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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Dec 07. 2021

오후에 홍차, 오후에 디저트

디저트에 돈 쓰는 게 아깝지 않은 자들의 여행 버킷리스트!

인스타그램 연재글 @woodumi


디저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영국 또는 홍콩에 갔을 때 꼭 해보고 싶어 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애프터눈 티’라 불리는 식문화 체험이다. ‘애프터눈 티’란 오후를 뜻하는 애프터눈(afternoon)과 차를 뜻하는 티(tea)의 합성어로, 3단으로 된 트레이에 차곡차곡 담겨있는 아기자기한 디저트들을 홍차와 함께 즐기는, 오래된 영국의 식문화를 일컫는다.           


나는 영국에는 가보지 못했지만 홍콩에 갔을 때 이 ‘애프터눈 티’를 체험하기 위해 상당한 돈을 지불했다. 나는 명실상부 디저트 덕후였기 때문에.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에도 영국의 식문화인 이 ‘애프터눈 티’가 깊게 뿌리내려있다. 때문에 홍콩의 여러 유명 호텔에서는 저마다 애프터눈 티 세트를 내세워 판매하고 있는데. 나는 여러 호텔 중에서도 리츠칼튼 호텔에서 애프터눈 티를 체험하게 됐다.      


가격은 결코 저렴하지는 않은 2인 기준 10만 원 상당이다. 아마 디저트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이들이 들으면 “아니 그런 큰돈을 그런데 쓴다고?”라며 놀랄 수도 있겠다. 이해한다. 정말 비싸다. 한두 푼이 아쉬운 여행경비에서 꽤나 큰 지출이라는 것도 인정한다.      


언젠가 남자 친구와 홍콩에 갔던 친구가 이 애프터눈 티 세트를 체험할 것이냐 말것이냐를 두고 실랑이를 벌였다는 일화를 들은 적도 있었다. 밥값보다 비싼 디저트를 이해할 수 없던 친구의 남자 친구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으나, 디저트 덕후인 나와 친구는 눈썹을 팔자로 만들며 이렇게 말했었지.   

       

“아니 홍콩에 갔는데 애프터눈 티는 필수지이이-”         


아는 사람은 필수로 여기고, 관심이 없는 이에게는 사치로 여겨지는 이 디저트 문화, 애프터눈 티. 과연 뭐길래 이러는 것이냐고?     


애프터눈티에 대해 알아보자. (사진출처:핀터레스트)


이 문화는 영국의 한 귀족으로부터 출발한다. 1841년 영국. 베드포드 가문 7대손의 부인이었던 ‘안나 마리아(Anna Maria 7th Duchess of Bedford)’는 저녁식사를 하기 전 오후에 찾아오는 허기를 달래기 위해 차와 함께 간단한 빵을 먹고는 했다. 당시 영국인들의 식문화는 아침식사와 저녁식사로 구성되어 있었다. 게다가 저녁시간은 오후 8시로 다소 늦은 시간이었다고. 그러니 점심과 저녁 사이에 찾아오는 허기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터.      


3시에서 5시 사이. 안나 마리아는 어느 날부터 귀부인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함께 홍차와 빵을 먹기 시작했고, 이게 오늘날의 ‘애프터눈 티’ 문화로 자리 잡았다고 전해진다. 물론 홍차의 나라 영국에서는 1600년대부터 오후에 홍차를 마시는 문화가 있었으나, 여기에 디저트를 함께 곁들이기 시작하고 유행시킨 것은 200년 후인 1800년대의 일이었던 것이다.      


사교계의 유행이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시대극들을 보면 늘 사교문화를 선도하는 멋쟁이 귀부인들이 등장한다. 안나 마리아도 그런 존재가 아니었을지. 이후 안나 마리아 공작부인이 티타임을 즐기던 오후 3~5시 사이는 영국의 상류층 사이에서 다과를 즐기는 시간으로 굳건히 자리 잡았다.      


