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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May 09. 2021

난해한 제목에 끌린 소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북클럽 회원들은 전쟁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인스타그램 매거진 ⓒ주간우두미 54호
영화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의 포스터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The Guernsey Literary and Potato Peel Pie Society, 2010)
저자 : 메리 앤 섀퍼, 애니 배로스 │ 역자 : 신선해
출판 : 이덴슬리벨 │ 장르 : 미국, 문학·소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이 난해하고 종잡을 수 없는 제목에 이끌려 영화를 보았고, 이듬해 원작 소설인 책을 구매해서 읽었다. 책을 읽고 난 다음의 나의 한 줄 평은, 이 책의 제목은 절대 절대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소상히 소설의 제목을 풀이해보겠다. 우선 제목의 첫 단어인 ‘건지(Guernsey Islnad)’는 실제 영국해협에 위치한 한 섬의 이름이다. 다소 낯선 이름의 이 섬은 2차 세계대전의 역사와 깊이 맞물려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에 의해 5년간 점령을 당했으며, 독일군이 영국 점령을 위한 교두보로 활용한 곳이기도 하다. 소설의 주된 배경이자 정체성인 곳이다.         

  

그럼 ‘감자껍질파이’는 또 무엇인가. 말 그대로 감자껍질을 재료로 해서 만든 파이(pie;서양과자)다. 듣기만 해도 맛없을 것 같은 이 파이의 정체는, 독일군 점령 시기의 건지 섬 주민들이 독일군으로부터 고기와 같은 식량을 몰수당해 먹을 게 없었던 시절을 대변하는 음식이다. 실제 있었던 음식인 지는 모르겠으나, 이 소설 속의 주민들은 먹을 게 없어 감자껍질로까지 파이를 만들어 먹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북클럽’은? 마찬가지로 당시 독일군 점령을 받던 건지 섬 주민들에게 유일하게 허락되던 외부활동인 ‘문학 모임’을 일컫는다. 당시 나치 독일군은 자신들이 영국을 교양 있게 점령한다는 인식을 주기 위해 문학 모임만큼은 허용했다고. (잠깐 웃고 갑니다) 그리하여 소설 속의 건지 섬 주민들은, 아픈 점령기 시절 유일하게 허용되었던 북클럽을 토대로 교류를 해나간다.       

    

그러니까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은, 건지 섬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감자껍질파이를 먹으며 만들어낸 문학모임이다. 그럼 제목이 해결되었으니 본론으로 들어가 보겠다.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모든 페이지가 서간체(편지글 형식)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실제 존재하는 편지들은 아니고 모두 허구이지만, 마치 실제처럼 살아 움직이는 총 168여 통의 편지들은 이 소설의 가장 큰, 아니 독보적인 매력이다.           


2차 대전이 종전된 1946년. 런던에 거주하는 소설의 주인공 ‘줄리엣’은, 건지 섬으로부터 온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바로 섬의 주민 ‘도시’가 보낸 편지였다. 줄리엣이 과거에 팔았던 책 한 권을 건지 섬의 도시가 중고로 구매하게 된 것이다. 그는 줄리엣에게 중고책의 저자인 ‘찰스 램’의 또 다른 책을 구할 수 있는지 묻는다. 5년간 독일군의 점령이 이어졌던 건지 섬에서는 외부와의 소통이 단절되다시피 한 상태였고, 당연히 제대로 된 서점 또한 없었다고.           


줄리엣 역시 독일군으로부터 공습을 받아 집이 폭격된 상처가 있었지만, 줄리엣이 있는 런던에 비하면 건지 섬의 사정은 터무니없이 열악하게 들렸다. 줄리엣은 찰스 램의 다른 서적을 구해줄 것을 답하며 건지 섬에 대해 묻는다. 런던의 줄리엣과 건지 섬의 도시 간에 그렇게 편지가 오고 가기 시작한다.  

         

줄리엣은 작가였고, 그녀는 성공적인 첫 책을 뒤로 차기작의 소재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소재가 떠오르지 않던 차에, 도시의 편지 속에서 기이한 북클럽의 이름을 듣게 된다. 듣자마자 나와 똑같은 궁금증을 갖는 줄리엣. “대체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 뭐죠?”          




이후에는 더 놀라운 교류가 일어난다. 도시의 소개로 감자껍질 북클럽의 회원들 여러 명이 줄리엣에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등장인물이 갑자기 늘어나서 처음에는 뭐가 뭔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소설, 아니 편지들을 계속 읽다 보면 북클럽의 회원들이 모두 각기 다른 매력으로 생동감 넘치는 사람들임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과묵하지만 묵직한 다정함의 소유자 도시, 북클럽에서 감자껍질파이를 만든 장본인인 애번, 호기심 많고 솔직한 매력의 이솔라, 주야장천 책 한 권 만을 반복해 읽는 존, 엄마 같은 푸근함의 아멜리아까지. 그리고 직접 편지를 하지는 않지만 건지 섬의 북클럽 회원 모두가 거론하는 한 여인, 엘리자베스까지. 생각보다 강한 네트워크로 형성되어있는 이 북클럽의 존재는 줄리엣의 호기심을 연일 자극한다.   

