할 때면, 이 날 그랬잖아, 저랬잖아, 너 표정 좀 봐, 하고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너는 그때의 기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사진 속 날이 너무 더웠든, 대기 줄이 길어 지루했든, 엄마가 원하는 걸 들어주지 않아 심통이 났든, 졸음이 몰려와서 잠투정이 들었든, 순간의 기분은 무용해졌다. 그 순간을 기억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만큼은 사르르 녹아내리는 기분, 너는 행복했다. 그렇게 날짜나 나름의 시간적 순서와 열을 맞춰 신중하게 고른 사진을 앨범에 붙였다. 남은 사진들은 못 나왔다고 버리지도 않았다. 종이봉투에 다시 넣어 보관했다.


그 앨범은 어디에 있지?


몇 년 전, 너는 방안에 침대 위치를 바꾸고 싶었다. 붙박이 책장 아래 서랍을 너무 오랫동안 열어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앞으로도 저 서랍을 열어볼 일이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저기에 뭐가 있었더라? 열어본 서랍에는 두껍고 큰 앨범 몇 권이 있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의 사진들이 쏟아져 나왔다. 무엇보다 더 놀라웠던 건, 늘 곁에 그대로라고 느껴졌던 엄마, 아빠가 너무도 젊은 청년의 모습으로 사진 속에 있는 것이었다. 이때 엄마, 아빠는 대체 몇 살이었지? 헤아려보면 이제는 너와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너는 그 사진을 보면서 떠오르는 장면들을 기억이라 부를 수 없다. 추억은 그렇게 너도 모르는 새 무르익는 것이었다.


그리고 너는 그 앨범을 다시 서랍에 넣었다. 침대의 위치를 바꿔 서랍을 막는 것을 선택했다. 땅에 묻지는 않았지만, 타임캡슐처럼 추억을 도로 봉인한 것이다. 한동안은 꺼내보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도로 까먹더라도 아무렇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그렇게 지나온 것들이 많이 생겼다.


너는 그렇게 지금의 네가 되었다. 소중하게 간직했고, 잊어버렸고, 다시 발견했고, 추억했고, 지나쳤다. 가끔 어쩌다 지금에 이르렀는지, 너는 생경해진다. 왜 엄마, 아빠가 늙으신 거지. 왜 나는 대책 없이 어른이 된 거지.


나는 얼마나, 깊어졌을까?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사진을 찍었다. 아빠가 찍어준 사진보다, 네가 찍은 사진이나 친구들이 찍어준 사진이 훨씬 많아졌다. 그 사진들은 봉인된 서랍장 속 앨범에 골라 붙여 보관하지 않는다. 언제든 꺼내볼 수 있는 USB에, 외장하드에, 마이박스나 클라우드, 또는 폰 갤러리에 있다. 하지만 부러 매일 들여다보지는 않는다. 그냥 오늘을 살뿐이다. 그런데 문득, 너는 네가 어쩌다 지금의 네가 되었는지 궁금해지곤 한다. 너는 너이면서도, 아무리 생각해도 왜 여기에 놓였는지 이해가 안 가는 밤이 찾아오곤 한다.


그래서 우리는 흔적을 꺼내어 보기로 했다. 부러 우리가 찍은 사진을 꺼내보기로 했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찍어 남기고 싶었는지, 보이지 않는 앨범 속에 봉인되어 있던 사진을 캐내어 이야기하려 한다. 거실 바닥에 늘어져 있던 사진들을 고르듯이. 그렇게 지나온 날을 골라 이 매거진에 붙이다 보면, 지금의 나라는 앨범이 완성될 것 같다.


'우리가 맺어온 방식들'이 보일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열매처럼 맺어진 너의 당도를 더 진하게, 달달하게 끌어올리는 것이다. 깊어지고 싶다.


대부분의 사진은 2010년 이후가 될 것 같다.

나는 그때의 너를 부르며, 글을 쓰기 시작한다.


너는 어떤 너였니?

왜 내가 되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