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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와 인간의 교류, <나의 문어 선생님>

문어가 의외로 지능이 높다는 거 아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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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어 선생님 (My Octopus Teacher, 2020)
제작 : 네덜란드·남아프리카공화국, 다큐멘터리
감독 : 제임스 리드, 피파 에리치
출연 : 크레이그 포스터, 문어
등급 : 전체관람가 │ 러닝타임 : 90분


문어가 외계인일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말을 들었다. 웃기면서도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게, 문어가 생각보다 지능이 높다는 글을 어디선가 스치듯 본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생명의 신비는 참 알 수가 없다. 강아지나 고양이, 소, 말처럼 육지에서 오랜 시간 인간의 애완동물이나 가축으로 최적화되어 온 동물이라면 모를까, 깊은 바다 밑에서 무슨 고도의 지능을 쓸 일이 있다고 문어 따위가 높은 지능을 가진 걸까 의아했었다.


그런데 그런 편견을 깨 준 영화가 하나가 등장했다. 바로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문어 선생님>이다. 우선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강렬한 병맛과 거부감. 문어가 어찌 선생님일 수 있으며, 도대체 흐물거리는 연체동물을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들겠다는 발상은 어떻게 하게 된 걸까. 왠지 모르게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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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크레이그 포스터'라는 한 영화감독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화면은 거대한 대자연이 일렁거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풍경으로 꽉 차있다. 그곳은 남대서양과 맞닿아 있는 아프리카 끝자락의 해변가로, 영화감독 크레이그가 유년시절을 보냈던 곳이다. 심각한 번아웃을 겪고 있었던 감독은 어느 날, 자신이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던 남아공으로 돌아가 일종의 안식년을 가지기로 결심한다.


어린 시절 감독이 느꼈던 바다의 찬란하고도 평온한 느낌은 그대로였다. 특히나 그가 사랑했다던 '다시마 숲(다시마로 이루어진 마치 숲 같은 풍경)'은 마치 환상의 나라에 온 것처럼 아름답고 기이했다. 그곳을 헤엄치며 유영하던 크레이그는 요상한 생명체를 발견한다. 조개껍질 부스러기를 온몸에 휘감은 알 수 없는 생명체. 알고 보니 문어였다. 한 암컷 왜문어(문어의 한 종류)가 천적을 피하기 위한 은둔술로 조개껍데기를 휘감고 있었던 것.


img.jpg 조개의 놀라운 은둔술!


흐물거리고 연약한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한 어떤 껍데기도 없는 문어는 그야말로 최약체다. 그래서 은둔술이 발달한 모양이다. 자유자재로 주변의 생물과 비슷하게 몸의 색을 바꿀 수도 있고, 그 질감까지도 흉내 낼 수 있다고 한다. 여덟 개의 다리로 다시마를 끌어모아 몸을 숨길 줄도 알고, 앞서 말했듯 조개껍데기를 끌어모아 자신의 몸을 보호할 줄도 안다. 그 모습에 흥미가 생긴 크레이그는 그날부터 매일매일 이 문어를 관찰하러 오기 시작한다.


처음에 이 연약한 왜문어는 크레이그를 경계했다. 그러나 하루, 이틀, 몇 날 며칠을 문어 앞에 찾아가자, 문어는 크레이그가 자신을 해치지 않는 존재라는 걸 인지하고는 서서히 경계를 풀기 시작한다. 그렇게 매일같이 문어를 찾아가던 어느 날. 문어가 크레이그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먼저 다가온다.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다리 하나를 뻗어 크레이그의 손을 만져보는 문어. 다리에 붙어있는 빨판으로 문어는 크레이그의 손을 느끼고, 맛보고, 안전함을 확인한다. 그 장면은, 문어를 그저 해물탕에 들어가는 연체동물이라 생각했던 내 편견을 완전히 깨부쉈다. 마치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강아지나 고양이가 조심스레 다가와 인간의 손을 코로 맡아보고 그제야 경계를 푸는 모습과 너무도 비슷했기 때문에. 문어도 호기심과 경계심을 가진, 그리고 인간을 궁금해하고 교감할 줄 아는 생명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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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크레이그는 문어와 특별한 교감을 나누기 시작한다. 크레이그와 친해진 문어는 그의 손에 올라타 애교를 부리기도 하고 같이 헤엄을 치기도 하는 등, 영락없는 애완동물 같은 모습을 보인다. 너무도 신기했다. 실수로 크레이그가 카메라 렌즈를 툭 하고 떨어뜨리는 바람에 놀란 문어가 자취를 감추는 날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금 문어를 찾아낸 크레이그를, 문어는 기억하고 반갑게 인사한다. 그 장면은 정말이지 신기함을 넘어 뭉클하기까지 했다. 문어도 기억을 할 줄 안다니. 남자 친구를 서너 번쯤 데려가면 집에 있던 강아지가 기억하고 꼬리를 흔드는 것과 문어의 행동이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문어는 바다의 최약체. 크레이그의 친구, 문어를 시시탐탐 노리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인간에겐 별 위협이 안되지만 문어에게는 최강 포식자인 '파자마 상어'다. 뛰어난 은둔술로 파자마 상어를 잘 따돌리던 문어는, 어느 날 파자마 상어의 잽싼 공격을 받고 다리 하나가 잘리고 만다. 문어는 동굴로 들어가, 잘려나간 다리의 고통 때문에 식음을 전패하고 그저 눈만을 꿈뻑이며 시간을 보낸다. 그 모습이 안타까웠던 크레이그는 먹이도 갖다 바치고 정성스레 들여다보지만, 문어의 고통을 해결해줄 수는 없었다. 감독과 문어의 깊어진 교류에 크나큰 감정이입을 하고 있던 터라, 다리를 잃은 문어를 보자 나 또한 미친 듯이 슬퍼왔다. 세상에. 분명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문어가 어찌 선생님이 되겠냐며 의아해하던 내가, 문어의 고통에 이토록 슬퍼하고 있다니... 놀랄 일이었다.