        

그러나 끈끈한 연대로 행복해 보이는 감자껍질파이북클럽 회원들에게는 공통의 슬픔이 하나 있다. 바로 ‘엘리자베스’라는 여인이다. 모든 이의 편지에 등장하는 그녀는 용감하고 정의로운 인물로 한 때는 북클럽의 주축이었으나, 전쟁포로를 숨겨주다가 독일군에게 들켜 강제수용소로 끌려간 뒤 소식이 끊겼다. 생사가 확인되지 않는 그녀를 북클럽의 회원 모두가 오매불망 그리워하고 있는 상태였다.          




원래 이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란 것도 애초에 엘리자베스 덕분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처음엔 그저 독일군 몰래 돼지고기를 구워 먹으려고 모였다가, 통금시간을 어겨서 독일군에게 취조를 당하게 되자, 엘리자베스가 기지를 발휘해 문학모임이라고 둘러댄 것이 시작이었다. 문학모임은커녕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않던 주민들이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문학 모임’이라면 또 눈감아주는 독일군의 괴상한 점령 방식 덕분에, 몰래-돼지고기 파티의 주인공들은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어쩔 수없이 주민들은 문학모임인 척 연기를 이어나가야 했고, 그 모임이 몇 번 반복되다 보니 나중에는 결국 진짜 책을 읽고 발표하는 문학모임이 된 것이다.             

주민들은 제인 오스틴, 에밀리&앤 브론테, 찰스 디킨스, 찰스 램, 세네카, 셰익스피어, 오스카 와일드 등의 책을 읽으며 점령기를 지나 보낸다. 대부분의 식량을 몰수당하고, 외부와의 소통은 단절되고, 어린 자식들을 타지로 피난 보낸 혼란한 세월이었지만, 그들이 버틸 수 있었던 건 문학과 그로 인해 생겨난 따뜻한 커뮤니티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 북클럽의 중심이자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엘리자베스는 강제수용소로 끌려간 뒤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 더구나 엘리자베스에게는 어린 딸이 하나 있었다. 당시 건지 섬 주민에게 우호적이었던 독일군 장교와 사랑에 빠져 그 사이에서 낳은 딸 ‘킷’이었다. 아빠인 독일군 장교는 전쟁 중 사망하고, 엄마인 엘리자베스는 수용소로 끌려간 뒤 사실상 고아가 된 ‘킷’을, 북클럽 회원들이 공동으로 돌보며 키우고 있었다.  

         


줄리엣은 이 북클럽 공동체의 구구절절한 모든 사연을 알게 되자 그만 이들과 사랑에 빠져버린다. 그리고 직접 두 눈으로 이들을 보기 위해 건지 섬으로 향한다. 백문이불여일견. 그곳에는 자신이 사랑하는 문학을 기반으로 전쟁을 이겨낸 주민들의 삶이 있었고, 런던과는 견줄 수 없는 아름다운 생태가 있었다. 북클럽 회원들과 함께하며 줄리엣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따뜻한 나날을 보내고, 이윽고 자신의 차기작 소재 또한 굳히게 된다. 바로 이 북클럽, 그리고 그들이 모두 그리워하는 여인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로.        

  

이 소설은 뭐랄까, 소설 같지가 않았다. 생생한 편지글 형식 덕분일까. 실제로 존재하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구전 같았다. 정말 건지 섬에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라는 게 있었던 건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였다. 북클럽 회원들의 생생하고 아름다운 삶에 대해서 듣고 있노라면 그런 착각이 들만도 하다. 그들로부터 편지를 받았더라면, 나라도 지금쯤 영국해협의 건지 섬으로 가는 항공편을 알아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놀랍게도 이 소설은 ‘매리 앤 셰퍼’라는 미국 작가에 의해 쓰였다. 저자가 영국인이 아닌 것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녀가 살아생전 이 소설 하나만 집필했다는 것이다. 이 말도 안 되는 탄탄한 구성과 신박한 짜임의 소설이 처녀작이라니. 우연히 나치의 건지 섬 점령기를 알게 된 그녀는 흥미를 느끼게 됐고, 직접 건지로 날아가 취재하며 훗날 이 이야기를 쓰겠노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소설의 초고를 쓰고는 건강이 악화되어 그녀의 조카인 ‘애니 배로스’가 작품을 이어받아 마무리했고, 매리가 떠난 뒤에야 세상에 공개되었다. 그렇게 매리 앤 셰퍼의 처녀작이자 유작이 된 이 작품은, 전 세계를 감동으로 물들이며 이른바 대박을 쳤다.           

저자가 자신의 작품이 공개되는 걸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게 많이 안타까웠다.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이 책을 읽고 치유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미처 보지 못하고 떠났지만, 생전에 그녀가 묘사한 소설 속 ‘문학의 힘’은 그녀의 소설을 읽은 사람들에게도 같은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인터넷에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을 치면 이 책을 읽고 감동받고 치유받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넘실거려 잠길 것만 같다. 문학은 늘 그런 것 같다. 읽기는 힘들지만 읽고 나면 내면에 힘이 쌓이고, 그 힘을 바탕으로 가장 따뜻한 연대감을 만들어낼 수가 있다. 전쟁의 총칼이 건지 섬 주민들의 연대감을 부술 수는 없었던 것처럼.        

   

메리 앤 셰퍼는 그 힘을 알던 정말 멋진 작가다.           





 해당 포스트는 인스타그램 매거진 <주간우두미>의 54호 포스트의 일부입니다. <주간우두미>는 인스타그램 @woodumi 계정 또는 해시태그 #주간우두미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2021 주관적인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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