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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프지만 현실적인 독립 에세이
<9평 반의 우주>

9백만 1인 가구의 애환을 담았다. 현실 자취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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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평 반의 우주 (2019)
저자 : 김슬 │ 출판 : 북라이프
장르 : 한국,에세이


나는 자취를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부모님의 통제를 벗어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는 로망보다, 부모님이 없어서 닥칠 수고로움에 대한 두려움이 언제나 더 컸기 때문이다. 당연히 자취방 전세금을 댈만한 목돈도 없었고.


<9평 반의 우주>는 작가가 자취를 하며 겪는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묶은 에세이집이다. 작가의 얘기를 읽다 보니, 자취를 하며 겪는 애로사항들은 부끄럽지만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넓고 다채로운 듯했다. 끼니를 해결해야지만 1인 가구다 보니 만들어먹거나 시켜먹기 애매해지는 순간들, 옆 건물이 갑자기 들어서면서 막아버린 창밖의 경관, 곰팡이가 슬었는데도 나 몰라라 하는 집주인, 여자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한 위험 등. 모두 엄마의 극진한 케어 아래 살았던 20대의 나는 까맣게 모르던 점이었다.


글쓴이는 자못 부끄러울만한데도 그런 자취생활의 실패담들을 담담하게 들려준다. 살짝 희화화할 때는 재미난 일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글 틈틈에서, 부모의 둥지를 떠나 내 한 몸 내가 건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녀가 늘 실패나 좌절만 하지는 않는다. 자취생활의 곤혹스러움을 맞닥뜨리면서도 하나씩 자신만의 자취 노하우를 구축해나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를 테면 그녀의 식사법.


p.69
그 뒤로 다양한 방식으로 요리 없이 사는 삶을 실험해왔다. 시장이나 식당에서 반찬을 사서 밥만 해 먹는 방법. 김치찌개 1인분을 포장해오면 집에서 세 끼를 거뜬히 먹을 수 있다. 김치찌개와 카레는 오늘보다 내일 더 맛있는 대표 음식이기 때문에 매번 더 깊어진 맛에 감탄하며 먹게 된다. 중국집에서 파는 토마토 달걀 볶음도 기가 막힌 반찬이다. 다음 날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어도, 냉장고에서 막 꺼낸 채로 뜨거운 밥 위에 올려 먹어도 황홀하다.


부모님과 살 때는 엄마가 밥을 해주니 끼니 걱정을 할 필요 없었고, 결혼에서는 늘 같이 먹을 낭군이 있으니 그저 식사시간이 즐거웠다. 그러니 1인 가구의 혼밥이 그렇게나 어정쩡한 것인 지는 미처 몰랐었다. 요리를 하려고 식재료를 사면 반 이상 남은 재료가 썩아가고, 그렇다고 매번 사 먹자니 지출이 감당 안 될 테고. 이것이 정녕 자취인들의 진심 어린 걱정이었던 것이다.



청소도 마찬가지다.


p.89-90
우리 집에도 '더러운 개수대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설거짓거리를 하루, 이틀, 사흘 내버려 두면 점점 더러움이 범위를 넓혀간다. 나중엔 어디서부터 손써야 할지 모를 만큼 집 전체가 난장판이 된다. 집이 엉망인 시기에는 나 또한 어김없이 젖은 수건처럼 쳐져 있었다.


나도 결혼을 하고서야 알았지만, 처녀 적에 우리 집이 늘 윤이 났던 건 엄마가 매일 쓸고 닦기 때문이었다. 이틀만 방치해도 사람의 몸에서 얼마나 많은 터럭이 빠져 나뒹구는지, 물건마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뽀얀 먼지가 쌓이는지 미처 알지 못했었다. 그러니 엄마는 물론 가사분담을 할 동반자도 없는 1인 가구의 자취인에게, 청소는 타고난 특기가 아닌 이상 힘든 숙제였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그저 자취를 하며 겪는 개선 가능한 애로사항일 뿐이었는데. 그녀가 지적한 '1인 가구에 대한 정부 정책' 이야기를 읽을 때는, 앞서 읽은 내용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커다란 무력감이 밀려왔다.


