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들이 추천하는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
일을 관두었고, 그러므로 직장환경에서 받던 극도의 스트레스 그리고 직장동료로부터 받던 관계 스트레스도 내 일상에서 말끔히 제거됐다. 2021년은, 그렇게 나를 옥죄던 것들을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시작됐다. 그리고 운 좋게도 남편의 지원 속에, 내가 원하는 일만을 하며 1년을 보낼 수 있게 됐다.
이제 뭐부터 해야 할까.
일을 관뒀으니 갑자기 하루 12시간씩 글을 쓰면서 책 몇 권을 뚝딱 만들어내고 문학상을 수상하고 여기저기 사인회를 다니는 일은, 당연히 일어나지 않을 터. 조금 더 현실적으로 어떻게 하면 나의 정신건강을 해치지 않고 건설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그러려면 우선 썩어빠진 내 일상의 습관을 다시 세워야 할 것만 같다. 고쳐야 할 습관과, 새로 익힐 습관, 유지해도 될 습관을 나누어보도록 해야겠다.
우선, 고쳐야 될 습관들 리스트다.
1. 오후 2시 이후에 커피 마시지 않기 - 평소 심장이 빨리 뛰는 불안증세를 호소하면서도 커피를 자주 마셨던 건 오랜 내 습관 탓이다. 이제는 커피를 오후 늦게 마시면 밤에 잠이 잘 안 드는 증세까지 더해졌다. 아무래도 점점 몸이 카페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체질로 바뀌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유일무이하게 좋아하는 나의 기호식품 커피를 끊기란 영 매정하니, 오후 2시가 되기 전까지 딱 두 잔만 마시도록 하자. 그리고 그 이후에는 되도록 차를 마시도록 한다. (난이도 하)
2. 늦잠 자지 않기 - 평소 회사를 다닐 때에도 알람을 다섯 번씩 바꿔가며 잠에 집착을 했었다. 아마 평생 동안 가장 고치기 힘든 습관일 텐데, 늦잠을 자는 것만큼 하루를 망치는 게 또 있으랴. 출근할 데도 없으니 실컷 자야겠다는 생각은 금물, 하루를 효율적이고 유용하게 쓸 수 있도록 매일 정해진 시간 8시에 일어나기로 한다. (난이도 상)
3. 군것질 금지 -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풀어온 지 n년차. 아이스크림을 좋아해서 저녁을 먹고 꽤 자주 아이스크림을 먹어왔는데, 개그맨 서경석이 매일 밤 아이스크림을 먹고 엄청나게 살찐 그 기사 봤어 안 봤어? 티클 모아 태산이라고, 나도 매일 밤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100kg이 되는 수가 있다. 이제, 아이스크림은 끊기로 한다. 정해진 곡기 이외에는 탐하지 말지어다. (난이도 중)
새로 익힐 습관을 정해 본다. 이건 조금 더 방대하다.
1. 운동하기 - 성격상 무리한 운동은 작심삼일로 끝날 가능성이 99.9%이므로, 집 앞의 한 시간 코스의 공원을 슬렁슬렁 한 바퀴 돌고 오는 것으로 한다. 하기 싫은 운동이 아니라, 매일매일 그냥 머리를 식힌다는 느낌으로 공원을 걷겠다. (난이도 중)
2. 영양제 챙겨 먹기 - 영양제 통에서 영양제를 꺼내 물과 함께 삼키는 이 단순한 행위를 지금껏 왜 이리도 귀찮아했을까. 종합비타민, 여성 유산균, 일반 유산균, 마그네슘, 밀크씨슬. 모두 내 건강을 위한 친구들이다. 앞으로는 일어나자마자 주방의 영양제 앞으로 가, 겨우 1분도 걸리지 않을 이 행위를 군말 없이 실시하기로 한다. (의외로 난이도 상)
3. 일기 쓰기 - 한 때는 일기를 매일같이 썼었다. 그 날의 감정을 정리하고 더 나은 내일을 도모하는데 이마만큼 효과적이고 훌륭한 일은 없었는데... 어느샌가부터 일기와 멀어졌다. 당연히 피드백도 없고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더라. 내 하루의 일과와 감정을 기록하는 시간을 하루 딱 10분만 가져보기로 한다. 어려운 일 아니잖아! (난이도 하)
