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의 곳에서 깨달은 우정
샬롯은 내가 스물다섯일 때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만난 친구다. 외향적이고 괄괄한 나와 달리 내향적이고 조용한 샬롯과는 잠시 스치는 인연일 거라 생각했지만 우리는 의외로 공통의 관심사가 많았다. 여행, 카페, 책, 영화 등 좋아하는 것이 비슷했고 그래서인지 함께 얘기할 수 있는 것이 끊이지가 않았다. 비록 제법 어른이 되어 만난 사이라 어려서 만난 친구만큼 막역하다 할 수는 없었지만, 어쩌면 그런 이유 덕에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서로를 존중하고 일정 거리를 지키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녀의 어머니가 최근에 돌아가셨다. 우리는 서로의 집에 가보거나 한 적이 없으므로 당연히 서로의 부모님을 뵌 적 또한 없었지만, 그 많은 시간을 카페에서 이야기하고 공유하면서 자연스레 들어왔던 그녀의 어머니는 마치 여러 번 실제로 뵌 것처럼 내게 생생했었다. 그러던 올해 가을 무렵, 샬롯의 어머니가 편찮으시다는 말을 들었다. 그 소식을 들은 것도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일이었고 놀라서 어쩔 줄을 몰랐었다. 그런데 얼마 전, 수술 후 완쾌하셨다고만 알고 있었던 샬롯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을 듣게 됐고, 내게 너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스키장을 갔다가 사우나를 하고 나오던 참이었다. 카톡을 열자 여러 개의 읽지 않은 카톡 중 단 한 사람 샬롯의 한마디 카톡이 내 눈에 꽂혔다. "듬지야 우리 엄마가 돌아가셨어". 어떤 보충 설명도 없이 단 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그 말은, 심장을 요동치게 했다. 바로 전화를 걸어 샬롯의 목소리를 듣고, 장례식장 위치를 받고, 내일 당장 장례식장에 가겠노라고 대답했지만, 그때부터 흘러나오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방금까지 스키장에서 남자친구와 즐거운 한때를 보냈는데, 샬롯이 겪었을 어제오늘의 충격과 슬픔을 도저히 짐작해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스키장에서 돌아오자마자 대전에 위치한 병원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샬롯의 이름이 LED 모니터의 '상주'란에 선명히 찍혀있었고, 낯선 까만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수척한 얼굴로 서있는 샬롯을 보는 순간, 다시 한번 눈물이 차올랐다. 사진과 이야기로만 짐작했던 샬롯의 아버지, 여동생과 남동생도 샬롯의 옆에 비통한 표정으로 서있었고, 이게 내가 그녀의 가족을 처음 뵙는 자리라는 게 너무 서글펐다.
스물아홉. 친구 어머니의 장례식에 가기에는 젊은 나이이고, 어머니를 여의기에는 더 젊은 나이이다. 그 사실 앞에 내가 친구로서 샬롯에게 어떤 위로를 줄 수 있을까, 과연 위로가 되어 줄 수는 있을까,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이미 너무 울어 탈진해버린 그녀는 오히려 덤덤한 모습이었는데, 사람이 모든 눈물을 단시간에 쏟아내면 저렇게 되는 걸까. 더 이상 나올 눈물도 없다는 듯 무표정한 샬롯은 오히려 조문객인 나를 챙겨주기 바빴다.
우리는 카페 아니면 음식점에서만 5년이 넘게 이야기해온, 다시 말해 어쩌면 굉장히 상투적인 만남만 이어온 관계였다. 서로의 집에서 잠을 자거나, 서로의 가족 또는 남자친구를 만나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우리의 레퍼토리였던 카페도 음식점도 아닌 장례식장이라는 낯선 곳에 처음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문득 샬롯과 내가 전혀 상투적인 사이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단순히 가볍게 알고 지내는 지인이 상을 당했다고 해서 이렇게 눈물이 흐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머리를 얻어맞은 듯 멍멍한 충격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샬롯 어머니의 조의 소식에 근 한 시간 가까이 눈물을 흘렸다. 이게 우정이 아니라면 뭘까. 그녀가 행복하면 기쁘고 그녀가 슬프면 나도 슬픈 것. 마치 내게 일어난 일처럼 어안이 벙벙하고 두렵고 슬퍼지는 이 감정. 일관적이고 경직된 줄로만 알았던 우리의 만남 뒤로 알게 모르게 넓고 깊은 우정이 형성되었던 모양이다.
너무 오래 붙잡고 있을 수 없어 샬롯과 인사를 하고 장례식장을 빠져나오면서, 커다란 상심이 나를 짓누르는 것 만 같았다. 차라리 내 일이라면 그 슬픔과 두려움의 정도를 알 수 있을 텐데. 내가 아닌 타인의 일이기에 그 정도를 감히 짐작할 수 없어 드는 상심이었다. 얼마나 힘들지, 얼마나 오랫동안 이 일로 슬플지 예측할 수가 없어서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이 심란했다.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으면서 드는 오지랖인 줄 알면서도.
이후 나는 샬롯에게 연락을 했지만 아직 마음을 추스르지 못한 샬롯에게서 "경황이 없지만 나중에 꼭 연락할게"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 그녀에게는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으므로 방해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게 맞는 거겠지. 때때로 어떤 이에 대한 감정은, 그가 기쁘고 행복할 때가 아니라 슬프고 힘든 상황일 때 확실해지는 것 같다. 모름지기 좋은 일보다는 힘든 일에 공감해주고픈 마음이 들 때, 상대에 대한 내 마음의 크기를 헤아릴 수 있게 된다.
아직도 하루에 한 번씩 샬롯에게 언제쯤 연락이 올지 궁금하다. 분명히 잘 추스르고 회복할 샬롯이지만 걱정을 멈출 수 없는 건, 내게 생각 이상으로 샬롯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인 모양이다.
+ '샬롯'이란 애칭은 제가 좋아하는 <섹스 앤 더시티>의 샬롯이라는 캐릭터와 제 친구가 너무 닮아서 붙인 저만의 애칭입니다. 그리고 샬롯은 제 예상대로 건강히 견뎌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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