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어느 날의 사진
너는 유독 라디오를 좋아했다. 중학생 때부터 라디오를 들었다. 그때는 한철 좋아하고 말 아이돌이 라디오를 진행해서 좋아진 줄 알았다. 네가 좋아하던 아이돌이었던 슈퍼주니어는 멤버별로 각기 다른 시간대, 다른 방송사에서 라디오를 진행했다. 시간 많고 열정 과다였던 중학생은 7시에 김희철의 영스트리트, 10시에 슈퍼주니어의 키스더라디오, 12시에 신동, 김신영의 심심타파를 들었다. 각각 2시간씩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었기에, 사실상 너는 저녁 시간을 모두 거실의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다.
부모님의 호통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저녁밥을 먹는 시간 빼고는 라디오를 듣겠다고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으니 말이다. 게임을 하는 것보다는 나았을까? 부모님이 봤을 때는 그거나 그거나... 중독, 혹은 일탈로 보였을 것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심한 것 같은 날이 있었으나, 그때 너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답답한 학교, 그리 원만하지 않았던 사춘기 교우관계, 엄한 부모님으로 구성된 환경 속에서, 너는 외로웠다.
외로운 사람에게 라디오란 유용하다. 너와 비슷한 사람들이 사연을 보냈고, 디제이와 소통했고, 음악으로 위로받았다. 운이 좋으면 너의 사연이 읽히기도 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전해주던 디제이가 너의 이름을 불렀을 때, 너는 살아있는 것 같았다. 너의 이야기가 들렸으므로, 그리고 내일도 디제이와 그 시간, 그 장소에서 만날 수 있으므로 세상이 지속됐다. 라디오는 고립되어 있던 너에게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쌍방향적 매체였다.
너는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라디오를 들었다. 야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잘 준비를 하고 침대에 누워 12시까지 라디오를 듣는 것이 낙이었다. 그때 듣던 라디오는 <성시경의 음악도시>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슈퍼주니어와 성시경을 좋아한다. 어언 20년째 팬이다. 이제 그들은 라디오를 진행하지 않는다. 가끔 친구들이 묻는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연예인을 오래 좋아해?"
현실적인 이유로는, 그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지금까지 꾸준한 인기를 유지하며 성실하게 활동을 해왔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이유는, 그들이 그 시절 라디오를 진행했기 때문이라고 하고 싶다. 지금의 나는 그들에게 사춘기를 빚졌다. 그때의 네가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라디오는 감성의 기틀을 세워주었다.
지금은 라디오를 자주 듣지는 못하지만, 라디오 DJ를 오래 맡고 있는 연예인들을 보면 무작정 응원하고 싶어진다. 내게는 '라디오의 성실함과 내밀함을 믿는 사람들은 선하다'는 편견이 있다.
지금 라디오는 그때보다 훨씬 영상화되고 있는 것 같다. 요새는 실시간으로 청취하는 사람보다 유튜브를 통해 보이는 라디오 영상을 보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라디오가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자는 곧 사라질 매체라고도 한다. 하지만 책이 지속되듯이, 라디오도 다양화될지라도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전히 라디오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많다.
너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서 라디오를 들었다. 이후에는 스마트폰 어플을 통해 줄 이어폰을 끼고 들었다. 지금은 유튜브로 라디오를 본다. 더 이전에는 주파수를 통해 연결되던 시대도 있었다. 그때는 사연을 편지나 엽서로 보냈다. 감성은 그렇게 변해간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연결을 원한다는 것. 이어짐을 갈망한다는 것이 아닐까.
소리를 통해 연결되었다는 느낌.
그것이 주는 큰 위로를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