4. 매주 월요일 물걸레로 청소하기 - 평소 더러운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규칙적으로 청소를 하는 유형도 아니었다. 몰아서 하지 말고 매주 월요일, 이건 그냥 무조건 매주 해야 하는 일이라 여기고 집 청소를 하자. 청소만큼 개운한 일도 없다. 백수가 되었으니 내 주요 생활 반경은 집이 될 터, 내가 발 닿는 공간을 깨끗하게 유지하면 정말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한 주를 여는 힘찬 주문으로, 월요일마다 청소를 해보자. (난이도 중)
5. 스트레칭하기 - 이건 운동과는 또 별개의 문제로, 심신이 흐트러져있을 때 스트레칭만큼 정신과 몸 모두를 이완해주는 것은 없다. 매일 저녁을 먹고 씻은 후 스트레칭을 하자. 몸 곳곳의 긴장을 풀어주면서 크고 느린 심호흡을 하다 보면 머리도 함께 비워질 것임을, 제발 알지만 말고 좀 실천하고 누리자. (난이도 중)
여기까지는 내가 잘 못하는 것들의 거대한 나열이었다. 하지만 나를 압박하기만 한다면 스스로에 대한 애정이 너무 바닥을 칠 것 만 같아, 지금까지 내가 해 온 행동들 중 썩 칭찬할만한, 그러니까 앞으로도 쭉 유지해 마땅한 습관들의 리스트도 함께 적어본다. 나의 긍지를 끌어올리기 위함이다.
1. 설거지 미루지 않기 - 이것만큼은 지금까지 정말 잘 해온 일이다. 일단 개수대에 잔뜩 쌓인 음식물과 그릇을 잘 못 보는 성격이라 아무리 힘들어도 설거지만은 미루지 않고 지내왔는데, 정말 칭찬해주고 싶다. 앞으로 쭉, 그러기로!
2. 글쓰기 - 글쓰기도 웬만해선 미뤄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건 내 삶의 이유이자 내 정체성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내가 글을 쓸 때 가장 나답다는 걸 잊지 말고, 이 사랑하는 일을 꾸준히 하길 바란다.
3. 책 읽기/영화보기 - 다른 특출 난 취미는 없었어도, 언제나 이 마음의 양식을 쌓는 일만큼은 게을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세상의 훌륭하고 좋은 영화와 책들을, 시간이 창창한 백수일 때 더 많이 접해보도록 하자. 읽고 싶은 책과 보고 싶은 영화 리스트도 한 번 짜 봐야겠다. 이를테면 바쁘다면 절대 못 읽을 박경리의 <토지>라던지, 세계문학전집이라던지.
이 모든 리스트들을 크게 프린트로 출력해 책상 앞에 붙여놓았다. 적어놓고 보니 참 별것도 아닌 일을 미루고 힘들어하며 살아왔다 싶다. 작은 일들을 습관화하면서 긍지 그리고 성취를 늘려가는 경험을, 나 스스로에게 주고 싶다. 나 자신에게 조금씩 칭찬할만한 거리를 만들어주다 보면, 게으르고 위축되어있던 자아가 조금씩 회복되지 않을까.
요즘 챙겨보고 있는 정신과 의사의 유튜브 채널에서도, 정신과 의사들이 입을 모아 모두 같은 말을 한다.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으로 늘 빼지 않고 추천하는 것이, '생활 속에서 작은 성취를 늘리는 것'이라고. 생활 속의 작은 성취. 너무 뿌듯하고 멋진 말이다. 이제 나도, 남들이 보기엔 너무 작아서 코웃음 칠지라도 내게는 너무도 태산 같았던 일들을 조금씩 조금씩 실천해봐야지.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영양제를 먹고, 정오에 집 앞 공원을 1시간 산책하고, 글을 쓰고, 저녁을 먹은 뒤 설거지를 하고, 스트레칭을 하고, 잠에 들기 전 혹은 다음날 아침 일기를 쓰도록 한다. 지금껏 잘해온 글쓰기와 책, 영화 보기는 지금처럼만 하면 된다.
이 모든 행동을 이제부터는 간단하다고 생각해보는 거다.
할 수, 있다!
2021 일상의짧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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