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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Apr 29. 2021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프린세스 다이애나>

왜 영국인들은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그리도 사랑할까?

인스타그램 매거진 ⓒ주간우두미 48호


프린세스 다이애나 (The Story of Diana, 2017)
제작 : 미국, 사회·문화 다큐멘터리
감독 : 레베카 기틀리츠
러닝타임 : 1부(83분), 2부(83분)
등급 : 12세 관람가


다이애나 왕세자비. 그녀는 너무도 유명해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영국 왕실의 인물이다. 물론 내가 아주 어릴 때의 일이라 그 굴곡진 삶에 대해 면면히 알지는 못했었다. 넷플릭스에서 다큐멘터리 <프린세스 다이애나>를 본 건 그녀가 왜 지금까지도 그토록 사랑받고 회자되는지 제대로 알고 싶어서였다. 다이애나의 최측근과 당시의 여러 관계자들의 인터뷰로 구성된 이 다큐멘터리는, 2부에 걸쳐 그녀의 영화 같은 삶을 다룬다.


다이애나는 귀족 가문인 스펜서 가문에서 태어났다. 결혼 전 유치원 보모로 일했던 있던 그녀를 '평민 출신으로 왕실에 시집간 여자'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취미 격으로 유치원 보모나 베이비시터를 했을 뿐 돈에 구애받지 않는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귀족이니만큼 왕실과는 이전부터 교류가 있었으며 자연스레 몇 차례 찰스 왕세자도 본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스무 살이 되어서야 찰스의 눈에 들어 교제를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모두가 한 번쯤 본 적은 있을 그 어마 무시하게 성대한 왕세자의 결혼식이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거행되었다. 풍선 같은 어깨의 퍼프, 몇 미터인지 감도 오지 않을 긴 트레인, 금색의 단발머리를 한 다이애나 왕세자비. 영어권 나라에서는 fairy tale(동화)라는 말을 참 많이 쓰던데, 그 결혼식 장면이야말로 동화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을 꿈같은 장면이었다.


사실 나는 1부에서 묘사되는 다이애나 이야기에 자못 실망했다. 운 좋게 귀족 가문에 태어나 별다른 직업도 없이 살다가 왕실에 시집가고, 시집가서는 예쁘게 차려입고 취재진 앞에 웃거나 왕실 행사에 따라다니는 게 전부인 삶. 그저 수동적이고 인형 같은 여자의 전형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결혼 직후 다이애나의 삶은 실제로 그랬다. 그럼 이 수동적인 신데렐라 유형의 여자를 전 세계인들이 사랑한 이유는 대체 뭐지? 설마 아직도 얼굴 하나로 왕자를 꿰차는 공주 얘기를 좋아하는 거야? 아니면 비극적으로 죽었다는 그 사실 때문에 연민하는 건가?


