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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Jan 08. 2017

영화<인간중독>

그 사람 없이는 숨 쉴 수 없다는 공포를 느껴본 적 있나요 ?



인간중독의 전문가평점은 5.57점, 관람객 평점은 6.63점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영화를 개인적으로 무지 공감하며 보았던 이유에 대해서 말해보고 싶다.

예전에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가, 대화상대가 영화

 '연애의 온도'를 보고 남는 거 하나 없는 쓰레기라고 표현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에게 되물었었다.


"연애 많이 해보셨어요?"

"아니요, 여자 만난 지 한 6년은 된 것 같아요"


나는 그 사람과 더 이상 그 영화에 대한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다. 여자친구가 6년 동안 없었던 이가 연애의 온도를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무리가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나는 연애를 하고있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그 주인공들과 꽤 비슷한 패턴을 밟아 온 사람으로서,

연애의 온도가 얼마나 현실연애를 잘 짚어냈는지 감탄에 감탄을 금하며 보았었다.


고로 영화는,

관객 100%를 당연히 만족시킬 수 없다.


한 영화를 가장 재미있게 보는 사람은,

영화 줄거리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거나 혹은 영화주인공의 감정선과 비슷한 상태의 감정을 겪고있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한다.

연애경험이 까마득한 남자가 연애의 온도를 쓰레기라고 했듯, 연애에 치이고 치인 나는 연애의 온도를 재미있게 봤으며, 이번에 얘기할 인간중독 역시 무지 재미있게 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중독되어 본 적이 있었던 거다.


김대우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 때,

사람에게 중독된다는 것,

즉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보았다는 내용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사람에게 중독된다는 게 무얼까.

김대우 감독은, 그건 그 사람 없이는 숨을 쉴 수 없다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단다. 나는 이 한마디에 폭풍 공감을 해서 이 영화를 보았다.


'그 사람 없이는 숨쉴 수 없다는 것'

아마 이 영화가 두시간 반의 긴 러닝타임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감정일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한 영화에 대한 격한 공감은 비슷한 상황 또는 감정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영화는, 나의 일상을 해치치않는 평탄하고 잔잔한 사랑을 하는 자들과 관련된 영화는 아니다.

내 일상을 통째로 빼앗고,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며, 만에 하나 헤어지게 된다면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을 주는 그런 사랑. 한마디로 앞뒤 안가리는 미친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자신을 다 집어던진 채 사랑에 올인하고 상대에게 강력히 중독되었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아마 이 영화에 깊이 공감했을 것 같다.


영화 '인간중독'의 호불호는 아마 그 지점에서 갈리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영화 속 김진평(송승헌)은 꽤 높은 직급의 군인으로 등장하는데, 그의 성격으로 미루어보아 그는 그다지 지위나 계급에 목매는 류의 사람이 아니다.



그는 내성적이고 과묵하지만 성실했고, 그 성향으로 묵묵히 주어진 일을 해내다보니 어느새 지금의 계급을 얻게 되었던 것 같다.


그는 그렇게 출세욕과는 무관한 사람이었지만, 자신보다 더 자신의 승진에 목매는 아내와 정략결혼으로 추청되는 무미건조한 삶을 살고있었다.

아내는 남편의 승진을 위해 사교활동을 활발히 하고 임신에 큰 노력을 기울이지만

남편 진평은 임신에도 출세에도 관심이 없다.

그는 베트남전에서 겪은 후유증으로 악몽을 꾸고, 반복되는 지루한 군생활을 그저 로봇처럼 이어나가고 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삶에 갑작스레 등장한 가흔(임지연)에게 빠지게 된 건, 그녀가 무미건조한 삶에 찾아든 한마리 나비같았기 때문이었을 것 같다.

그도 그럴것이, 한 눈에 봐도 어딘가 신비로운 가흔은 자신의 주위에 있는 남편의 출세에 목숨을 거는 군인 부인들과는 달리, 속세에 욕심이 없어보이는 특이한(진평이 속한 세계에서는) 여자기 때문이다.


수동적인 삶을 살던 진평의 마음에 우연히 찾아들어온 그런 가흔은,

이전까지 여자를 쟁취하고 싶은 욕구 자체가 없었던 (그런 능동적인 욕구를 가질 기회가 없었던)

진평에게는 난생 처음 쟁취욕을 불러일으키기 딱인 대상이었다.

게다가 난생 처음 경험해보는 커다란 감정 앞에서 착한 와이프와 자신의 계급에 대한 생각으로 그 감정을 누를만큼 진평의 성격은 그다지 현실적이거나 이해타산적이지 않았다.


