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꿈을 위해 나아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제목 : 둠둠 (Doom Doom, 2022)
장르 : 한국·드라마 │ 감독 : 정원희
출연 : 김용지(이나), 윤유선(엄마), 김진엽(민기) 외
러닝타임 : 101분 │ 등급 : 15세 관람가
예체능은 부모님에게 언제나 홀대받는 장래 희망이다. 소위 말해 밥 빌어먹기 힘든 직업. 노래하고, 춤추고, 글 쓰고, 영화를 만드는 일이 그렇다. ‘이나’는 비트를 믹스하고 가공해 들려주는 DJ를 꿈꾸는 이다. 어르신들이 듣기에 기괴하고 난해할 뿐인 디제잉 음악은, 더구나 교회를 다니는 엄마에게는 이른바 ‘사탄의 음악’에 가깝다.
예체능은 그래서 외롭다. 이나도 그래서 외롭다. 평범하게 살라는 엄마의 말과, 같이 음악을 하던 남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가, 이나를 꿈에서 점점 멀어지게 한다. 결국 이나는, 콜센터에서 영혼 없이 일하며 엄마와 현실이 원하는 존재로 살아가기를 택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 근처에서 흘러나오는 디제잉 비트에 이나는 발길이 멈춘다. 사랑하고 열망하던 일을 품어본 사람의 마음에서, 그 일이 사라지기란 얼마나 어렵던가. 설상가상으로, 같이 음악을 했던 친구 ‘민기’가 거기에 있었다. 이나가 빠듯한 현실을 사는 동안 이미 꿈을 좇아 슈퍼스타가 된 민기. 그런 민기의 모습이, 또 이나를 자극한다. 그대로 포기하기엔 아직 가득한 열망과 후회. 이나는 그날을 계기로 오랜만에 고민을 하다가, 마음을 먹는다. 음악을 다시 시작해보기로.
하지만 설렘도 잠시. 음악에 다시 발을 딛고 나니 또 다른 난관이 이나를 기다리고 있다. 모든 일에는, 특히 예체능에는, 이런 딜레마가 존재하는 듯싶다. 대중이 원하는 것을 추구할 것이냐, 아니면 조금 마이너 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것을 밀고 갈 것이냐 하는 문제.
물론 둘 중에서 중간 정도로 타협하는 방법도 있다. 굳이 구분하자면 이나는 조금 마이너 하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디제잉 장르인 ‘테크노’를 지향하는 쪽이었던 것 같다. 그것도 별 갈등 없이, 뚝심 있게.
하지만 다시 이나가 음악에 발을 디딘 지금의 상황은 예전과는 달랐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엄마에게도 인정받아야 하고, 아기를 키우려면 돈을 벌어야 하는 현실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으니. 현실은 곧 돈이다. 세상에 돈 만큼 무서운 게 있을까. 더구나 젊은 세대는 더 현란하고 더 빠른 것을 쫓고 있었고, 그런 탓에 디제잉의 대세 역시 이미 EDM이 된 지 오래였다. 약삭빠르고 회전이 빠른 동료 민기는 이미 그것을 좇아 성공을 일군 상태였던 것. 그런 상황에서 현실과 대중을 외면하고 너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등 떠밀기엔, 이나의 상황은 몹시도 빠듯해 보인다.
이나는 고민한다. 그리고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미혼모의 몸으로 아이를 키우려면 돈 안 되는 테크노보다는 민기처럼 EDM을 쫓아야 할까, 아니면 같이 대회에 참가하기로 착한 선배의 곡 파일을 휴지통에 넣어서라도 내가 이겨야 할까. 그렇게 돈과 현실을 우선시해서 꿈을 수정하다 보면 꿈은 언젠가 이뤄질까. 이나가 갈등하는 모습을 함께 쫓다 보면, 꿈이라는 것의 원형이 무엇이었는지를 자꾸만 잊게 되는 기분이었다.
이나의 인생을 바꿀 수 있었던, 그래서 그토록 열망했던 이나의 독일 오디션은 결국 불발되었다. 그것만 붙으면 이나도 관객도 환호를 지르며 끝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나에게 기적 같은 건 일어나지 않는다. 엄마와의 갈등은 용암처럼 치솟고, 여전히 막막한 미혼모의 삶이 이나를 재촉하고. 그게, 동화가 아닌 현실이란 걸 아는데, 정말 잘 아는데... 마음이 아프고, 심히 답답한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고 감사한 건, 그런 아비규환 속에서도 이나는 진정한 삶의 메시지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엄마가 내 음악을 싫어해도 엄마를 저버릴 수 없다는 사실, 아무리 대중이 원하는 것이 돈을 가져다준대도 내가 원하는 테크노를 포기할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못하게 만드는 그 괴롭고 비정한 것이 어쩌면 ‘꿈’이란 것의 원형인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꿈은, 그래서 꿈이 아닐까. 손에 미처 주어지지 않은 상태로 사람을 계속 어디론가 이끄는 것. 목마르게 하는 것. 목마름 그 자체로서 가슴을 뛰게 하는 것.
이나가 독일에서 간지나는 디제잉을 하며 이 영화가 끝났더라면 나는 기뻤을까. 물론 기뻤을 것이다. 하지만 어딘가 개운치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독일에 가지 않은 채 한국에서 미혼모 DJ의 삶을 살아갈 이나가 대단히 행복했을지 또한 보장할 수는 없는 일이다. 돈은 여전히 없고, 여전히 사람들은 EDM을 좋아할 테니까. 하지만 이나의 세상에도 소소하게나마 기쁨은 찾아왔다. 성공이라는 쾌감보다 더 본질적인 가치를 알게 된 이나의 깨달음이 그것이다.
고맙게도 영화 말미에는 이나의 엄마가 더 이상 딸의 음악을 ‘사탄의 음악’이라고 규정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입양을 보낼 뻔했던 아기도 이나의 곁으로 돌아와 있다. 뭐 대단한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는 당연히 없다. 하지만 이나는 웃고 있었다. 떼돈은 벌어주지 못해도 이나의 가슴을 울리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꿈, 테크노를 하면서.
그것 말고 중요한 게 대체 무엇이냐고 묻는 듯한 이나의 미소에서, 오히려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대중이 원하는 글쓰기와 내가 원하는 글쓰기의 사이에서 매번 방황하는 내게, 이나가 묻는 듯하다. 네 꿈의 원형이 무엇이냐고. 네가 정말 하고 싶은 것 무엇이냐고.
* 해당 포스팅은, 씨네랩(CineLab)으로부터 크리에이터 자격으로
언론 배급 시사회에 초청받아 작성된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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