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날 때부터 2인조다
2인조 (2020)
장르 : 한국, 산문집
저자 : 이석원 │ 출판 : 달
내가 좋아하는 에세이스트 이석원의 새 책이 나와 바로 사 읽었다. 책의 제목은 <2인조>. 언제나 무덤덤하고 살짝 우울끼가 배인 그의 책은, 그 내용과 상관없이 늘 좋다. 마치 좋아하는 목소리의 가수가 무슨 멜로디의 노래를 부르든 그냥 목소리 자체로 좋은 것처럼.
맨 처음 그를 접하게 된 건, 그 유명한 노란 책 <보통의 존재> 때였다. 그의 솔직하고도 울적한 글들을 읽으며 많은 위안을 얻었고, 인간이란 원래 미성숙하고 나약한 존재지만 그럼에도 씩씩하게 살아가는데 삶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배웠었다.
그때의 작가는 마흔이 좀 넘은 나이었었는데. 이번 책을 읽으며 그가 어느새 쉰이 되었다는 걸 알게 됐다. 시간이 언제 이렇게 지난 걸까. 쉰이 된 그는 자신의 미성숙함, 불완전함, 흔들리는 자아에 대해 오늘날에도 낱낱이 적어낸다.
이번 책 역시, 그의 숱한 글들이 그랬듯 그의 매우 일상적인 단면을 담고 있고, 우울하고, 또 놀랍도록 솔직하다. 50세의 그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자신이 왜 이리 힘든지 골몰히 분석하고,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 쇼핑에 탐닉해보기도 하고, 지긋지긋했던 못난 습관들을 고쳐보기도 한다. 책의 제목이 2인조인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는 자기 자신과 잘 지내야 한다고 설파한다. 내 안의 나, 내가 정말로 잘 지내야 하는 나 자신. 나를 타자화하여 '나'와 잘 지내야 한다는 말은 뼈가 사무치게 공감이 된다.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타인을 신경 쓰느라, 나를 우선순위에서 늘 제쳐두느라 나 자신과 잘 지내지 못하니까.
어떤 이가 이른바 하늘의 도리를 알게 된다는 나이, 지천명에도 이러고 있다는 걸 알고 나면 "인생이 다 거기서 거긴가. 이 사람 본받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이 들 법도 한데, 이상하게 그의 글들은 항상 심심한 위로를 건넨다. 그쯤이 되면 모든 걸 통달한 진정한 어른이 될 거라 믿었던 자들에게 '미안하지만 이게 진실이야'라고 심드렁하게 말하듯이. 그리고 그런 투의 문체는 그의 글이 가진 가장 독보적인 매력이기도 하다. 완전한 어른이 아니라서, 자신을 과신하지 않는 어른의 솔직한 고백이라서, 오히려 그의 글들이 늘 위로가 되는 모순이다.
타고난 내 성향이 염세적인 탓일까, "이렇게 이렇게 하면 뿅 하고 극복돼, 너도 해봐!" 하는 자기기만적인 위로는 어쩐지 영 내 스타일이 아니다. 난 그래서 이석원이 좋은 모양이다. 이를테면 이석원의 위로는 이런 식이다. "난 아직도 이런 삶을 살아. 아직도 방황해. 근데 그렇다고 너무 겁내지는 마, 그게 이상한 건 아니니까" 이런 그의 글은 호불호가 갈리고, 일종의 마니아층을 형성한다. 그의 글을 좋아하는 이들은 아마도 나처럼 매우 염세적인 사람들이지 않을까 싶다. 실현 불가능한 환상적인 긍정의 주문보단, 현실적이고 때론 비참할지라도 그게 모두 살아감의 한 형태라는 걸 솔직하게 이해시켜주는 글을 좋아하는 그런 사람들. 그의 글을 '호(好)'하는 독자로서 난 아마도, 백발이 되어도 진정한 성인이 되지 못했다는 그의 글을 사 읽으며 위로를 받을 것 같다.
이석원의 예순이 어떨지, 칠순이 어떨는지, 독자로서 늘 궁금하고 궁금하다. 그리고 듣고 싶다. 그는 또 그때쯤 어떤 우울을 겪고 있고 어떻게 견뎌내고 있는지에 대해. 오늘은, 또 내일은, 그가 우울과 어떻게 화합의 시간을 보냈는지,에 대해 듣고 싶다. 그렇게 그와 함께 늙어가고 싶다.
오늘로써 그의 에세이 네 권을 읽은 독자이자 팬이 되었다. 그의 솔직함에, 그의 투명한 우울감에, 오늘도 용기를 얻는다. 그 덕분에, 주기적으로 우울해지는 내 모습이 어쩐지 괜찮게 느껴진다. 나도 그처럼 내 안의 나를 이해하며 '2인조'의 호흡을 맞춰가는 법을 점점 알게 되는가 보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말, 이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나와 같은 사람이 수백수천이 있어도, 그래서 내가 이 지구 위에서 숨 쉬며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 중 그저 하나의 개체일 뿐이라 해도, 그런 평범성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담담함이 내게 있었으면 좋겠다.
나의 화단이 그저 평범한 꽃들로 채워진다 해도, 남들 것만큼 화려하지 않아도, 그게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이라면 족한 마음.
그게 더 중요하다.
_이석원 산문집 <2인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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