그런 진평과 가흔의 성격과 대조되게끔 영화는, 조여정을 비롯한 '사모님 무리'를 보여주는데

그녀들은 남편과의 사랑에는 관심 없이 남편의 지위를 상승시키는 것이 유일한 목표이며 때문에 사교모임에 치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무리들 속에서 극적으로 대조될 정도로 정말 순수하기 그지 없는 진평과 가흔의 모습들을 몇몇 씬에서 읽어낼 수 있었다.


목에서 피가 줄줄 나는대도 무슨 영문인지 '귀걸이'에 더 신경을 쓰는 가흔의 모습이나,

우연히 얽히게 된 대상이 남편의 신분을 높여줄 수 있는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아까 그 사람이 베트남말로 한 거 무슨 말이었어요?"라며 엉뚱한 것을 묻는 모습에서

나는 이 두 사람이 필연적으로 얽힐 수 밖에 없는

 '비슷한 성격'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계급에는 별 관심이 없는 진평과, 남편의 계급에 별 관심없는 유일한 여자 가흔은 서로 빨려들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일에도 집중이 안되고, 죄책감보다는 보고싶은 마음이 앞서는 진평의 마음이

나는 보는 내내 참 공감이 많이 됐다.

나도 그런 성격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사람이 사람에게 중독된다는 건, 내 사랑을 방해하는 그 어떤 장애물을 건너뛰고 합리화시켜서라도 그 사람을 가지고싶다는 원초적인 욕망일 것이다.

거기엔 이성적 논리도 경험으로 축적된 계산도 없다.

이 남자는 내 남편의 상관이니까 안돼,

나를 이렇게 떠받는 착한 아내가 있는데 내가 이러면 안되지,

하는 마음으로 하나 둘 씩 감정을 정리할 수 있는 성격의 주인공이었다면, 이 영화의 타이틀은 절대로 '인간중독'이 될 수 없었을 거다.

아주 비현실적으로 가흔에게 목매는 진평을 보며 많은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했을 것이다.


종국에는 가흔을 잃은 충격에 자신의 심장에 총까지 겨누고 마는 이 미련한 남자를 두고,

'아이고 저 미련한 것. 여자가 뭐라고' 하는

관람객들 속에서 바보같이 나는 눈물을 흘렸다.

미치도록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극심한 공포를 느껴본 나는 심장에 총을 겨누는 게 그리 비현실적으로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위에서 사랑에 대한 조언들을 듣다보면, 제일 많이 듣는 말이 그거다.

"세상에 남자 많아"

"남자 거기서 다 거기지 뭐. 다 똑같아"

이런 말들.

그 사람을 가지고싶은데 가질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을 위로한답시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조언해주는 사람들이 제일 흔히 하는 말이다.


그런데 난 항상 그 말에 반기를 들곤 했다.

"남자는 많죠. 근데 그 사람은 세상에 하나에요" 라고.

아마 가흔을 향한 진평의 마음이 그랬을 거다.

영화 내내 숨을 쉴 수 없다고 말하는 진평의 말이 조금 유치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사실 가장 진평의 마음을 나타내주는 말이기도 했다.

숨을 쉴 수 없다는 것.

도저히 진평에게는 대체 불가능한 말이었을 것이다.

내성적이고 표정도 잘 바뀌지 않는 진평이 내뱉은 그 한마디에는 가흔을 향한 오만가지 사랑의 감정이 다 녹아있는 것 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참 좋았다. 90년대 헐리웃 영화에서도 안나올 법한 지고지순한 사랑 얘기이지만 그렇다고 비현실적인 사랑은 절대로 아니다.

누군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절절히 겪어내고 있으며, 경험해보았을 '인간중독'이라는 감정에 관한 이야기일 뿐이다.


아직도 내 마음을 짠하게 하는 영화 속 장면이 있다.

진평이 자신을 총으로 쏘고나서 불명예제대를 했을 때, 사교계 사모님들이 미용실에 모여서 진평과 가흔을 씹는 장면이다. "사모님은 그런 사람이 나타나면 어떨 것 같으세요?" 하는 질문에 쭈뼛거리던 사교계 여왕의 모습.

"미쳤니?"라며 그 지고지순한 스토리를 비웃으면서도 "그럼 자기들은...?"하고 뒤돌아보는데,

아무도 그 말에 쉽게 부정의 뜻을 밝히지 못하는 사모님들.

그 장면에서 나는, 그렇게 속물화된 인간의 내면 어딘가에도 '미치도록 사랑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걸 느꼈다.

그들도 부러웠을까.

심장에 총을 겨눌 정도로 지고지순한 남자의 사랑을 받은 가흔이.


기대와는 달리 새드엔딩으로 끝나버린 이 영화를 보고 마음이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모로 보나 영화의 제목에 딱 맞는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중독된다는 것.

이 영화를 비현실적이라며 비난하고 있는 사람에게 묻고 싶다.

진정 자신이 누군가에게 중독되어본 적은 있는 지.






2017 매우주관적인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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