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5일
2013년의 어느 이른 봄날, 저녁 5시 무렵. 세 칸짜리 작은 지방 열차가 건조한 기계음을 짧게 뱉고서 생떼띠엔느(St. Etienne)를 떠나갔다. 이 열차를 기다리느라 서먹하게 세 시간을 서성이며 보낸 낯선 도시의 하늘은 온통 흐렸다. 열차 문가에 간이 의자를 펴고 앉은 내 얼굴에도 어두운 구름이 금방이라도 소나기를 쏟아낼 듯 드리웠다.
이른 아침, 나를 태우고 니스(Nice)를 떠난 고속열차는 리옹(Lyon)에 약속된 시간보다 늦게 도착했다. 겨우 11분 연착이었지만 내가 갈아탔어야 할 열차는 이미 3분 전에 떠나고 없었다. 그렇게 르퓌(Le Puy-en-Velay)로 바로 가는 마지막 직행열차를 놓치고 잠시 승강장에 집 잃은 사람처럼 서 있다가 철도청 사무실을 찾아갔다.
"이 기차가 연착되어서 이 기차를 놓쳤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사무실을 찾는 동안 머릿속으로 영작을 하고 되뇌며 온 말과 함께 표 두 장을 직원에게 번갈아 보였다. 그는 쓸모가 없어진 르퓌행 기차표에 무언가를 적더니 돌려주었는데, 거기엔 다음 열차 시간과 갈아타야 할 열차 시간이 적혀 있었다. 처음 들어보는 낯선 도시에서 두 번째 줄에 쓰인 시간에 열차를 갈아타야 한다고도 말했다. 이렇게 볼펜으로 쓴 글씨가 승차권으로서 효력이 있을까 갸우뚱거리며 다시 필기체로 흘려 쓴 그 숫자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13h 24 - 14h 10
17h 11 - 18h 55
알아보기 힘들어 한 자씩 곱씹어 본 숫자들의 모양이 뒤늦게 이해되었다. 그건 겨우 11분 때문에 2시간이면 닿을 수 있던 곳을 7시간을 들여서 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일분일초의 위력을 실감하며 허탈하게 고개를 돌려 당장 한 시간을 보내야 할 로비를 둘러보았다. 역사를 꽉 메운 분주한 인파의 웅성거림은 아무래도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구시가지가 보이는 강가에 눈이라도 한 번 맞추고 오고 싶어도 일분일초의 위력을 맛본 뒤 모험은 마음먹기 힘들었다. 여행의 작은 틈새에도 낭만을 끼워 넣고 싶은 욕심은 앉았던 자리에 내려놓고, 쨍하게 형광등을 밝힌 편의점에 가서 딸기 맛 젤리 한 봉지를 샀다.
젤리 봉지를 부스럭거리며, 서명을 받는다는 핑계로 내 주머니를 노리는 어설픈 집시 소녀를 피해 다니며, 가까스로 시간을 보내고 생떼띠엔느로 향하는 내 기분의 기상 상태는 말하자면 '흐림'이었다. 50여 분 만에 도착한 승강장의 담장 너머로 본 생떼띠엔느의 첫인상까지 괜스레 쓸쓸해 보였다. 이 기상 상태에 먹구름마저 끼기 전에 그늘진 기분에서 도망치려고 기차역 바깥으로 산책을 나가보았지만 바람이 너무 스산해 몇 걸음 만에 돌아와야 했다. 결국 기차역 빵집에 앉아 일기장에 꾹꾹 눌러 이 황망한 시간을 기록하며 다음 열차를 기다렸다. 아침에 니스역으로 달려가다가 넘어져 부딪힌 한쪽 무릎이 뒤늦게 욱신거렸다. 기어코 '흐림'에 먹구름마저 끼기 시작했다.
세 시간 뒤 생떼띠엔느를 떠나는 열차에서 45일 치 미련을 눌러 싼 커다란 캐리어를 끌어안고 머릿속에 뭉게뭉게 몰려오는 고질적인 먹구름을 쫓으려 기분을 휘저어 보았다.