문어의 다리가 다시 재생될 수 있다는 것도 이 영화를 보고 처음 알았다. 아픈 문어를 계속해서 찾아갔더니 잘려나간 문어의 다리에 어느 날 쬐그만 다리가 하나 자라난 게 보였다. 그리고 그 미니미니(mini)했던 다리가 점점 자라나 완전한 다리가 되는 경이로움도 카메라에 어김없이 담겼다. 생각보다 지능이 높고, 생각보다 교감능력이 뛰어나고, 생각보다 놀랍고 체계적인 생명력을 지닌 문어의 모습이 가득 담긴 이 영화를, 어느덧 나는 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했듯, 감독과 문어가 평생 함께하지는 못했다. 어느 날 크레이그는 여느 때처럼 찾아간 문어의 곁에 한 낯선 문어가 있는 걸 발견한다. 문어의 짝짓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암컷 문어는, 짝짓기를 하고 나면 죽는 습성이 있다. 자신이 낳은 알을 보호하느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체력이 완전히 바닥날 때까지 버티는 것이다. 그러다 알을 부화시키고 나면 힘없이 밖으로 나와, 물고기들과 상어의 먹잇감이 되는 것이 문어의 정해진 삶의 규칙이었다.


감독은 이 모습을 그저 지켜본다. 문어를 구해주고 싶지만 인간이 생태계의 규칙에 관여해서는 안됐으므로. 그렇게 3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문어를 지켜보고, 문어와 교감하고, 자신의 몸에 붙어 애교를 떨던 귀여운 문어의 죽음을 맞이한 크레이그. 내레이션을 하는 그는 이 날을 회상하며 눈시울이 붉어져있었다. 강아지도 아니고 고양이도 아닌 문어의 죽음이다. 하지만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영화를 이쯤 보고 나면 모두가 크레이그처럼 글썽글썽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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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간의 각박한 삶에 지쳐버린 인간이 동물로부터 치유를 얻고 자연으로부터 안식을 얻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 영화는 그 둘 다를 담고 있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동화 같은 바닷속 풍경. 특히 알록달록한 물고기와 해파리가 사는 기이하지만 아름다운 다시마 숲은, 크레이그의 깊은 무기력증과 번아웃을 치유했다. 하물며 그 바다에서 만난 암컷 왜문어는, 본업이던 촬영 자체에 회의감을 느꼈던 그에게 다시 카메라를 들게 했다. 매일매일 바닷속으로 들어가 바다의 풍경을 찍고, 문어의 삶을 관찰하게 만들었다. 영화가 끝나고서야 영화의 우스꽝스런 제목, <나의 문어 선생님>이란 말이 온전히 이해되었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의 규칙을 따르는 동물은, 때로 인간이 흉내 낼 수 없는 놀라운 치유의 능력을 지녔다는 걸. 제 아무리 미물일지라도 우리가 분명히 배울 점이 있다는 걸. 가슴 깊이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자 이제 우리 문어를 먹지 맙시다!"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일방적인 채식을 권유하는 것 또한 누군가에게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다만, 늘 해물탕 속에 누워있는 미천한 생물이라고 생각했던 문어에게도 삶의 지혜와 교감능력이 있음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싶다.


감독 크레이그는, 이 경험 이후 'Sea Change project'라는 프로젝트를 설립해 남아공의 바다숲을 보호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고 한다. 모두가 그처럼 직접적으로 해양생태를 보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잡식동물로서 영양보충을 위해 해산물을 먹는 일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도 나름의 힘을 보탤 수는 있지 않을까. 최소한 그들이 살아가는 해양생태계를 더럽히지 '않는' 일에는 동참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방법은 그리 거창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분리수거를 잘하고, 플라스틱과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아주 작은 실천들만으로도 오염을 막을 수 있으니까. 그런 작은 의식적인 행동이 모이고 모여 우리가 해양생태 보존에 작게나마 기여할 수 있다는 걸, 잊지 않으며 살아가고 싶다.


문어는 맛있는 식재료인 동시에, 우리가 지켜줘야 할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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