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Mar 14. 2021

재능을 넘는 부지런함이란.
에세이 <부지런한 사랑>

글방 교사가만난 수많은 제자들, 그리고 사랑들.

부지런한 사랑, 2020
저자 : 이슬아 │ 출판 : 문학동네
장르 : 한국, 에세이


부지런한 사랑. 이 책의 핑크빛 표지와 제목을 보고 연애 이야기일 줄로 알았던 건 나뿐일까. 하지만 이 책의 부제는 '몸과 마음을 탐구하는 이슬아 글방'이다. 책을 펼쳐 읽으면 예상하지 못한 신선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책은, 글쓴이인 '이슬아'가 글쓰기 교사로 일하며 써온 이야기들이다. 올해로 서른이 된 그녀는 스물세 살부터 글쓰기 교사로 일해왔다. 글쓰기 교사라니까 당연히 직업이 교사이거나 적어도 문예창작 전공자일 것 같지만, 놀랍게도 이슬아는 그냥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책의 초입부, 그녀는 돈을 벌기 위해 글쓰기 수업을 시작했다고 밝힌다. 카페 알바와 누드모델 알바를 하다가 다른 일로 돈을 벌고 싶어져 하게 됐다고. 미미한 이력이었지만 스스로를 '교사'로 임명했고, 직접 아파트에 전단을 붙이며 글쓰기 수업의 학생들을 모집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고 처음엔 서울에서 그녀를 찾아주는 이가 없어 멀리 여수까지 글을 가르치러 다닌다. 매우 힘들었을 것 같은데도 그녀의 글방 수업이 유지될 수 있었던 건 체력적 힘듬을 상쇄시켜주는 즐거움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녀 말대로 처음엔 돈을 벌기 위함이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되려 글쓰기 수업을 통해 뭔가를 배워가는 사람은 왠지 이슬아 자신 같다. 가르침의 미학이란 게 그런 걸까. 


초등학생이 주를 이뤘던 어린 제자들은 이슬아의 수업에서 한없이 투명한 글들을 쏟아낸다. 아이들이니까 가능한 글이다. 어른의 글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을 아이들의 글들을 통해 이슬아는 보고 느끼고 깨달으며, 그 즐거운 과정들을 책에 여과 없이 듬뿍 적어냈다. 그래서 이 책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과정을 담은 것인지, 아이들에게서 배운 것을 담은 것인지에 대한 경계가 모호할 정도다. 둘 다가 맞는 것 같지만.


인스타그램 매거진 ⓒ주간우두미



그렇담 스스로를 글쓰기 교사로 셀프 임명한 이슬아의 글쓰기 수업은 어떤 방식일까. 그녀는 매 수업마다 아이들에게 원고지를 나누어주며, 그날그날의 글감을 전해준다. 그 글감에 대해 각자가 떠오르는 글을 마음껏 쓰는 것이다. 「1장 1절. 글쓰기란 무엇인가」로 시작하지 않는 그녀의 이 자유분방한 수업방식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딱딱한 커리큘럼 대신 자유로움으로 무장된 그녀의 수업방식은 아이들에게 소위 '먹혔다'. 


선생님인 이슬아는 어떤 글이 맞고 틀리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정해진 글감을 활용해 아이들은 자유롭게 원고지를 채워나가고, 글쓰기가 끝나면 낭독의 시간을 가지고, 서로의 글에 대한 자유로운 피드백을 나눌 뿐이다. 자유로운 방식 덕일지 그렇게 탄생한 글들은 너무도 생생하다. 


뭐랄까 아이들의 글에는 저마다 고유의 색이 있었다. 자신감에 넘치는 글, 소심하지만 섬세한 글, 외부세계를 향한 글,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는 글. 문체도 다양하다. 사실적인 표현의 글, 은유적인 글, 구술하듯 적는 글. 글쓰기가 어떤 것이라고 정형화하지 않고 아이들의 다양한 온도와 색을 존중해준 덕에, 아이들의 글에는 어른의 것과는 또 다른 생동감이 넘쳐흐르는듯하다. 글쓰기에 자신감을 붙여주고 자신의 색을 십분 활용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이슬아 선생님의 수업방식인 셈이다. 


그녀의 제자들이 쓴 생동감 넘치는 글을 몇 자 옮겨보자면 이렇다.


p.136 
그 애는 나를 그냥 스쳐 지나갔다. 지난 한 달 동안 나는 그 애에 관한 온갖 상상에 빠져 단물에 절어 있었는데 이제는 마치 티백처럼 손쉽게 건져진 뒤 물기를 좍 빼서 곶감처럼 말려진 느낌이다.

p.273
내 기억에 난 그렇게 아기처럼 소리를 지르면서 울지는 않았다. 그냥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려왔다. 아마 눈물이 내 볼을 타고 미끄럼틀처럼 내려오는 것은 집에 아직 오지 않고 회사에 있는 아빠 빼고 서진이와 엄마, 모두 보았을 것이다.