하지만 1부 끄트머리를 향해갈 때 즈음부터 조금씩 의문이 풀리시 시작했다. 그저 왕자님이나 기다리는 신데렐라 같았던 다이애나의 삶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동화 같은 결혼식, 왕세자비로서의 화려한 삶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남편인 찰스 왕세자는 다이애나와 결혼하기 전부터 알고 지내던 '카밀라'라는 여성과 연인이었다. 한마디로, 다이애나는 그저 귀족 가문 출신의 성경험 없는 어린 여성으로서 왕세자비가 되기에 적합한 인물이었을 뿐 (참으로 구시대적인 왕세자비 간택 조건이다), 찰스가 사랑했던 대상은 아니었던 것이다. 결혼한 후에야 이 사실을 안 다이애나는 찰스 왕세자를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았고, 자살시도 5번, 폭식증과 거식증을 오가는 섭식장애를 겪는다. 실제로 왕실 사람들은 중매결혼이 많았기에, 후계자를 출산한 후 서로 애인을 두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다이애나와 찰스 왕세자의 슬하에는 두 명의 왕자가 있었다. 남편이 자신에게 마음이 없는 것을 알게 된 다이애나는, 부부간의 불화로 아이들이 상처 받지 않도록 자신의 온 애정을 아이들에게 집중했다. 유모에게 양육을 맡기는 왕실의 통례를 따르지 않고 본인이 직접 모유수유를 하며 왕자들을 돌봤다고 한다. 또한 숨 막히는 왕실에서 딱딱한 왕손보다는 선한 개인으로 성장하길 바랬기에,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려 노력했고, 왕자님인 두 아들들을 놀이동산이나 맥도널드에 데려가기도 했다. 영상을 보면 후룸라이드를 타면서 물 맞는 다이애나, 운동회에서 뛰고 있는 다이애나도 볼 수 있다. 마음이 떠난 찰스 왕세자와 더 일찍 헤어질 수도 있었지만, 다이애나는 그렇게 15년의 결혼생활을 유지했다. 어린 시절 이혼한 부모님 탓에 불우했던 다이애나 자신의 유년시절을, 자식들에게는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남편의 외도와 이를 묵인하는 뻔뻔한 왕실을 견딜 수는 없었고,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했을 무렵 다이애나는 찰스 왕세자와 별거를 거쳐 끝내 이혼한다. 남편의 외도와 별거 그리고 이혼이라니. 순진하게 웃으며 웨딩 마차에서 내릴 때만 해도 다이애나는 이런 동화를 꿈꾸지는 않았을 것이다. 평생 다복하게 아이들을 낳으며 사랑받는 왕세자비로 살고 싶었겠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다이애나가 진정으로 멋있는 여성상으로 거듭난 건 바로 이 시점부터였다. 동화가 끝난 지점에서야, 그녀는 비로소 자신이 한 인격체로서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됐고, 세상을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된 것이다.



이혼 직후부터 다이애나는 이전에는 없던 행보를 수놓는다. 다이애나는 그 당시 마이클 잭슨보다 사진이 많이 찍힐 정도로 영향력이 어마어마했다. 시작은 수려한 외모와 패션센스 덕이었지만, 그녀는 그 유명세를 다른 곳으로 활용하기 시작한다. 아프리카 빈민촌 구호와 적십자 활동을 했고, 에이즈 환자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해 의료진도 꺼리는 에이즈 환자와 맨손으로 악수를 했으며, 지뢰금지운동을 위해 지뢰가 설치된 밭을 직접 걷기도 했다. 다이애나가 가는 곳에는 파파라치가 늘 문전성시였던 덕에, 그녀가 하는 이 모든 선한 일들을 대중들이 접할 수 있었다. 영향력의 올바른 쓰임의 예가 바로 이런 걸까. 


뿐만 아니다. 그녀는 왕실 사람들이라면 으레 꺼릴만한 것들을 깨고 솔선수범했는데. 이를테면 대중에게 스킨십하지 않는 기존 왕실 사람들과는 달리, 행렬에 참가한 대중의 손을 잡거나 아이들을 안아주는가 하면, 불우한 결혼생활도 감추지 않고 대중 앞에 과감히 드러냈다. 그 당시 커밍아웃하기 쉽지 않았던 섭식장애나 산후우울증, 자살시도 같은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털어놓고, 방송 출연과 책 출간을 통해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무조건적으로 참는 아내 역할도 하지 않았다. 남편의 외도를 그저 지켜보기는커녕 내연녀를 찾아가 정면돌파를 했고, 본인도 여러 남자들과 맞바람을 피웠다. 


이렇게나 자주적이고, 솔직하고, 감성적이고, 정의로운 왕세자비가 있다니. 왕실 눈에서 다이애나가 얼마나 골칫덩어리였을지 예상이 되는가. 하지만 이제는 허물이고 상징일 뿐인 왕실에서, 진정한 본보기가 될만한 건 과연 누구일까. 왕실 내에서는 다이애나가 탐탁지 않은 며느리였을지 몰라도, 적어도 민중들 앞에 선 그녀는 공인으로서 최대한의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줄 알았고, 호위 호식하는 귀족이 아닌 소외계층의 아픔을 공유하는 친구였다. 과연 '민중의 왕세자비'였던 것이다.