p.142-143

"청약에 당첨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우스 휠을 도로록 굴리자 단호한 댓글 하나가 보였다.
"우선 결혼을 하세요"

불안감 없이 오랜 시간 살 수 있는 집, 지금보다 넓고 쾌적한 환경에서 살고 싶다는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정책이 향하는 곳은 한정적이고, 그것은 가끔 국가가 원하는 방향으로 살라는 압박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청약 당첨 확률을 높이고 싶으면 신혼부부가 되라는 식으로 말이다.


이 역시도, 나는 부모님과 살다가 바로 결혼을 했기에 몰랐던 사실이다. 우리나라 주택청약 제도는 전적으로 결혼한 이에게 유리한 제도였다. 무주택자 성인은 30세가 지나면 주택청약을 노릴 수 있게 되는데, 여기서 가점의 기본값이 바로 결혼이라는 사실. 아이가 없는 우리 부부는 늘 '자녀 없음'이 발목을 잡아 우선순위에서 밀렸었다. 그런데 결혼조차 하지 않은 이들은? 주택청약에 터무니없이 불리한 조건인 것이다.


07 본문글(브런치용).jpg 인스타그램 매거진 ⓒ주간우두미 43호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혼자서 집세를 내고 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혹은 결혼 생각은 없어도 엄연히 동반자로 함께 살아가는 연인들이 있다. 그들도 분명 어엿한 사회의 구성원일 텐데, 글쓴이의 말대로 주거정책은 여전히 한쪽에만 치우쳐져 있다. 갈수록 비혼주의를 선언하는 사람들, 딩크족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세대에서, 사회가 인정한 구성원이 아니라고해서 이토록 살아가기 팍팍하다는 건 정녕 불합리하지 않은가.


책을 읽기 전 <9평 반의 우주>라는 책의 제목이 잠시나마 깜찍하게 느껴졌었는데. 9평 반이라는 평수가 내포하는 사회적 의미를 알고 나니 마음 한쪽이 욱신거린다. 침대를 놓고 책상을 놓으면 끝나는 공간.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화장실이 있는 공간. 빨래 한 번을 널면 습기로 가득 차는 그런 공간. 그런 1인 가구의 공간은 직접 경험해보진 않았어도, 전 연인들의 자취방을 통해 그 불편함을 익히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 서러움까지는 내 몫이 아니었기에 외면했었다.


그런데 세상엔, 9평 반의 공간을 보금자리로 품은 채 살고 있는 사람이 너무도 많지 않은가. 9평 반이 어찌 우주일 수 있겠는가. 하늘 높은 집값 탓에, 17평 남짓한 공간에 두 사람이 욱여지내는 우리 부부도 마찬가지다. 우주라 칭하기엔 극히 작은 공간을, 우리는 사지도 못한 채 빌려서 살고 있다.


앞으로 가족의 형태는 계속해서 다양해질 것이다. 결혼도 점점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고 있듯이. 그런 만큼 혼자 사는 사람들, 결혼을 원치 않는 동거인들에게 내리 닿는 햇살 같은 정책들이 보다 늘어나야 하지 않을까 싶다. 17평의 우주에 사는 한 기혼녀에게 몹시도 와 닿는 현실적인 에세이였다.


미래엔, 20년 상환기간의 대출을 받지 않아도 방 두 개짜리 거주지에서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더불어 침실과 화장실이 맞닿지 않은 집에 사는 글쓴이의 삶을 기대해본다.



09 본문글.jpg 인스타그램 매거진 ⓒ주간우두미 43호 │ 사진출처:핀터레스트



해당 포스트는 인스타그램 매거진 <주간우두미>의 43호 포스트의 일부입니다. <주간우두미>는 인스타그램 @woodumi 계정 또는 해시태그 #주간우두미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2021 주관적인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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