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Dec 25. 2016

영화<스플라이스>

윤리 없는 과학이 낳은 괴물, 스플라이스


SF영화인 스플라이스는, 그다지 잘 알려지지는 않았던 영화다.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방영해주는 걸 보고 '와 재밌다'싶어서 다시 혼자 다운받아서 다시 보게되었다.

발영어를 자랑하는 나답게, 이 영화의 제목인 스플라이스(Splice)의 뜻을 모르고 있었다가 검색해보니 그 뜻인 즉슨, 

splice  1. (밧줄의 두 끝을 함께 꼬아서) 잇다 2. (필름・테이프 등의 두 끝을) 붙이다 와 같은  뜻이었다.

이 영화의 줄거리로 미루어보았을 때의 그 뜻은 아마도,

인간의 유전자(DNA)와 다른 생물과의 유전자를 연결시키다, 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


이 영화는, 내가 앞서 보았던 비슷한 영화 아일랜드(2005)나 가타카(1997)같은 영화와 같은 맥락이면서도

또 다른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인간의 유전자 조작이 가져 올 윤리적 파괴력을 그 어떤 영화보다 충격적이고 드라마틱하게 꼬집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일랜드나 가타카가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진 생명체 본인의 딜레마를 다루었다면,

이 영화는 그 생명체를 만들어 낸 사람들의 파괴까지 다루는 영화였기 때문이다.


우선 영화는 전도유망한 한 생명공학자 부부의 일상에서 시작된다.

그들은 인류의 불치병을 치유해 낼 단백질을 추출하는 목적으로서 

여러 동물의 DNA를 결합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그 성과물로 나온 것이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괴생물체 진저와 프레드다.


(▲진저와 프레드) 


각각 암,수로 만들어진 진저와 프레드는 이제 상용화 단계만 남은 공학자 부부의 큰 업적이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을 지 모른다.

결과적으로는 사람을 돕기 위해 만들어낸 생명체였으며, 

눈코입도 제대로 달리지 않은 이상한 저 살덩어리들은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동정심조차 잘 느껴지지 않을 생김새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부부 중에서도 특히나 연구에 혈안이 되어있는 아내 엘사가

아주아주 충동적으로 인간의 DNA와 그 괴생물체의 DNA를 결합시키면서 시작된다. 

이 때부터 이 영화의 음습한 기운이 스멀스멀 다가오기 시작한다.


극 중 성격으로 보자면 남편 클라이브는 조금 신중하고 조심성 있는 스타일인 반면,

(▲피아니스트로 유명한 이 연기파 매부리코 아저씨 말이다) 


아내 엘사는 좋게 말하면 진취적,의욕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좀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면이 있다.


이 영화의 재앙의 시작은 그러니까,  굳이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자면

호기심이 왕성하다 못해 도를 넘었던 엘사의 순간의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영화에서는 엘사를 그렇게 그렸지만,

사실 이 세상엔 엘사로 비롯되는, 윤리보다는 연구적 성과나 호기심에 더 중점을 두는 과학자들이 상당히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여튼 남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위험한 조작을 감행한 엘사.


몇일 뒤, 그 결합으로 완성된 생명체가 결국 세상에 태어난다.

사람의 유전자가 섞인 생명체의 이름은 DREN, 드렌이다.


우수한 인자들로 이루어진 만큼, 성장속도도 인간의 4배에 해당할 정도로 무시무시하게 빠른 드렌은

한달 만에 인간의 아기와 비슷한 형체로 성장한다.

여기서부터 사람을 닮은 이 괴생물체를 윤리적 시각으로 들여다보게 된다.


엘사는 원래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주의였으나,

점점 사람과 닮아가는 드렌에게 글을 가르치고 정을 나누며, 

애초 '실험대상'으로 보던 것에서 벗어나 드렌에게 일련의 모정을 느낀다.




