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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Sep 23. 2022

결핍이 낳은 거짓의 왕국
<애나 만들기>

이 드라마가 실화라는 점!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이야기.


ⓒ넷플릭스 시리즈 <애나 만들기>


애나 만들기 (Inventing ANNA, 2022)
채널 : 넷플릭스 시리즈, 9부작 완결 │ 장르 : 미국, 범죄·드라마
제작 : 숀다 라임스 │ 출연 : 줄리아 가너(애나), 애나 클럼스키(비비안), 아리안 모아이드(토드), 케이티 로우즈(레이첼) 외 │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실제 이야기, 애나 만들기


결핍은 양날의 칼 같다. 어떤 결핍은 인간을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성장하게 하지만, 어떤 결핍은 현실을 외면하고 자신을 부정하도록 만들기도 하니까. <애나 만들기>의 ‘애나 델비’는 단연 후자의 경우다. 애나 델비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뉴욕에서 금수저 독일인 상속녀 행세를 하며 여러 사람을 상대로 사기를 일삼았던 실제 인물이다. 본명은 ‘애나 소로킨’. 금수저 상속녀는커녕 실제로는 트럭 운전수의 딸이었다. 사실상 무(無)수저에 가까웠던 애나는 어떻게 ‘찐’ 금수저들을 상대로 사기를 칠 수 있었을까. 그 일화를 하나씩 양파 까듯 살펴보는 것이 바로 이 드라마의 최대 재미 요소다.     



ⓒ넷플릭스 시리즈 <애나 만들기>


애나 델비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나


애나는 사교계 유명인사들과 어울려 다니기에 손색없을 정도로 미술과 패션에 대한 지식이 풍부했다. 언변 또한 그에 못지않게 화려했으며 성격도 화통해서 인맥 넓히기에도 재능이 뛰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그야말로 사기꾼의 삼박자를 완벽히 갖춘 셈.     


애나는 그렇게 뉴욕 사교계를 발판으로 하여 조금씩 인맥을 넓혀나갔고, 사람들은 의심의 여지 없이 모두 그녀를 독일인 상속녀라고 믿었다. 그럴수록 애나는 대담해져, 나중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만들겠다며 은행을 상대로 200억 규모의 대출을 신청하게 되는데… 결국엔 은행이 대출을 거절하며 애나의 시대도 끝났지만, 그 과정에서 내로라하는 은행가와 기업인들 모두가 애나를 진짜 금수저라고 믿었다는 사실은 가히 놀라운 점이 아닐 수 없다.     


세상엔 왜 이런 캐릭터가 심심찮게 나타나는 걸까. 사람이 얼마나 결핍이 심하면 이토록 제 삶을 송두리째 꾸며내게 되는 걸까. 드라마는 그 화두를 시청자에게 던진다. 애나를 무작정 비난하거나 옹호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그녀가 당신들의 삶에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는지를 스스로 살펴보라 말한다. 애나 델비는 두말할 것 없이 돈이면 다 되는 이 자본주의 시대의 슬픈 초상이다. 하지만 단지 그것으로만 치부하기에 애나의 이야기는 얼마나 다채롭던가. 애나의 이야기에는 실로 수많은 사람이 걸쳐져 있었다. 애나를 금수저라고 믿었던 각종 유명인사들. 그들이 애나를 곁에 둠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이익과, 그 배경에 깔린 저마다의 욕망은 참으로 다양했다. 애나를 거대한 사기꾼으로 만드는 데에 과연 그 수많은 사람들이 기여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넷플릭스 시리즈 <애나 만들기>


모두가, 애나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일례로 ‘레이첼’을 들어보자. 그녀는 애나의 사기행각을 맨 처음 세상에 드러나게 한 인물이자, 애나의 친구이기도 했던 여성이다. <베니티 페어>에 근무하던 레이첼은 애나와 어울려 다니며 자신 또한 얻은 것이 상당했다. 함께하는 동안 많은 비용을 애나가 지불했고, 때로는 옷도 얻어 입었으며, SNS에 자랑할 사진과 럭셔리 라이프와 인맥과 기타 등등을 상당 시간 애나가 제공했으니 말이다. 그러다 둘의 우정이 끝난 건 함께 떠난 모로코 여행에서였다. 그때 애나를 대신해 큰 여행비용을 레이첼이 결제했는데 그 돈을 애나가 갚지 않으면서 관계가 깨진 것이다. 레이첼은 실은 애나가 빈털터리였던데다 자신이 돈까지 낸 게 몹시 억울하고 빡이 쳤다. 그런데 그 말을 비틀자면, 레이첼에게 애나는 금수저일 때만 의미있는 친구라는 뜻이 아닐까.      