그녀가 죽지 않았더라면 이 세상은 얼마나 더 그녀의 선한 영향력으로 물들어나갔을까... 다이애나는 1997년, 프랑스에서 연인과 여행을 하던 중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그녀 나이 겨우 서른여섯. 극성스럽게 쫓아다니는 파파라치를 피하려다 일어난 사고였다. 지금껏 꼿꼿하게 선을 긋고 위엄을 지키던 왕실과 달리 친대중적이고 약자를 위해 늘 따뜻한 손길을 보냈던 왕세자비가 비극적으로 죽었을 때, 영국 전체가 울었다. 영국인 한 명 한 명 모두가 다이애나를 사랑하고 존경했던 만큼 그 충격은 정말 대단했다고. 끝없는 추모의 물결이 이어져 영국이 비탄에 잠겼고, 곧 다이애나를 불행하게 했던 왕실의 지지도는 바닥을 쳤다. 이혼한 며느리의 죽음에 쌀쌀맞던 왕실은, 결국 국민들의 거센 반발과 영국 총리의 공식 요구로 인해 다이애나의 장례식을 왕실장으로 치르고 전 세계에 텔레비전으로 방영했다.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분명 처음엔 그저 예쁜 옷을 입고 손을 흔들던 귀족 출신 왕세자비였다. 개인적으로 예쁘고 무능력한 여성상을 좋아하지 않기에 그녀의 어떤 것도 내 마음을 동요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영상을 통해 다이애나의 결혼 이후의 성장과정을 거쳐 장례식 장면에 이르러서는 눈물을 주룩주룩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개인적 삶은 비극이었으나, 한 여성이 어떻게 자주적인 삶을 개척해 나가는지, 공인이 어떻게 좋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역사로 보여준 예였기 때문이다. 모든 이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 앞으로도 영국 왕실에 다이애나 만한 사람은 없을 거라고.




오랜 세월 왕실을 보존해온 영국인들에게는 왕족이 주는 어떤 특별한 자부심이 있는 듯하다. 사실 나는 아직도 왜 왕족이 존재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왕실의 보존이 그 나라 국민들의 자부심으로 작용하는 문제라면, 모름지기 다이애나와 같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한 나라의 상징으로서 가장 아픈 곳에 손길을 보낼 줄 알아야 하고, 위엄에 얽매이기보다는 친근하고 솔직하게 국민과 소통할 줄 알아야 한다고. 예나 지금이나 민중의 아픔을 진심으로 공유할 줄 알았던 선왕, 솔선수범했던 대통령들은 존경을 받았더랬다. 국민의 지지에 의해 보존되는 왕실 또한 분명히 그럴 의무가 있지 않을까.


다이애나는 비록 짧은 생을 살았지만, 다행히도 영국에는 그녀가 남긴 최고의 자산이 있다. 바로 어머니를 빼닮은 영국의 두 왕자다. 성인 이후의 윌리엄과 해리 왕자의 행보는 어머니의 발자취를 그대로 닮아있다. 소외계층을 위해 힘쓰고 친근함으로 소통하는 두 왕자를 보면, 아직 다이애나의 영혼이 왕실에 살아 숨 쉬고 있음이 느껴지는 것 같다. 특히나 왕위 계승자인 윌리엄 왕세자비 부부가 다이애나의 결을 따라가고 있다는 건 반가운 소식이다. 영국인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그 왕실에 부디 오래오래 다이애나의 따뜻한 숨결이 맴돌길 바란다.


문득, 민씨 집안 식구끼리 헤쳐먹고 온 나라살림을 거덜내고도, "나는 국모다"라는 하지도 않은 말로 포장된 우리나라의 마지막 왕비가 무지 부끄러워진다. 명성황후가 다이애나 반만 닮았더라면, 우리나라의 근대사는 조금 덜 아팠을까. 국민이 사랑하는 왕비를 지닌 영국이 조금 부럽다.




해당 포스트는 인스타그램 매거진 <주간우두미>의 48호 포스트의 일부입니다. <주간우두미>는 인스타그램 @woodumi 계정 또는 해시태그 #주간우두미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2021 주관적인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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