오 년 만에 다시 떠나온 두 번째 배낭여행은 처음과 달리 혼자였다. 나이의 앞자리도 바뀌었다. 국경을 넘어 새로운 세계를 헤매는 자유에 처음 눈을 뜬 스물다섯의 나는 기차에서 쏜살같이 흘러가는 창밖을 바라보며 여행에서 돌아간 후의 미래를 그려보곤 했다. 그 풍경 위에 그려지는 미래는 빛나고 거침이 없었다. 더 크고 더 넓게, 저 차창 밖 아직 닿아보지 못한 세계까지 뻗어 나갔다. 그때의 난 잠들지 않고도 꿈을 꾸었다.
서른의 나도 여전히 기차에 오르면 간이 의자에 앉는 불편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창가를 좋아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창밖에 미래를 그리는 대신, 풍경 위로 비치는 현실의 나를 마주 보게 된 것이다. 뾰족하게 깨진 기대들을 억지로 껴안고 있던 자국을 바로 보는 일. 그때 겹쳐지는 이국의 풍경들은 그 자국을 감싸 안고서 무언의 위로를 건네 왔다. 그런 여행의 순간들을, 서른의 나는 정말로 사랑했다.
하지만 르퓌로 향하던 그 시간, 머릿속 먹구름에 온통 까맣게 가리어진 창문에는 자국투성이의 나만 또렷이 떠올랐다. 그 너머를 보려 애를 쓸수록 우울에 발을 담그는 내 눈동자만 더 자세히 비쳐 보일 뿐이었다. 일상에서부터 끈질기게 따라온 먹구름은 이렇듯 여행의 사소한 균열도 놓치지 않고 스며들어 자책, 단념, 걱정... 그런 것들이 엉켜 있는 내 안의 깊고 좁은 곳으로 파고들었다.
이 그늘에서 도망가길 포기하고 초라하게 작아진 나를 마주 보는 동안 열차는 오베르뉴의 산맥을 돌아 강가를 스치며, 어느 날 사진 한 장에 이끌려 닿길 원한 그곳으로 향해 갔다. 너무 맹목적이지 않은 속도로, 그러나 흔들림 없이, 눈치채지 못할 만큼 서서히.
나를 그 그늘에서 데리고 나왔다.
간이역마다 멈춰 선 열차는 승객들을 하나둘 내려놓았고, 사람들은 그들에게 일상인 저녁 풍경 속으로 걸어 나갔다. 그때 열린 문으로 불어오는 공기는 당장 오늘 잠자리가 걱정되는 여행자의 불안을 안온한 빛깔로 물들였다. 마지막 종점에서 문이 열리면 당신도 그저 일상처럼 담담히 걸어 나가 쉴 곳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다독이듯이.
창밖은 옅은 저녁 하늘이 점차 겹쳐지며 짙푸른 밤으로 깊어가고, 산기슭과 강가에 띄엄띄엄 얹어진 작은 집 창문에는 노란 불빛이 드문드문 켜졌다. 그림자로 물들어가는 둥근 산세와 느리게 흐르는 강의 물결에 달빛이 흰 테두리를 그렸다. 뿌옇게 꽉 메인 마음에도 하나둘 불이 켜지고 머리 위를 따라다니던 먹구름도 멋쩍게 흩어졌다. 우울에 발을 담그던 두 눈도 맑게 개어 저물어 가는 하루를 투명하게 바라보았다.
다정하고 둥글고 고요한 것들이 밤의 색을 입어 정성스럽게 하루를 완성해 가는 광경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하려고 나를 기다려 온 것처럼, 르퓌행 완행열차는 다정하고 둥글고 고요한 풍경을 찬찬히 스쳐 갔다.