사람들이 모든 순간 투명한 진심으로 인간관계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마음을 내 줄 수 있는 관계가 있는가 하면, 때로는 금전 등의 이익 때문에 맺는 인간관계도 있을 테다. 그걸 죄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단순히 ‘애나 소로킨이라는 정신 나간 여자가 금수저 연기를 하다가 뽀록이 났다’라는 한 줄의 줄거리 이면에는, 애나와 다를 것 없는 욕망으로 꿈틀대는 인간들이 얼기설기 얽혀있음을 부정하기 힘들어 보인다. 애나가 물질의 결핍에 의해 사기꾼이 된 것처럼, 그들 역시 물질을 이유로 애나를 곁에 둔 사람들이니까. 서로가 서로를 욕망에 의해 관계한 것만큼은 분명하지 않은가.     




실제 '애나 소로킨' (사진출처:연합뉴스)


누구에게나 결핍은 있다, 극복의 차이일 뿐


애나는 여러 사기행각을 죄목으로 12년 형을 받고 복역하던 중, 2021년 가석방되었다. 그리고 이런 애나의 이야기는 넷플릭스가 32만 달러, 한화로 약 4억을 주고 사들여 현재의 드라마로 만들게 되었다고. 자신을 상품화해 이목을 끄는 그녀의 재주는 감히 높이 평가해도 되지 않나 싶을 정도다. 이런 재능만큼은 애나가 가진 ‘진짜’가 아니었을까. 그 천부적 재능을, 거짓이 아니라 진실로 쌓아나갔다면 좋았을 텐데. 참으로 안타까운 대목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크고 작은 결핍이 있다. 누군가에겐 그게 돈이고, 명예고, 학업이고, 인맥일 뿐. 애나는 화려하고 부유한 척을 하자 사람들이 보여왔던 그 관심과 호의에 중독이 되었던 것 같다. 아버지를 트럭운전수라고 할 때보다 외교관이나 석유 재벌, 태양열에너지 사업가라고 할 때 보여왔을 사람들의 눈빛, 자신의 몸에 두른 옷이 초호화 명품일 때 사람들이 보내온 동경. 그런 것들이 보잘것없이 고달픈 자신의 현실을 잊게 했는지도 모른다. 뒤틀린 결핍이 낳은 4년의 가상 세계에서 애나는 행복했을까. 그녀로 인해 피해를 본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괘씸해 마지않아야겠지만, 한 인간으로서 안타까운 마음 또한 쉬이 접을 수는 없었다.     




ⓒ넷플릭스 시리즈 <애나 만들기>


결국 중요한 건 사람, 존중


실제 일화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드라마에는 이런 씬이 있다. 애나의 이야기를 기사로 썼던 기자가 교도소로 애나를 면회하러 갔을 때. 애나는 기자에게 ‘당신이 입은 옷은 싸구려’라며 무시하다가도, 기자의 손을 잡고 이렇게 묻는다. “면회, 또 올 거죠?” 그때의 애나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그녀는 결국 ‘사람’을 원했던 것이다. 수많은 부자 친구들을 거느렸지만, 모두가 그녀를 필요로 하고 동경했었지만, 번번이 얻을 수는 없었던 사람의 진짜 온기를. 삶에 있어 정말로 필요한 것은 그래서 돈이나 명예 따위가 아닌지도 모른다.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삶이라 해도, 누군가가 그 자체로 자신을 긍정하고 존중해준다면 사람은 괴물이 되지 않는다. 누군가가 무수저 트럭운전수의 딸 애나 소로킨을 긍정해주었더라면, 이 이야기는 어떻게 달라졌을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 해당 포스트는 인스타그램 매거진 <주간우두미>의 90호입니다. <주간우두미>는 인스타그램 @woodumi 계정 또는 해시태그 #주간우두미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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