처음엔 길길이 날뛰고 부정하던 남편 클라이브마저 차츰 동화되어 

이들 부부는 비밀리에 드렌을 자식처럼 돌보면서 점점 빠져나올 수 없는 늪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드렌은 말 잘듣는 고양이나 강아지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사람의 유전자를 가진 꽤 똑똑한 생명체다.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바깥세상을 궁금해하고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갖게되는 드렌은 

더 이상 이들 부부의 펫(pet)이 아닌 컨트롤하기 힘든 한 인격체가 되어간다.


결국 부부는 하루가 다르게 말을 안듣고, 공격성을 보이며, 탈출을 감행하기까지 하는 드렌과의 은둔생활에 점점 힘듦을 느끼는데.

설상가상으로 친동생에게 드렌의 존재를 발각당하고, 

비슷한 시기에 공개를 앞두고 있었던 부부의 큰 성과였던 진저와 프레드 마저도 크나큰 수포로 돌아간다.

본래 암컷이었던 진저가 점점 에스트로겐 수치가 떨어지면서 결국 자체 성전환을 통해 수컷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래서 결국 수컷 대 수컷이 된 진저와 프레드는 서로를 미친듯이 독침으로 찌르다가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장렬하게 전사하고

행사장은 피칠갑을 한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끔찍하기 짝이 없었던 진저와 프레드의 공격 장면은, 아마도 훗날 드렌이 불러일으킬 커다란 결정적 재앙을 알려주는 복선적 장치였던것 같다.

진저와 프레드를 선보이는 즉시 상용화 하려고 클라이드와 엘사 부부를 마냥 지원하고 기다리고 있던 제약회사는, 

이 끔찍한 일로 이들 부부에 대한 신뢰를 잃고 질책하기에 이른다.


드렌은 망나니처럼 날뛰고, 

진저와 프레드는 망하고, 

기업은 이들 부부를 못마땅해 하고.

모든 것이 다 꼬여버린 부부에게 남은 것이라곤 이제 아무 것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끝날 때 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이 한숨 밖에 안나오는 시점에서, 

드렌에게 결합시킨 익명의 인간의 유전자가 사실은 아내 엘사의 유전자였다는 것을 알아낸 클라이브.

이 무슨 무서운 이끌림인지, 클라이브는 드렌에게서 엘사를 느끼게 된다.

마냥 아이일 줄만 알았던 드렌이 인간처럼 2차성징을 겪고 성적인 자아까지 갖추게 된 것이다. 


이제는 자신을 아이처럼 예뻐해 준 엘사를 엄마가 아닌 경쟁상대로 인식하며 공격하고, 클라이브를 아빠가 아닌 남자로서 사랑하는 드렌.

(▲클라이브를 유혹하는 드렌)


급기야는 

마약을 한 것도 아니고 만취상태도 아닌  맨정신으로, 자신을 남자로 인식하는 드렌과 성적인 관계를 맺는다.

마치 엘렉트라콤플렉스의 추악한 면 같았던 이 괴물 대 인간의 정사 씬은

아마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충격적이고 혐오스러운 장면이 아닐까 싶다.

인간이라 볼 순 없어도 탄생을 함께하고 길러낸 자식같은 존재와의 성관계. 

아내의 유전자도 일부 섞였으니 생물학적으로도 그야말로 근친상간이나 다름이 없었다. 


게다가 얼씨구나 이 장면을 딱 마주하게 된 엘사.

이들 부부는 건널 수 없는 강을 두고, 니가 잘못했네 내가 잘못했네 싸운다.

자식처럼 키운 존재와 남편이 성관계하는 장면을 보게 된 엘사의 심정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일을 이후로 결국 알 수 없는 병으로 드렌이 시름시름 앓다가 별안간 죽어버리는데, 

자식에 대한 정이 이토록 무서운건지 그 큰 충격과 배신을 겪고도

엘사는 드렌을 잃은 슬픔에 극도의 좌절에 잠기고 이들 부부는 다시 잠시 화해를 하나 싶다.


괴생물체 드렌은 이들 부부에게 상처만을 남긴 채 죽었고,

그러나 땅에 말끔히 묻혔고, 

우연히 알게된 친동생 말고는 이 사실을 다행히 아무도 모르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부부지만, 그래도 재앙의 씨앗인 드렌은 말끔히 사라졌다.

