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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결국 엄마다

자식이 무엇을 보고 듣게 할 지는, 부모의 몫이란 걸.

언제나 당당한 래퍼, 카디비(Cardi B) │ 사진출처 : 핀터레스트


카디비(Cardi B). 그녀는 빌보드 차트에서 네 번이나 1위를 한, 미국의 성공한 흑인 여성 래퍼다. 작년에 발매된 그녀의 'WAP'라는 노래는, 참 여러 의미에서 핫했다. 우선, 엄청나게 야한 가사가 화제가 됐었다. 아니 야하다는 표현으론 약하다. 유교사상에 길들여진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거의 놀라 자빠질만한 수준으로 노골적이고, 외설적이고, 원색적인 가사의 노래였다. 자신의 이른바 '소중이(여성의 음부)'가 아주 대단하는 얘기로 꽉 채워진 5분의 노래는, 제목 'WAP'도 풀어 해석하면 'Wet Ass Pussy', 즉 '젖은 엉덩이 음부'라는 어마어마한 뜻이란다. 유튜브에는 그녀의 이 노래를 우리나라 말로 번역해놓은 영상들이 제법 여럿 돌아다니는데, 거기에 달린 수많은 한국인들의 댓글을 보면서 어찌나 웃었던지. 우리나라도 제법 성문화가 많이 개방되었다고 생각했건만, 미국의 넘사벽 성문화에 한국인들은 꽤나 컬처쇼크를 느낀 모양이다.


그런데 이 노래를 들은 사람들은 충격도 충격이지만 반응이 두 가지 양상으로 갈린다. 하나는 '매우 음탕하다', '저질스럽다'는 반응이고, 다른 하나는 너무도 의외지만 '멋지다'는 반응이었다. 나도 처음엔 너무 충격을 받은지라 "응? 어디가 멋져?" 싶었는데, 이 노래를 지지하는 대부분의 흑인, 히스패닉계 여성들은 전혀 다른 시각으로 노래를 해석하고 있었다. 유색인종 차별이 오늘날까지 끊이지 않는 미국 내에서, 흑인이자 여성인 래퍼가 보여주는 엄청난 파워 그리고 여성으로서의 당당한 섹스어필을 높이 사더라는 것이다. 그건 마치 미국에서 버락 오바마가 당선된 것만큼이나, 혹은 그 옛날 여성들이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하게 된 일만큼이나 그들에게 자부심을 주는 일이었던 것.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기린 같은 백인 여가수들 속에서 당당히 1등을 하는 카디비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흑인 남성의 전유물 같던 랩으로 여성 래퍼가 그것도 1위를 네 번이나 했다는 사실 또한 정말 대단한 일 아닌가. 게다가 대놓고 소중이를 자랑하는 가사도, 시간이 지날수록 야하다는 느낌은 퇴색되고 '맞아, 왜 여자는 음탕하면 안 돼?'라는 근본적 의문을 들게 했다. 자신들이 성관계한 여자들의 머릿수를 헤아리거나, 여자를 '따먹는'다고 표현할 정도로 남성들은 성 주도권을 쥐고 있고 또 그걸 가지고 누구도 음탕하다고 하지 않는데, 왜 여자는 여러 남자랑 자서도 안되고 소중이 자랑을 해서도 안되는가. 표현은 좀 다분히 외설적이다만, 카디비의 노래는 어쩌면, 남자들처럼 여자도 충분히 당당하게 자신의 섹슈얼을 뽐내고, 성 주도권을 쥘 수 있다고 얘기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카디비를 보며 여성들이 긍지와 자부심을 얻는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아무튼 일각의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언제나 파워 당당하게 자신의 섹슈얼과 힘을 과시하는 카디비에게서, 최근 의외의 모습을 발견한 일이 있었는데.


하도 카디비의 뮤직비디오를 본 탓일까, 얼마 전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내 피드에 올라온 하나의 영상이 있었다. 아마도 카디비가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촬영한 영상인 것 같은데, 자신의 노래 'WAP'를 틀어놓고 춤을 추려다가, 어린 딸이 들어오자 황급히 "NO NO NO..." 하며 노래를 꺼버리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매우 원색적인 가사로 꽉 채워진 그 노래를, 행여나 대여섯 살 남짓한 어린 딸이 들을세라 후다닥 꺼버리던 그 당황한 모습. 조금 놀라웠다. 천하의 카디비가!


이 영상을 두고 또 네티즌들은 갑론을박을 벌였더랬다. 그렇게 대놓고 야한 노래를 발매해놓고 왜 아이 앞에서는 못 트느냐 모순 아니냐, 하는 반응. 그리고 나처럼 '제 아무리 카디비라도 엄마는 엄마구나'하고 사랑스러워하거나 재밌어하는 반응. 노래든 영상이든 자신의 소신대로 반응하는 것이니 어떤 게 정답이라 할 수는 없을 터다. 하지만 어딜 가나 도를 지나쳐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는 법. "애 앞에서도 틀어봐라", "그 노래로 딸이 춤추게 해 봐라"하는 수위 높은 비난이 일부 생겨나자 카디비는 거기에 대고 이렇게 일갈했다. "나는 아이들을 위한 노래를 만드는 게 아니라 성인을 위한 노래를 만든다. 만약 아이들이 이 노래를 듣는다면 그건 이 노래를 듣게 한 부모의 잘못이다"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카디비는 할렘가 출신에 열아홉 살 때부터 스트리퍼로 일했던, 정말 밑바닥에서 올라온 스타다.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다 겪었을, 그래서 매우 거칠고 투박한 그녀지만, 배움의 깊이 따위와는 상관없이 그녀에게도 보편적인 모성애가 있었을 뿐 아닌가. 비록 "내 소중이는 핫해 핫해. 내가 널 따먹을 거야" 같은 노래를 부른대도, 제 아무리 그 노래로 백만장자가 된대도, 자신의 딸이 아직 성 가치관을 확립하기 전까지는 그 노래를 들을 수 없게 보호하는 게 엄마 본연의 의무라고 여겼을 뿐이다. 카디비도 가수이기 이전에 아주 지극한 모성애를 가진 엄마니까. 아무리 자신이 똥밭에 굴렀어도 자식에게만큼은 똥을 묻히고 싶지 않아 하는 존재, 엄마. 어쩌면 엄마라는 존재는, 태초부터 그렇게 세팅된 존재가 아닐는지.




래퍼 카디비와 그녀의 딸 컬쳐. (사진출처:핀터레스트)


카디비의 말대로, 자식이 무엇을 보고 들을지를 판단하고 결정하고 보호해주는 것이 부모 된 자의 의무일 테다. 그런 맥락으로 카디비의 어린 딸 '컬처'도, 아마도 성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청소년기를 지나서야 자신의 엄마가 부른 19금 노래들을 듣게 될 것이다. 물론 엄마 카디비의 충분한 설명과 가르침 하에. 그때가 되어 자신의 엄마가 바닥에서부터 힘들게 이뤄낸 성과들, 그리고 흑인과 여성을 대변하며 항상 그들의 자부심이 되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야하다 못해 기절초풍할 노랫말들 너머에 있는 래퍼 카디비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이 긴 두서없는 이야기를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엄마는, 결국 모두 엄마라는 이야기였다. 창녀든 스트리퍼든 노숙자든, 아이를 위하는 마음은 엄마라면 다 똑같다는 걸, 카디비의 짧은 영상을 통해 느꼈다.





2021 일상의짧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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