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그 '윤도'가 누구인지 나도 알고 싶어 읽었다
1차원이 되고 싶어 (2021)
장르 : 한국, 장편소설
저자 : 박상영 │ 출판 : 문학동네
개인적으로 소설을 읽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바로 ‘흡입력’이다. 호흡이 짧고 내용 파악이 쉬운 비문학이나 에세이에 비해, 소설은 파악해야 하는 것들이 많고 또 재미를 느끼기까지 할애해야 하는 시간이 크기 때문이다. 박상영의 장편소설 <1차원이 되고 싶어>는 정말 고맙게도, 미친 흡입력을 가진 소설이었다.
그가 쓰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생기 넘치고 신랄한 문체와 이야기를 수놓는 놀라운 디테일들은, 큰 노력 없이도 독자가 공감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이 있다. 그런 박상영 작가의 글을 처음 알게 된 건, 책을 읽으며 술을 마시는 바(bar)에서였다. <대도시의 사랑법>이라는 연작소설집을 집어 들어 한 꼭지를 읽는 중이었는데, 정말이지 숨 돌릴 틈 없이 빨려 들어 읽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그의 글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이라는 단편소설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퀴어’ 이야기로도 유명하다. 작가는 2016년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라는 단편소설로 등단해, 젊은 작가상 대상, 신동엽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주목받은 그의 작품들은 모두 퀴어 소설이었다. <대도시의 사랑법>에서도 주인공 ‘영’이 만나는 동성과의 이야기들이 다뤄졌고, 그의 첫 장편작인 <1차원이 되고 싶어>도 마찬가지다. 퀴어 소설이 많지 않은 한국에서, 이런 그의 행보가 주는 영향력은 무엇일까.
<1차원이 되고 싶어>의 주인공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는 10대들이다. 주인공 ‘나’는 ‘윤도’라는 남자아이를 사랑한다. 아주 작은 것도 따돌림의 표적이 될 수 있는 10대의 세계에서, 동성애가 어떤 의미가 될지 아는 ‘나’의 사랑은 비밀스럽고도 애잔하다. 발렌타인데이에 몰래 초콜렛을 올려놓으며 고백을 하고, 정체를 밝히지 않으며 윤도의 곁에 머물고, 동성애를 부정하는 윤도를 부정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동성을 사랑하는 이는 ‘나’ 뿐은 아니다. ‘나’의 친구이자, ‘나’의 동성애를 알아버린 여학생 ‘무늬’는 고등학생 언니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 언니는 또 다른 언니를 사랑한다. 그들도 모두 비밀스러우며 애잔하다.
흔히들 10대가 어리고 천진난만하다고 여기기 쉽지만, 소설을 통해 실은 그들이 얼마나 촉각이 곤두선 관계망 속에 살아가는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다름’을 티 내지 않고 ‘같음’을 강조해야, 친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 10대의 세계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소설이 비단 퀴어의 요소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D시’라는 공간과 200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이 주는 생생한 느낌 또한 이 소설의 몰입 요소가 아닐까 싶다. ‘D시’로 표기되었지만 누가 봐도 ‘대구’인 이 지방도시는, 2000년대 동성로의 ‘캔모아’를, 수성못과 수성랜드를, 한일극장과 교동시장을 밀도 있게 표현한다. 무제한으로 리필되던 캔모아의 식빵과 생크림이 절로 떠올랐다. 뜨거웠던 2002년 월드컵의 열기도, 학군에 집착하던 당시의 입시문화도, 부동산으로 첨예하게 갈리던 아파트 단지의 생활상까지도 생생히 느껴진다. 몸 어딘가에 깊게 배어있던 그 시절의 향수가 코끝까지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400페이지에 달하는 긴 호흡의 소설을, 하루하고 반나절 만에 후딱 읽어냈다. 잠을 자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책을 덮은 순간을 제외한다면, 손에서 도저히 책을 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나’가 어떻게 ‘윤도’를 사랑하게 되고, ‘윤도’는 어떻게 ‘나’를 부정하는지, ‘무늬’는 그 언니와 어떻게 되는지, 수성못에서 발견된 시신은 대체 누구이고,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며 ‘나’에게 섬뜩한 문자를 보내오는 이는 누군지 알기 위해... 책장은 빠르고 빠르게 넘어갔다.
나의 10대를 떠올려본다. 마찬가지로 약점을 들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친구들과 문제없이 잘 지내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웠던 나의 10대는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친구들 무리에서 인정받는 것이 최고의 가치이던 그 시절 세계관과, 아침 7시 반에 등교해 밤 10시에 하교하던 입시문화의 폭력성도 기억난다. 여러모로 10대는 귀엽고 찬란한 시절이라기보단 치열하고 혼란스러운 시절이었다. 그 시절 내가 동성의 누군가를 사랑했더라면, 나의 10대는 어떻게 얼마나 더 혼돈했을까. 이 책을 덮고 난 뒤 오래고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됐다.
분명 2020년대인 이 세계에도 ‘나’와 윤도, 무늬, 태리 같은 10대가 존재할 거란 것을 안다. 그들은 어디서 어떻게 사랑하고 있을까. 혼돈한 그 시기를 어떻게 정의 내리고 살아가고 있을까. 늘 우리 곁에 있어왔고, 언제까지나 있을 그들에게, 더 넓고 따뜻한 세상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더불어, 놀랍도록 멋지고 아름답게 그들의 사랑을 그려내는 박상영 작가에게도 존경의 마음을 보내본다.
* 해당 포스트는 인스타그램 매거진 <주간우두미>의 72호입니다. <주간우두미>는 인스타그램 @woodumi 계정 또는 해시태그 #주간우두미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woodu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