또한 실내에서 이루어지던 간소한 모임 형태가 점차 응접실이나 야외 정원으로 확장되고 격식을 갖추게 되면서 보다 세련된 사교 행사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디저트의 종류도 처음에는 간단하던 것이 점차 스콘, 마카롱, 비스킷, 케이크, 샌드위치 등으로 확대되면서 오늘날의 3단 형태인 화려한 애프터눈 티가 완성되었고, 귀부인들의 사이의 문화였던 것이 점차 유행을 타고 중산층으로까지 이어졌다고 전해진다.      



실제 체험한 애프터눈 티 세트│홍콩 리츠칼튼


홍콩 여행을 계획하며 내내 설레는 마음으로 ‘애프터눈 티’를 기다려온 나는, 리츠칼튼 호텔의 102층 <더 라운지 앤 바>에 도착했을 때, 다른 손님들의 테이블 곳곳에 놓여있는 은색 3단 트레이를 보는 순간 엔돌핀이 솟구치는 것 같았다. 야, 드디어 내가 애프터눈 티를 해보는구나!  

   

귀부인들이 즐기던 문화이니 살짝 사치의 향기가 풍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여행의 묘미란 평소에 할 수 없는 것을 체험하는 것 아니겠는가. 나는 평소에 가지도 않을 으리떵떵한 호텔에 앉아, 창밖으로 펼쳐진 비현실적인 빅토리아 항의 풍경을 바라보며, 무려 10만 원이나 하는 3단 트레이의 화려한 디저트를 그렇게 맛보게 되었다. 다행히 그 당시 남자 친구이던 남편은 나의 디저트 사랑을 까무러치지 않고 잘 지켜봐 주었다.  

    

이 우아한 3층으로 된 트레이에는 사실 작은 질서도 있다. 마치 한국의 제사상에 홍동백서를 지키는 것처럼, 1층은 스콘과 잼 버터 생크림, 2층은 푸딩과 케이크, 3층은 샌드위치나 카나페로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인 규칙이라는 점. 또한 아래에서부터 위로 먹는 것이 문화의 정석이라고 한다. 하지만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던 자가 그런 규칙을 알았을 리는 없었으므로, 그냥 집히는 대로 열심히 먹었다는 다소 웃픈 후문이...,     


홍콩에는 리츠칼튼 호텔 외에도 페닌슐라 호텔,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인터컨티넨탈 호텔 등 곳곳에서 애프터눈 티 세트를 정성껏 준비해 판매하고 있으며 호텔마다 그 느낌도 구성도 조금씩 상이하다. 그러나 아무리 각자의 개성을 반영해도, 3시에서 5시 사이 홍차와 함께 3단 트레이가 구성되는 골조는 변하지 않고 유지되어 오고 있다. 돌고 돌면서 조금씩 바뀌는 유행 속에서도 어찌 이런 골조는 변하지 않는 것인지 가끔은 신기할 따름이다.      


프랑스에 가면 마카롱을, 대만에 가면 버블티를 먹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국과 홍콩에는 그렇게 애프터눈 티가 존재했다. 홍콩에 뿌리내린 이 ‘오후의 홍차, 오후의 디저트’ 문화를 여행자로서나마 반짝 체험해본 후기는 형형색색의 디저트만큼이나 달콤했다.         

 



공작부인 안나 마리아는 알까? 자신이 선도한 유행이 이제는 한 나라의 문화가 되어 여러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이 문화를 소비하고 향유하고 있다는 걸.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누군가는 죽어서 이름을 남기지만, 1800년대에 공복을 느꼈던 한 여인은 역사에 길이남을 디저트 문화를 남겼다.    

       

언젠가 애프터눈 티의 본고장인 영국에 가게 되면, 그때 또 한껏 귀부인이 된 마음으로 애프터눈 티를 즐겨보리라. 그때는 1층부터 먹어야지 꼭!






먹고 여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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