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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면 꽃을 받기 힘들대

꽃 선물은 늘 좋아, 하지만 비싸.


1. 남편과 연애할 때의 이야기다. 남편이 겨울이면 매주 스노보드를 타러 강원도 스키장에 가는 바람에, 때때로 주말에 만나지 못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연애를 하고 있을 때니 얼마나 보고 싶었겠는가. 그가 스키장에서 내게 연락을 주기만을 기다리며 침대에 누워있고는 했었는데. 그러던 어느 주말, 여느 때처럼 인스타그램을 켜서 다른 사람들은 뭐하고 사나 염탐하던 중, 나는 한 피드를 보고 눈물을 찔끔 흘리고야 말았다. 그건 바로, 그 시간 남편과 함께 스노보드를 타고 있을 남편 친구의 애인이 올린 피드였다. 노오랗게 만발한 꽃다발이 찍힌 그 사진에는 이런 설명이 붙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꽃들로만♡ 」 누가 봐도 남편 친구가 애인에게 준 꽃이었다.


인스타그램의 폐해는 바로 이것이다. 내가 굉장히 쭈구리 같을 때에 꼭 화창한 누군가의 피드를 보게 된다는 것. 그리고 그 간극을 극대화시켜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든다는 것. 나 역시 똑같았다. 겨우 침대에 널브러져 남자친구의 연락이나 기다리고 있던 터라 서러움이 폭발해버렸고, 결국 나는 당시 남친이던 남편에게 전화해 징징거렸다. "OO이는 여자친구한테 꽃도 선물하고 그러는데, 자기는 스키장 가서 연락도 안되고 말이야"하는 끔찍한 비교성 멘트를 날려대면서.


2. 남자에게 꽃을 받는다는 건 왜 그리 기분 좋은 일이던지. 많은 선물들이 있어도, 며칠 안 가 시들시들해져 버릴 꽃 선물은 왠지 특별히 더 사랑받는 듯한 느낌을 들게 했다. 결혼 전의 내게도, 꽃은 당연히 그런 의미였었다.


3. 그러던 내가 결혼을 하고 난 뒤에는 꽃에 대한 욕심이 사라졌다. 꽃다발의 사악한 가격을 알기 때문이다. 남편이 어느 날 나를 기쁘게 한답시고 꽃다발을 사 오면, "와 예쁘다"라는 생각과 동시에 "얼마 줬을까 이 꽃"하며 계산기를 두드리게 되는 게 유부녀의 사고방식이었다. 부부는 생활로 이루어진 공동체이고, 공동의 자산을 불려 나가야 하고, 에... 또, 무용하고 예쁜 꽃다발도 좋지만은 그보단 실질적으로 쓸만한 물건들을 더 사랑하는 사이니까.


4. 어제는 남편의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놓고, 우리가 이렇게나 행복하게 살고 있음을 보여줄 생각에 설레어있었는데. 그보다 나를 설레게 한 건 남편의 친구가 선물로 들고 온 거대한 꽃다발이었다. 거의 내 상반신만 한 꽃다발을 그러안으며, 나는 오랜만에 유부녀가 아닌 여자로서 설레었다. 잊고 있었던 꽃이라는 선물의 특별한 의미가 퐁-퐁-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남편 친구는 "내가 이걸 사 온 이유가 있어"라며 꽃다발에 대해 설명했다. "결혼하면 꽃 선물을 받기 힘들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사 왔지" 주변의 결혼한 지인들을 통해 남편의 친구도 알고 있었던 거다. 결혼한 이들에게 꽃이 주는 매우 현실적인 의미를.



온 방을 화사히 물들이는 꽃. (사진출처:핀터레스트)


5. 아무튼 덕분에 나는 오랜만에 꽃다발을 받아 신이 났고, 물병에 꽃을 꽂아 거실장 위에 올려두었다. 아마도 내일모레부터 꽃은 시들시들 풀이 죽어갈 것이다. 진정 꽃은, 순간의 선물이다. 그래도 오늘과 내일, 꽃이 주는 환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아무래도 행복한 일이다.


6. 남편과 나는 전부터 남편 친구를 두고 "(저 녀석은) 매력이 뭔진 모르겠지만 여자가 많이 꼬인단 말이야...?"하고 장난스레 의문을 가졌었는데. 남편 친구가 대리를 불러 떠나고 난 후, 꽃다발을 정리하는 내 등 뒤로 남편이 던지는 말.


"(꽃도 팍팍 사서 안기고) 이러니까 여자 만나는 거야~"


맞다. 남편 친구는 동글동글하니 외모는 그저 그래도, 이런저런 센스와 재치로 늘 인기가 많다 들었다. 그래도 내 남자가 아니니 그게 대체 무슨 매력인지 몰랐었는데, 막상 내가 꽃다발을 받아보니 왠지 수긍이 되는 것만 같다. 섬세한 센스로 적재적소에 여자를 감동케 하는 남자는 결국에 사랑받는다는 걸. 그가 준 꽃은 또 얼마나 예뻤는지, 꽃 고르는 센스도 탁월했던 남편 친구. 인정한다 널, 매력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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