밤의 색을 입는 다정하고 둥글고 고요한 르퓌 가는 길
곧 종착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과 함께 열차는 마지막 산모퉁이를 돌았다. 멀리 커다란 바위 위에 불을 밝힌 붉은 성모자상과 대성당 첨탑이 신기루처럼 드러났다가 빽빽한 나무들 사이로 이내 모습을 감췄다. 오래 편지만 주고받다가 드디어 만나기로 한 날, 저 멀리 약속 장소에 앉아 내가 오고 있는지 목을 길게 빼고 길목을 바라보고 있는 누군가를 발견한 것처럼 마음이 뛰었다. 어서 손을 흔들며 한달음에 가고 싶었다. 건널목에서 신호등이 파란 불로 바뀌길 발을 동동거리며 기다리는 마음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이름도 제대로 읽기 어려운 프랑스 중남부의 작은 산간 마을에 마음으로 편지를 띄우기 시작한 건 여행을 떠나오기 여덟 달쯤 전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같은 자리를 맴맴 돌고 있다는 생각이 자주 마음을 괴롭히던 그즈음,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2013년 2월 13일에 스페인 마드리드로 날아가는 매직 카펫을 빠듯한 주머니를 털어 샀다. 그리고 아직 멀기만 한 숫자와 목적지가 적힌 그것을 터키 항공 e 티켓 모양으로 고이 접어 이메일 계정에 넣어두고 수시로 꺼내어 보았다.
그 숫자가 현실이 되기까지 맴맴 돌던 자리에 유럽 지도를 그려놓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해 낯설고 신비한 지명들과 다시 가고 싶어 가끔 꿈에서도 찾아가던 그리운 자리들에 점을 찍고 선을 이었다. 그 선은 마른 벽을 타고 오르는 싱그러운 덩굴처럼 이베리아 반도를 한 바퀴 돌아 프랑스 프로방스와 니스를 지나서 파리로 길게 이어지다가 바다 건너 런던에서 끝을 맺었다. 마음은 이미 그 선 위에 줄지은 이름들을 걷고 있었다. 하지만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뛰는 자리를 따라 걷다가도 어딘가 커다란 공백을 뛰어넘은 것 같아 멈칫거렸다.
무언가 부족했다. 어딘가 영적인 갈증을 채워줄 이름이 한 군데쯤 필요했다. 오 년 전 짧게 찾았던 루르드도 다시 떠올려 봤지만, 저절로 끌린다기엔 천주교 신자로서 성지를 들러야 한다는 의무감이 앞섰다. 나는 성스러움보다는 고요하고 묵묵하게, 눈도 귀도 입도 마음도 쉬어갈 수 있는 말 없는 친구 같은 잠잠함이 그 공백을 채워주길 바랐다.
르퓌가 내게로 날아든 건 그즈음이다. 유명한 인터넷 여행 커뮤니티에 어느 여행자가 올려놓은 사진 한 장으로 지도 위 끊어진 선 앞에 멈칫거리던 내 앞에 초대장처럼.
사진 속 빛바랜 작은 성당은 화산 폭발로 솟아난 거대한 바위 꼭대기에 뿌리를 내리고 올곧게 자라서 햇살과 빗방울을 머금어 몸에 새긴 무구한 나무처럼 아름다웠다. 그 너머 부드럽게 물결치는 언덕엔 붉은 지붕들이 들꽃처럼 피어있었다.
르퓌앙블레이.
이 낯선 지명은 이토록 신비롭고 온화하게 공백에 저절로 녹아들었다. 이제야 비로소 잎이 무성한 덩굴에 꽃망울이 피는 것 같았다. 그 후로 인터넷에 많지 않은 정보와 후기들을 모아 위치와 짤막하게 기술된 역사를 익히고, 기차 편과 머물 곳을 찾아보았다. 그렇게 조각보를 모아 이을수록 그 작고 오래된 마을은 온기가 필요할 때 서랍에서 찾아 덮는 커다란 담요처럼 내 안에서 자라났다.
그로부터 여러 날이 지난 2013년의 어느 이른 봄날, 저녁 7시 무렵. 세 칸짜리 작은 지방 열차가 긴 한숨 같은 기계음을 뱉고서 종점에 멈춰 서고, 건널목에 파란불이 켜지듯 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