이들은 그냥 원래 하던대로 연구자로서 진저와 프레드나 다시 연구하면 될 참으로 보였다.

그렇게 꽤 맘 편하게 영화가 마무리 되나 싶었는데, 

역시 끝날 때 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제약회사에서 드렌의 존재를 알게되어 한 밤 중에 이들 부부에게 달려온다.

어서 그 괴생명체를 보여달라며 흥분하는 제약회사지만,

이미 칠흙같은 땅 속으로 들어가버린 드렌을 보여줄 수도 없고 자식같던 존재를 잃어 망연자실해 있는 부부다.

그런데 그 순간, 영화 중반에 드러났던 그 복선 같은 끔찍한 진저와 프레드 장면처럼

무덤에 묻힌 드렌이 자체 성전환을 시전한다. 그리곤 부활한다.

죽은 줄 알았던 드렌이 다시 땅에서 솟구쳐 수컷의 형체로 변화한 것이다.


그나마 암컷일 때는 좀 아릅답고 처연하게 느껴지던 드렌의 외모는 온 데 간 데 없고

정말로 역겨움을 유발하는 외모의 수컷으로 변신한 드렌.


(▲암컷이었을 때의 드렌)

(▲수컷이 된 드렌...)


이미 내면이나 기억 또한 그 때의 그 드렌이 아닌지, 괴수가 된 드렌은 성적 호감을 느껴 성관계까지 맺었던 클라이브를 무참히 찔러 죽이고

이번엔 엘사를 여자로 인식해 강간하고 만다.


공격과 강간과 근친상간이 난무하는 이 영화의 후반부는 초토화 그 자체였다.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신랄한 줄거리에 넋을 잃을 지경인데,

다행히도 마지막은 지극히 권선징악적인 수법으로 엘사의 손에 응징을 받게되는 드렌.

자신을 만들고 기른, 엄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엘사의 손에 머리를 맞고 맹렬히 죽고야 만다.

( 모든 괴물은 머리를 쳐서 죽여야한다는 아주 단순한 논리를 전달해준다 )


유일하게 살아 남은 엘사의 입장에서 본 일련의 상황을 정리해보자면,

연구성과물 실패.

괴생물체의 탄생.

남편과 괴생물체의 정사.

그 괴생물체에 의한 강간.

남편의 죽음까지.

이쯤되면, 재앙의 재앙을 거듭한 블록버스터급 재앙이라 할 수 있겠다.

내가 엘사라면, 맨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런데 모든 재앙이 끝나고 난 후 이 영화의 엔딩 장면은 

지금까지의 쇼크를 합친 것보다 더 큰 쇼크다.

드렌의 존재를 알게 된 한 기업체의 제의를 받고 엘사가, 

드렌에게 강간당할 당시 뱃속에 잉태된 드렌의 씨앗을 낳기로 결심한 것이다.

제약회사와의 거래계약에 결연한 얼굴로 부른 배를 잡고 일어서는 엘사의 모습은 거의 인간의 상식을 초월한 것으로 보였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영화는 결국 윤리의식의 부재가 가져오는 그 처절함을 깨닫고 반성하는 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영역에 다시 도전장을 내미는 엘사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단편적으로 드러냈다고 할 수 있겠다.

결국 이러한 인류의 재앙은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인간사에 반드시 도래하게 될 거라는 일종의 예언 같아 마음 한 편이 씁쓸했다.

지금 어딘가에서도, 과학을 넘어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실험들이 진행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인간은... 어디까지 도전할 수 있을까...?

과학은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난치병 환자를 고치기 위해 다른 생명에 대한 윤리를 배제하는 것이 과연 인류를 위한 길이 맞는 걸까?

윤리와 과학, 신과 인간의 영역, 미래와 인간에 대한 많은 시사점을 주는 영화, 스플라이스였다.




2017 매우주관적인평론
copyrightⓒ글쓰는우두미


(클릭 시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BLOG. blog.naver.com/deumji
INSTAGRAM ID. @woodumi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