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irony)
예상 밖의 결과가 빚은 모순이나 부조화.
돈이 부족해서였을까,
학업을 마치고 일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그려봤던 나의 미래 중 가장 원했던 나의 모습은 먹고 싶은 것, 맛있는 것을 돈 걱정 없이 사 먹는 모습이었다.
아마도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면서도 주머니 사정 때문에 굳이 먹고 싶지도 않았던 음식을, 내 마음까지 속여가며 값싼 식당으로 여자친구를 유도해서 데려갔던 기억 때문이었을 수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세상에 비싼 음식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다만, 다행스럽게도 30대 후반이 되면서 너무 비싸지 않은 음식들, 즉 내가 대부분 먹고 싶은 음식은 쉽게 먹을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게 되었다.
나는 직업의 특성상 지방 출장을 다니는 경우가 많다.
2017년부터 일을 시작하면서, 지방을 다니기 시작하였는데, 막내로 일을 시작하면서 일에 치여 제대로 된 밥 한 끼 먹지 못하고 허겁지겁 출장을 마치고 올라오기 바쁜 생활이 수년간 지속되었다.
창 밖으로 비가 내렸기 때문일까, 나무에 꽃이 폈기 때문일까, 공복을 느꼈던 기차 안에서 문득 일을 시작하며 원했던 모습, '맛있는 밥 한 끼'를 먹지도 못하고 있는 내 모습에 약간의 우울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때부터, 지방 출장을 가면 달리는 기차 안에서 그 주변에 맛있는 음식점들을 찾아 한 끼 식사를 제대로 하고 돌아오기 시작하였고, 이는 곧 삭막한 일상에서 사소한 설렘으로 자리를 잡았다.
대구 출장을 갔던 일이다. ktx 기차를 타고 내려가면서, 힙하다는 일본 라멘집을 발견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점심 장소를 골랐다.
일본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브리프케이스를 든 채로 라멘집을 방문하였다.
탄탄멘이 맛있다는 리뷰를 보고, 주문을 한 이후, 요리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맛을 궁금해하는 나. 향을 맡은 후, 기대했던 맛 이상의 감칠맛을 주는 소스와 탱글한 면을 느끼면서 맛집을 훌륭하게 검색했다면서 스스로를 칭찬했다. 마라를 이용하여 소스를 만들었기에, 다 먹어갈 때쯤, 혀가 얼얼하게 당기는 느낌이 들었고, 이마에서도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혔다.
이러려고 공부했고, 이러려고 돈을 벌고 있지라고 생각하며, 뿌듯함과 기쁜 마음으로 자리를 일어나려고 하는 찰나, 내 눈과 귀에 젊은 학생들의 미소 짓는 표정과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들어왔다. 딱히 특별할 것 없는 것 같은 대화였음에도, 밝고 긍정적인 모습에 무언가 압도되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원하는 직업도, 원하는 돈도, 맛있는 식사를 마음 편히 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지금이지만,
돈이 없어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을 먹었던 과거의 내 모습이 겹쳐지면서 부러움이라는 감정이 솟아났다.
좋은 집, 비싼 차, 여유 있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부럽다'라고 생각하며 지내왔던 나였기에, 순간 감당할 수 없는 아이러니(irony)에 빠져, 당황한 모습을 감추고자 후다닥 가게를 나와 일을 하러 갔다.
정신없이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 아직 돌이 채 되지 않은 아들의 영상을 보며 미소 짓고 있는 거울에 비친 나를 바라보며, 이제는 기분 좋은 아이러니에 빠져든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 - 기쁨과 슬픔은 공존하는 것