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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에게는 아몬드가 있다. <아몬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건 어떤 기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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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2017)
장르 : 한국, 청소년문학·장편소설
저자 : 손원평 │ 출판 : 창비(창작과비평)



서점에 갈 때마다 베스트셀러 코너에 자리 잡힌 책 하나가 내 눈길을 끌었었다. '아몬드'라는 단어가 제목인 책. 대체 무슨 내용일까 궁금하면서도 막상 집어 들지는 않았었는데, 몇 달이고 내 눈길을 끄는 게 왠지 읽어달라고 외치는 것만 같았다. 어느 날 결국엔 책을 집어 들었다. 대체 왜 이 책의 제목은 아몬드일까?


소설 <아몬드>의 주인공 윤재는, 그 병명도 생소한 '알렉시티미아'라는 병을 앓고 있다. 편도체가 남들보다 작아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병이라고 한다. 기쁨이든 두려움이든 그 감정을 느끼지 못해서, 엄마와 할머니는 윤재에게 다른 사람처럼 감정을 느끼는 척 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 이런 상황에선 기쁨을 느끼고, 이런 상황에선 두려워야 한다고. 이럴 땐 이런 표정을, 저럴 땐 저런 표정을 지어야 한다고 말이다. 감정을 느끼진 못하지만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느끼는 척 일종의 연기가 필요한 삶, 그게 윤재의 삶이었다. 아무튼 윤재가 가진 병의 진원지 그 편도체가, 딱 아몬드만 한 크기라고 한다. 그렇게나 궁금했던 이 책의 제목이, 그래서 아몬드였던 것이다.


이야기는 이 윤재라는 아이가 할머니와 엄마를 사고로 잃으면서 시작된다. 괴한에게 묻지 마 습격을 당해 할머니는 죽고, 엄마는 식물인간이 된다. 하지만 윤재는 말했다시피 감정을 느끼지 못하기에, 당연히 그 순간에도 공포나 두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 소년이 식물인간이 된 엄마를 보러 병원에 오가던 중, 같은 병원을 쓰던 한 교수로부터 부탁을 하나 받는다. 그 부탁은 생뚱맞게도 자신의 아들인 척 연기를 해달라는 것이다. 그 기구한 사연을 들어보니, 옛날에 아들을 잃어버렸는데 그 이후 시름시름 앓던 아내가 결국 죽어가고 있고, 그 도중에 기적적으로 아들을 찾았는데, 하필이면 그 애가 심각한 문제아여서 도저히 아내에게 보여줄 수가 없다는 것. 그래서 비교적 바르게 생긴 윤재에게 아들 역할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윤재는 순순히 그 부탁을 들어준다.


그 이후 윤재의 학교에 그 교수의 아들, 문제아라는 아이 '곤이'가 전학을 오게 된다. 학창 시절 일진 친구들처럼 꽤나 허세가 심하고 매사 마음이 뒤틀려있는 아이, 곤이. 윤재의 눈에는 그런 곤이가 문제아였지만, 곤이의 눈에는 감정을 못 느끼는 윤재가 괴물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 둘은 내내 티격태격하다가, 미운 정 일지 어느 날부터 서로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어간다. 그렇게 문제아와 괴물로 불리는 두 아이가 의지 아닌 의지를 해가며 성장해 나가는 것이, 이 소설의 전반적인 줄거리였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느꼈지만, 그 설정은 이 이야기의 가장 큰 매력포인트이기도 했다. 서로 다른 의미의 문제아 두 명이 서로를 만나 상처를 치유해나가는 과정이 따뜻하고 섬세하게 드러난다. 특히나 곤이가 윤재에게 '두려움' 혹은 '공포'라는 감정을 가르쳐주려 노력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윤재 앞에서 나비의 날개를 짓이겨가며, 이러면 나비가 아프고, 이렇게 하면 네가 고통스러워야 한다는 것을, 본인도 문제아인 주제에 가르치던 그 장면.


때로는 어른이 치유해줄 수 없는 영역을, 친구가 치유해줄 때가 있다고 믿는다. 특히나 청소년기에 그렇다. 너무 머리가 커버린 어른이 개입할 수 없는, 청소년의 어떤 민감한 부분을, 비슷한 시기를 겪고 있는 친구는 들여다볼 수 있기에. 기억을 떠올려보면 내 학창 시절도, 부모님보다는 친구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었더랬다.


윤재와 곤이의 곁에는 좋은 어른들이 있었지만, 분명 어른들이 만질 수 없는 어떤 부위가 있었을 것이다. 그 부분을 윤재와 곤이는 서로서로 보듬어 나갔던 게 아닐까. 실종아동으로, 소년원 출신으로, 망가진 인생을 택했던 윤재는 그 삶을 청산하기로 마음먹게 되며,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하던 윤재 역시 곤이와의 교류를 통해 우정과 첫사랑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다.


어떤 자극을 지속적으로 주다 보면 문제의 그 편도체가 커지기도 하는 것인지, 의학적으로까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소설이 끝나갈 무렵의 윤재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을 갖게 되고, 설렘을 느끼게 되고, 친구를 위험으로부터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모두 감정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들이다. 고장 난 윤재의 아몬드가, 분명 커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 소설은 「창작과 비평」에서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내가 어른이어서 일까, 나는 좀처럼 하이틴 로맨스나 청소년의 이야기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편인데, 이 성장소설은 성인인 내게도 술술 재미있게 읽혔다. 청소년도 아니면서 깊은 감동까지 느꼈다. 너무 오래돼서 잊고 있었던 학창 시절의 고민과 방황들이 새삼 환기되는 것 같기도 했고, 청소년기에 있어 친구 그리고 바른 어른의 역할이 얼마나 큰 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달까. 같은 이유 때문일지, 청소년을 위해 쓰여진 이 소설은 어른들에게도 많이 읽혀나가고 있다.


책을 덮고 난 뒤, 나는 자연스레 윤재와 곤이 두 아이의 미래를 응원하게 됐다. 좋은 어른들과 좋은 친구의 지지 덕에 올바르게 클 수 있었던 윤재가, 성인이 되어서도 그런 삶을 살길, 그 아몬드가 조금씩 커지기를 바랐다. 곤이 역시, 분노로 가득했던 청소년기를 지나 좀 더 성숙하게 상처를 극복해나가기를 빌었다. 청소년기를 지나온 어른 독자로서, 두 주인공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삶은 굴곡이 있을수록 더 깊어진다"라는 것. 그들이 진정으로 깊고 바른 어른이 되기를 바란다.



09 본문글.jpg 인스타그램 매거진 ⓒ주간우두미 41호 (사진출처:핀터레스트)



곤이는 그저 자신의 인생을 살았을 뿐이다. 버려지고 헤집어지고 때로는 지저분하다고 말하기에 충분한 인생을, 십육 년의 삶을 말이다. [170p]
곤이는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단순하고 투명했다. 나 같은 바보조차 속을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세상이 잔인한 곳이기 때문에 더 강해져야 한다고, 그 애는 자주 말했다. 그게 곤이가 인생에 대해 내린 결론이었다. [171p]
사람들은 곤이가 대체 어떤 앤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단지 아무도 곤이를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다. [171p]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24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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