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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Apr 14. 2021

도로시는 행복하지 않았다. 영화 <주디>

오즈의 마법사 도로시는 행복했지만 불행했습니다

인스타그램 매거진 ⓒ주간우두미 39호


주디(Judy, 2019)
제작 : 드라마,미국 │ 감독 : 루퍼트 굴드
르네 젤위거(주디), 제시 버클리(로잘린), 핀 위트록(미키)
등급 : 12세 관람가 │ 러닝타임 : 118분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강하다. '주디 갈란드'의 삶을 살펴보면 이 말이 더욱더 강하게 와 닿는다. 주디 갈란드가 누구냐고?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양갈래 머리 소녀 도로시! '오버 더 레인보우(over the rainbow)'라는 노래로 한 시대를 정평했던 그 사랑스러운 소녀가 바로 주디 갈란드다. 오즈의 마법사가 무슨 내용의 이야기인지는 몰라도, 우리 모두는 한 번쯤 그 노래를 들어봤고, 도로시와 토토의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도 딱, 거기까지만 알고 있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알 정도로 유명했던 소녀 도로시. 그런데 그것은 어쩌면 관객에게만 보이는 빛의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뒷면, 그러니까 빛만큼이나 짙었을 도로시의 그림자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지 못한 듯하니까 말이다. 영화 <주디>는, 그런 대스타 주디 갈란드의 그림자를 낱낱이 보여주는 영화다.


우선 너무 놀랄까 봐 미리 말하건대, 주디 갈란드의 개인사는 탄식이 나올 정도로 불행하기 그지없다. 영화의 시작은, 도로시로 막 캐스팅되어 살아가던 무렵의 어린 주디에서 출발한다. 당시 대형 영화사였던 MGM은 노래만큼은 기똥차게 부르던 소녀 주디와 전속계약을 한다. 그러던 중 주디는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로 발탁되면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게 된다.


하지만 1930-40년대 미국 연예계에 인권이나 복지 같은 개념이 있었을 리 만무할 터. 무리한 스케줄 속에 회의감을 느끼던 소녀 주디를, 영화사는 약물로 어르고 달랜다. 낮에는 경각시키기 위해 암페타민을, 밤에는 불면증을 치료하기 위한 수면제를 처방하면서. 뿐만 아니라, 다이어트라는 명목으로 청소년인 주디에게 1일 1식을 강요하며 식욕억제제도 먹인다.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아동학대'에 가까운 수준이나, 안타깝게도 당시 연예계 풍습은 아마도 대부분 그러했던 모양이다.



영화의 오프닝은, 그런 주디의 비인간적인 청소년기를 보여주기 위해 '평범한 소녀 VS 대스타 도로시'의 기로에서 고민하는 주디를 비춘다. 평범한 소녀로 친구도 만나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잠도 푹 자고 싶었겠지만, 그때 주디는 고민하는 듯하면서도 결국 만인이 사랑하는 스타의 삶을 택한다. 그리곤 영화는 곧바로 대스타가 된 이후의 늙은 주디를 조명하기 시작한다.


17세의 주디에서 시간이 흘러 대스타가 된, 아니 정확히는 '한물 간' 대스타가 된 주디의 모습은, 적잖이 충격적이다. 푸석푸석한 피부, 잔뜩 주름진 눈과 이마, 아이들을 대동하고 나간 다소 초라한 밤무대. 티브이에서 질리게 보아왔던 퇴물 연예인들의 쓸쓸한 말로였다. 그녀의 인생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다는 걸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겨우 영화 10분 만에.


40대의 주디는, 밤이고 낮이고 약물에 의존해 살아간다. 밤에는 잠을 못 자고, 낮에는 예민하고 불안하다. 이 굴레를 잠재우기 위해 주디가 할 줄 아는 행동은 그저 강박처럼 입에 약을 털어 넣기. 가정사는 또 왜 이리 복잡한지, 무려 네 번의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고, 그 사이에서 아버지가 다른 아이들이 셋이나 있다. 그러고도 그녀는 사랑이 고파, 열두 살이나 연하인 남자 친구를 만나 다섯 번째 결혼을 꿈꾼다.


그즈음, 그녀에겐 전성기 때만큼 무대에 대한 열정도 없는 듯하다. 그녀는 런던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쇼를 하게 되는데, 열정이라곤 보이지 않는다. 마지못해 일어나 무대에 오르고, 비아냥 거리는 관객과 싸우는가 하면, 불성실한 태도로 무대에 임해 엄청난 야유를 받기도 한다. 정말 눈 뜨고 못 볼만큼 추하고 슬픈 장면들이었다. 그런 태도로 일에 임하니, 이후 일거리도 점점 줄어들 수밖에.


중년의 주디가 슬럼프를 극복하여 다시 전성기를 구가하고 행복한 노년을 꾸렸다는 서사로 이어질 줄 알았건만. 영화는 어째 점점, 쓸쓸하고 초라해지는 주디만을 비춘다. 이 불행하고 불안한 여자의 끝은 어디일까. 점점 마음이 아파 확인하고 싶지 않아 졌다. 그래서일까 영화는 주디의 죽음만큼은 보여주지는 않는다. 어쩌면 나처럼 마음 아프게 이 영화를 지켜본 관객들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였으리라.




영화가 차마 담지 않은 주디의 생애 뒷부분은 이렇다. 47세의 일기로 사망. 사인은 약물중독. 그게 주디 갈란드라는 화려한 여배우의 말로였다. 아... 그만 코끝이 저렸다.


얼마나 오래, 많은 약물을 먹어왔으면 사람이 죽을까. 신경안정제가 없이는 견딜 수 없는 그녀의 불안은 과연 어떤 크기였을까. 밤마다 잠에 들지 못해 힘들어했던 시간은 과연 얼마만큼일까. 그렇게 허망하게 요절할 줄 알았더라면, 그렇게 약물이 기대지 않았을까. 필연처럼 그녀의 삶에 달라붙어 있는 신경쇠약, 약물과 같은 단어들이 참 무겁게 느껴졌다.


물론, 주디의 삶이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무대에 서고, 노래를 부르던 젊은 시절 주디의 표정은 분명 행복 그 자체였다. 다만 그녀의 빛이 너무도 강했기에, 그래서 짙을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를 그 그림자들이 보는 내내 너무 아프고 가여웠을 뿐이다.


영화 오프닝에서, 영화사 대표의 말을 들으며 고민을 하던 소녀 주디의 큰 눈망울이 잊히질 않는다. "전 그냥 시간이 필요해요. 친구도 만나고 싶고, 햄버거도 먹고 싶고, 잠도 자고 싶어요"라고 말하던 주디. 다시 열일곱의 그때로 돌아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는 주디가 평범한 소녀의 삶을 한 번 택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려하진 않아도, 그녀에게 마음의 평온을 줄 그런 평범한 익명의 생을, 주디가 한번 누려봤으면 싶어서. 신경안정제나 각성제로 누를 필요 없는, 어쩌면 주디가 영원히 알지 못했을 그런 보통의 삶 말이다.


주디 갈란드의 본명은 '프랜시스 검'이었다고 한다.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그녀는 주디이기 이전에, 도로시이기 이전에, '프랜시스 검'이기도 했다.





해당 포스트는 인스타그램 매거진 <주간우두미>의 39호 포스트의 일부입니다. <주간우두미>는 인스타그램 @woodumi 계정 또는 해시태그 #주간우두미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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