또한 이슬아의 수업을 통해 자유로운 글쓰기를 배운 아이들의 글쓰기 스킬은 이러하다.


p.77
글감이 주어지면 난 먼저 망설인다. 몇 분간 첫 문장을 생각하며 옆에 놓인 간식을 한입 베어 먹고 뚫어지게 글감을 쳐다본다. 머릿속에 무언가 스쳐 지나가면 빠르게 캐치해야 한다. 스토리를 구상하고 내가 만족을 느낄 것 같으면 그때부터 쓰기 시작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좋다. 어쩔 때는 어려운 글감을 만나면 스스로에게 만족을 못 느낄 것 같아도 일단 써본다. 그러면 다음에 어려운 글감을 또 만나도 전보다 더 잘 써진다.



이슬아에게 글쓰기 수업을 받은 아이들은 적어도 정형화된 글쓰기는 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추구하는 글쓰기 또한 그런 것이다. 어떠한 방식으로도 제한을 두지 않을수록 좋은 것이 바로 글이니까. 


280페이지 분량의 이 글방 수업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며, 나도 아이들에게 배워가는 게 많았다. 형식과 편견에 얽매이지 않은 빛나는 호기심과 솔직한 감정들은, 어른이 되어 딱딱해진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그들과 같은 눈으로 유연하게 세상을 보라고 말이다.




인스타그램 매거진 ⓒ주간우두미



물론 이슬아의 제자들에게서만 배울 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슬아의 글쓰기 수업을 순차대로 따라가다 보면 그녀가 아이들을 대하는 진정성 있는 자세와 더불어 부지런함을 본받고 싶게 된다. 이슬아의 좋은 면모들 중 가장 부럽고 탐나는 것이 바로 부지런함이다. 부지런함은 그녀에게도 정말 중요한 키워드인 듯하다. 이 책의 제목으로 쓸 만큼 그녀는 부지런함의 가치를 강조한다.


우선 이슬아는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글을 매일 쓴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부지런함이다. 그녀의 대표 수식어 격인 <일간 이슬아> 프로젝트가 바로 그 증거다. 이 책을 읽고 난 뒤에야 알았지만 이슬아는 SNS로 구독자를 모집해 소정의 구독료를 받고 매일 구독자들에게 읽을거리를 제공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녀의 재능이자 습관인 이 부지런함이야말로 어쩌면 글쓰기 교사로 가장 탁월한 무기가 아니었을지.


p.24
스물아홉 살인 지금은 더 이상 재능에 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된 지 오래다. 꾸준함 없는 재능이 어떻게 힘을 잃는지, 재능 없는 꾸준함이 의외로 얼마나 막강한지 알게 되어서다. / 재능과 꾸준함을 동시에 갖춘 사람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창작을 할 테지만 나는 타고나지 않은 것에 관해, 후천적인 노력에 관해 더 열심히 말하고 싶다. 재능은 선택할 수 없지만 꾸준함은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슬아가 부지런히 글을 쓰고 글쓰기 수업을 하며 얻는 것은 비단 성취감뿐은 아닐 것이다. 그녀는 꾸준한 반복과 연습이 주는 치유의 힘을 알고 있다. 


p.209
이러한 성취는 반복적인 글쓰기의 자기 치유 과정과도 닮아있다. 나는 치유를 위해 글을 쓰지는 않지만 글쓰기에는 분명 치유의 힘이 있다. 스스로를 멀리서 보는 연습이기 때문이다.


이슬아는 오늘도 내일도 글을 쓴다. 글을 쓰는 것은 고통이다. 어디 글뿐일까. 좋아하는 무언가를 도마 위에 올려 다듬고 내 것으로 만드는 모든 과정이 그러할 것이다. 이슬아에게는 글이었지만, 누군가에겐 운동일 수도 있고 요리일 수도 있고 그 무엇도 될 수 있다. 그녀의 말대로 부지런한 사랑을 하다 보면 재능을 이기는 치유의 힘이 길러지지 않을까. 



인스타그램 매거진 ⓒ주간우두미 (사진출처:핀터레스트)




해당 포스트는 인스타그램 매거진 <주간우두미>의 47호 포스트의 일부입니다. <주간우두미>는 인스타그램 @woodumi 계정 또는 해시태그 #주간우두미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2021 주관적인 평론

ⓒ글쓰는우두미 All rights reserved.

인스타그램 @woodumi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내 삶을 살 거야. 영화<레이디 맥베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